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을 보고 오다

등록 2004.03.10 08:06수정 2004.03.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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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서 돌아와서 남은 군대 생활 6개월을 중동부 전선 최전방에서 지냈다. 3개월은 대성산 아래에서, 3개월은 산 위 철책선 앞에서 생활했다.


철책선 근무 때는 병장 계급을 달고 분대장 노릇을 했다. 내가 맡은 구간은 110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지점이었다. 로프를 잡고 계단을 밟으며 잠복호들을 잇는 교통호를 오르내려야 했다.

내가 맡은 구간의 철책에 비무장지대로 나아가는 문이 있었다. 매일같이 수색중대 병사들이 그 문을 통해 저녁에 나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들어오곤 했다.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 사이, 그 공간에서 밤마다 매복을 하곤 한 것이었다.

내가 열어주는 통문을 통해 비무장지대로 나갔던 수색중대 병사들은 어김없이 돌아오곤 했지만, 수색중대 복장이 아닌 소수 인원은 한번 나간 것으로 그만이었다. 정말 소수 인원이 통문 밖으로 나가기만 하고 들어오지는 않은 그런 일도 있었다.

가끔 철책선 밖으로 나가서 벙커 보수 작업을 하거나 잡목 제거 작업을 했다. 원래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의 거리는 4Km이고, 그 가운데인 2Km 지점이 군사분계선이지만, 지형 관계로 양편 모두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간 곳이 많았다. 그래서 쌍방의 거리가 곳에 따라서는 좀더 지척인 상황이었다. 철책 밖으로 나가 걸음을 조금만 떼어도 군사분계선인 것이었다.

군사분계선 가까운 지점에 서서 지척에 있는 북방한계선 철책과 남방한계선 철책을 번갈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은 이상한 통증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그 통증이 내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더욱 많은 새로운 통증들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통증의 경험을 잊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떠올려보기도 하며 사는 가운데 30여 년의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30여 년의 세월에도 변함 없이 존재하는 DMZ,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으로 구성된 비무장지대의 실체를 지난 1일 다시금 접하게 되었다.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다분히 역설이다. 무장을 하지 아니한 지대, 조약 등에 의해서 무장이 금지된 지역, 완충지대 등등의 풀이는 단지 사전적인 표현일 뿐이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만큼 고도의 긴장이 첨예하고도 치열하게 응축되어 있는 곳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버스를 타고 한반도 한 가운데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순간, 나는 30여 년 전 군대 시절 군사분계선 앞에서 겪었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던 그 미묘한 통증 경험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방한계선 부근의 남측 헌병과 초병들, 군사분계선 너머 북방한계선 영역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앳된 얼굴의 북측 병사들, 버스에 올라 인원 확인을 하고 짐칸 검색을 하는 북측 병사들의 기계적인 동작들, 오늘의 제한적인 통행으로 말미암아 좀더 확연히 실감되는 것만 같은 비무장지대의 긴장감 속에서 다시금 이상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 통증 속에서 금강산을 행해 가고 있는 오늘의 내 발걸음에 무슨 의미가 실려 있고, 실려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일∼3일은 내게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소설가협회>에서 '고구려사 지키기'와 관련하여 '소설로 본 고구려 역사와 한민족의 정체성'을 주제로 금강산에서 세미나를 개최했고, 나도 그 뜻깊은 행사에 참가한 까닭이었다.

2박 3일 동안 금강산에 머물며 다시 한번 우리의 분단상황과 통일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절절한 체감 속에서 새롭게 얻은 슬픔과 희망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와서 그 갈피들을 되새겨볼 때 <한국소설> 편집부로부터 단편 청탁을 받았다. 그리하여 전에 써놓았던 작품들 중에서 한 편을 손쉽게 선택해서 일찌감치 보낼 수 있었다. 오늘의 분단상황 속에서 민족통일의 꿈을 키워 가는 이야기를 그린 <꿈의 성장(成長)>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 발표를 계기로 분단상황과 통일문제에 관한 작가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제법 괜찮은 소재들을 꽤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민족통일의 꿈을 수놓는 소설 작업에 신명을 바쳐볼 생각이다.

지난 3일 해금강과 삼일포를 둘러볼 때 오래 함께 걸으며 실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북측 환경관리원 최아무개씨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녀는 자신과 관련하는 무슨 글을 내가 만약 쓰게 되면 자신의 이름은 적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전에 그녀는 내게 물었다. "리완용의 후손이 조상 리완용의 유산(땅)을 찾겠다고 소송까지 하는 일을 작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네까?" 그녀의 그런 질문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에 연유하여 우리나라의 친일파 문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인상이 매우 각별하고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의 범위가 꽤나 넓어서 좋은 소설 소재가 될 듯도 싶다. 차라리 소설로 써야 제대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오로지 관광 목적만으로 금강산을 간 것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확신한다. 한국소설가협회의 여러 각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금강산 세미나 행사에 북한 작가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남한 작가들의 이런 움직임은 민족통일로 가는 길목을 한 걸음 더 넓히는 일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 숭고한 길목을 한 걸음 더 넓히고 닦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비록 내 문학의 힘은 약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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