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큰개불알풀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31)

등록 2004.03.15 09:03수정 2004.03.1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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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풀꽃
큰개불알풀꽃김민수
화려하고 큰 꽃들에 밀려 들판이나 길가 여기저기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는 작은 꽃들이 있습니다. 그냥 꽃이라는 이름도 아닌 '풀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서러운데 불경스러운 '개불알'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진데다 뭐가 그리 크다고 '큰'이라는 글자까지 붙여진 작은 풀꽃이 있습니다.

하잘 것 없는 풀꽃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자연과 괴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나 그렇고 나비와 벌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소중한 꽃인지 모릅니다. 이곳 제주에서 '큰개불알풀꽃'은 한겨울에도 따스한 양지라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냅니다. 왜 피어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듯합니다.


"혹시 이 엄동설한에 봄인 줄 알고 깨어난 벌과 나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주 작은 꽃이지만 큰마음을 담아 이른 봄이면 길가 밭두렁, 텃밭 할 것 없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납니다. 이 꽃을 바라보노라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이 새록새록 마음에 와 닿습니다.

김민수
개불알풀꽃은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이유로 인해서 밟히기도 하고, 뽑히기도 합니다. 텃밭이나 밭에 자리를 잡은 것들은 제초제에 뿌리까지 말라버리는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피어나니 마치 짓밟히고 또 짓밟혀도 마침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되고 주체가 되는 민중들의 삶을 닮은 꽃입니다.

그저 자기들 삶을 영위하기에도 버거워서 늘 버벅거리는 삶을 살아가다가도 중요한 역사의 시점에서는 불같이 일어나는 혁명의 주체, 그래서 역사의 주체가 되는 민중들입니다. 그래서 민중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권력은 언제나 민중들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김민수
비바람이 불면 화들짝 피었던 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작은 꽃이지만 끊임없이 피어나는 작은 풀꽃이지만 자기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그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비지땀을 흘리는 것만 같습니다.


맘몬(Mammon, 부(富), 돈, 재물, 소유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대립되는 우상 가운데 하나를 이르는 말- 편집자 주)을 숭배하게 되면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의 힘을 얻는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언제든지 자신들이 원하면 깔아뭉갤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뽑고, 짓밟고, 갈아엎은들 다시 피어나는 작은 풀꽃의 생명력을 보십시오. 그들을 뽑고, 짓밟고, 갈아엎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제초제라는 무시무시한 화공약품으로 그들의 뿌리까지 말린들 어찌 다시 피어나지 않겠습니까?


김민수
큰개불알풀꽃을 보면서 윤동주 시인의 <봄>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 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큰개불알풀꽃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풀포기처럼 피어난다'는 구절이 마치 이렇게 작은 '풀꽃'들에게 주는 희망의 언어 같습니다.

김민수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간혹은 이름 없는 들꽃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름 없는 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할 뿐이지 이름없는 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름이 있음에도 불려지지 않는 꽃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움추린 어깨들 다 펴겠네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아침을 맞겠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모두 하나될 그 날이 오면
얼싸안고 춤을 추겠네
한판 대동의 춤을 추겠네


백창우님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라는 노랫말의 일부분입니다.

이름 없다고 여겨지는 작은 꽃들까지도 다 이름을 얻는 그 날, 그 날이 언제일까요.

김민수
지금 저는 마음을 삭이고 또 삭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는 '급진세력'이라는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그저 소소한 것들, 작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삶의 행복을 느끼고, 의미를 찾는 나에게도 이런 딱지가 붙여질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분통이 터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든 그들과 함께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김민수
아주 작은 꽃입니다.

그냥 지나치면 볼 수 없는 작은 꽃입니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따스하게 바라보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모두 간직한 꽃이요, 이 나라 이 민족의 민중들의 삶을 고스란히 빼어닮은 꽃 중의 꽃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작은 꽃들이 하늘의 별처럼 피어났듯이 어두운 세상에 작은 평화를 기원하는 불꽃들이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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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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