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53

등록 2004.03.08 15:49수정 2004.03.0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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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머리를 돌려 마을 가까운 토성으로 왔다. 마을로 들어가는 정문은 거기서도 먼지 토성만이 길게 이어졌고, 그럼에도 마을 전경은 내려다보였다.

'토성에 바짝 붙어서 걸어라.'

천둥이가 발소리까지 죽여 가며 토성에 붙어서 걷자 그는 엉덩이를 쳐들고 마을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집들이 여명에도 춥다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앞으로 한참 더 걸어가자 공회당 같은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은 중심지에 홀로 우뚝 세워져 있었고 공터 양편으로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둥글둥글한 흙벽돌집에 거무칙칙한 이엉이었다.


그때 중심지의 건물 앞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후는 전에 규모가 가장 큰 그 집은 자기의 집무실 겸 마을의 공회당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한데 거기서 이른 아침 불이 피어오른다면 살림집이 그 안에 있다는 뜻이다.

'수장이 자기 집으로 차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집부터 쳐야 한다!'
에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얼른 뒤를 돌았다. 자기들이 온 길과 그 토성 쪽의 거리를 측정해보기 위해서였다.

'기병들은 이쪽으로 급습하고 나머지는 보병은 토성 끝과 끝에서 조여들어 마을 전체를 쓸어버려야 한다.'

에인의 그런 전략은 사뭇 초보적일 수도 있었다. 특히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그는 마을의 속사정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증오심 때문이었다. 제후도 아닌 제후의 부친을 참수했다는 분노가 돌산을 내려올 때부터 그를 지배한 것이었다.

그가 반대편 토성 끝을 확인해보려고 발길을 옮길 때 사람 둘이서 양 한 마리를 매달고 연기가 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어떡헌다? 끝까지 다 확인을 해? 아니다, 그곳은 제후에게 물으면 된다.'

그는 천천히 토성에서 떨어져 나왔다. 별로 많이 벗어난 것도 아닌데 그는 별안간 내달리기 시작했다. 왠지 마음이 그렇게 달아올랐다. 말발굽소리가 크게 살아 올랐다. 그는 지휘 검을 꼭 잡았다. 아침공기가 별안간 더 차가워졌다. 그 찬 공기가 말발굽소리를 지긋이 눌러주었다.


그랬다. 그는 지휘 검을 든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듯이, 신기(神氣)가 든 지휘검은 주인에게 불리한 흔적을 자연으로 하여금 그렇게 삼키도록 지시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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