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개구리발톱'

내게로 다가온 꽃들(32)

등록 2004.03.17 08:42수정 2004.03.17 13:20
0
원고료로 응원
개구리발톱
개구리발톱김민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절기를 24절기로 나누었습니다. 사계절을 따라 각 여섯 절기로 나눴는데 봄과 관련된 절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가 있고 여름은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가 있습니다. 가을은 입추로 시작하여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이요 겨울은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입니다.

각 절기마다 의미있고 재미있는 풍습도 있고 이야기가 전해집니다만 봄과 관련된 제주의 속담 중에서 '우수, 경칩에는 굼벵이도 나도나도'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굼벵이는 아직 더 있다 나와야 하는데, 아직 자기의 철이 아닌데 개구리를 위시한 동물들과 곤충들이 기나 긴 겨울을 보내고 기지개를 피니 덩달아 '나도나도'한다는 것입니다.

김민수

동식물 중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들이 있는데 '개구리'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개구리발톱을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시절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방학에 뭘 했냐고 물으면 '새우발톱'(?)깍는 아르바이트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새우발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갑각류의 새우니 뭔가 발톱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개구리발톱이라니 어린 시절 개구리를 잡아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먹기도 했지만 개구리발톱을 본 적이 없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개구리발톱이 있긴있나봅니다. 그 이름을 가진 꽃이 오늘의 주인공이니까요.

김민수
제주에서는 겨울에도 양지바른 돌담에서는 어김없이 개구리발톱이 푸른 이파리를 내고 있었고 간혹은 작은 꽃도 피어있었습니다. 이내 봄이 오니 여기저기서 개구리발톱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서 지천에 피어나는 아주 작은 꽃들을 보면 마치 개구리알에서 올챙이들이 깨어나는 형상 같기도 하고(물론 이름이 그렇다니까 연상이 되는 것입니다.), 개구리발톱의 이파리를 보니 개구리 다리의 지느러미를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꽃의 모양새나 씨앗의 모양새가 발톱을 닮았다는 이야긴데 언제 한 번 개구리를 만나면 발톱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김민수

꽃 이름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그 특징을 잡아서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것 같은 작은 꽃에도 붙여진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증거겠지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본래 우리들이었는데 큰 것에만 집착하며 살아가다가 작은 것들, 소소한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개구리발톱은 미나리아 재비목 미나리아 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여러해살이풀들은 뿌리가 튼튼한데 개구리발톱 역시도 덩이줄기가 있습니다. 뿌리가 실하면 꽃도 화려할 듯한데 개구리발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꽃도 많이 피우지 않고 한 두 개씩 피우는데다가 아주 작은 흰색 꽃을 피우고, 이 꽃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밑을 향해 달리는 '개구리발톱'의 모양새에서 외양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모습을 봄과 동시에 겸양의 미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이렇게 작은 꽃이지만 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의미죠. 온전하다는 의미랍니다.

김민수
우리는 지나치게 '사람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 있듯이 삼라만상에도 다 소중한 것이 있고,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온전한 생명이 짓밟히고 죽임을 당할 때 당사자보다도 어머니는 더 마음 아파합니다. 들꽃들의 어머니, 그것은 대지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파헤쳐지는 산하, 그리고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어느 날 백주대낮에 뜨거운 햇살에 속뿌리를 다 드러내 보이고 말라 죽어가고 급기야는 검은 아스팔트와 시멘트 구조물에 갇혀버려 죽어 가는 수많은 온전한 생명들의 아우성을 보아야 합니다.

들꽃은 자기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 외에는 갖질 않습니다. 소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함으로써 이웃들의 것까지도 탐합니다. 결국 이웃과 자신이 함께 죽어갑니다.

아름다운 곳이면 가릴 것 없이 골프장이 들어서고 위락시설이 들어섭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죽어 가는 산들과 뽑혀나가는 들꽃들과 나무를 보노라면 인간들의 하는 짓이라는 것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어떤 자연도 자연에게 그런 횡포를 자행하지 않습니다.

개구리발톱의 열매-저 안에는 까만 씨앗이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개구리발톱의 열매-저 안에는 까만 씨앗이 영글어가고 있습니다.김민수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온전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꽃이 있는 이유는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꽃이었을 때에도 아름다웠습니다만 꽃이 진 뒤에 맺혀지는 열매들의 아름다움들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새순을 내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후 열매를 맺고, 다시 자기의 고향 흙으로 돌아가 다시금 새순을 내고 뿌리를 내리고 하는 모든 시간들이 다 아름답기에 '자연'이요,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꽃들 중에서도 작은 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작다고 크다고 따돌리는 일도 없고 기죽는 일도 없습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모여 피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개구리발톱.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충분하게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