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99

어떤 놈이야? (7)

등록 2004.03.17 14:36수정 2004.03.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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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여, 여긴? 이게 뭐야?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본좌를 이렇게…? 어서 이걸 풀지 못하겠느냐?”
“아가리 못 닥쳐? 어디서 지저분한 쥐새끼가 지저귀는 거야?”
퍼억!

기둥과 기둥 사이에 활개를 벌린 채 묶여 있던 사내는 흑의 복면을 한 여인의 주먹질에 나직한 비명을 토했다.


“으윽! 너, 넌 누구냐? 웬 계집이 감히….”
“뭐라고? 웬 계집…? 이런 빌어먹을 놈이? 에잇!”

퍼어억!
“으으윽! 이, 이런 나쁜 년! 네까짓 게 뭔데 감히 나를…?”

혼절에서 깨어나자마자 느닷없는 주먹질에 정신을 차릴 수 없던 사내는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을 패는 사람이 여인이라는 것만은 파악한 듯하였다.

“뭐라? 나쁜 년? 이놈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군. 좋아, 그럼 어찌된 상황인지 알려주지.”
퍼억! 퍼억! 퍼퍽! 퍼퍼퍼퍼퍼퍽!
“으으윽! 으으으윽! 으윽! 악! 으윽! 캑!”

쉴새 없이 작렬하는 주먹은 이마, 뺨, 목덜미, 가슴, 배, 옆구리를 가리지 않고 가격하였고, 그때마다 묵직한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격렬한 통증을 느끼는지 여지없는 비명을 토하고 있었다.


어젯밤, 아름다운 기녀들을 끼고 거나하게 술 한잔하던 사내에게 있어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곳은 선무곡 제일 다루(茶樓)인 다향루 지하에 있는 제세활빈단 총단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저잣거리 한 복판에, 그것도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나 드나드는 다향루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난 밤, 일타홍 홍여진을 비롯한 제세활빈단원들은 쥐새끼 사냥에 나선 바 있었다. 발로 밟아 터뜨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쥐새끼는 호사스럽기로 이름난 기원에 자리를 잡고 악인록 후반부에 기록된 몇몇 생쥐들과 대작하고 있었다.

서성감, 백잔성, 신혜서라는 성명을 지닌 생쥐들이었다. 그들은 최근 들어 부쩍 잦은 회합을 가졌다.

보나마나 뭔가 말도 안 되는 협잡을 획책하는 모양이었다.

지난 밤 조잡재는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늘 하던 소리를 또 했다. 그 이야기는 방조선과 금동아에 의하여 평생토록 세뇌당한 노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일흔서생을 선호하는 자식들에게는 용돈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쥐들은 맞장구를 치며 열변을 토했다. 그에게 잘 보이면 나중에라도 한 자리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가운데 가장 나쁜 놈은 뭐니 뭐니 해도 백잔성이었다.

마땅히 칠성당에 치성 드리는 것을 제일로 해야 할 무당 주제에 곡의 대소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등 온갖 미친 짓을 다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생쥐인 서성감은 변견자 조잡재에게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곡도들의 항의가 있을 때 느닷없이 품에 감추고 있던 암기를 투척한 미친 새끼였다.

신혜서는 쥐뿔도 모르면서 서성감이나 조잡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멍청한 쥐새끼였다. 그는 한때 방조선처럼 되고 싶다면서 자그마한 의방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자신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운영자금에 문제가 없다고 하였지만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자가 없어 의방의 문을 닫아야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를 전방에 내세워 음모를 도모하려던 조잡재가 후원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잡재로서는 생각보다 쓸모가 없자 후원을 끊었고, 그 즉시 문을 닫아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혜서는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별 볼일 없지만 그가 좌지우지하는 최견구 일당 중 누군가가 대권을 움켜쥐면 한 자리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술자리는 조잡재가 떠들고 나면 서성감 등 세 마리 생쥐들이 환호하는 모양새로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끄럽고 유치한지 시중들던 기녀들마저 아미(蛾眉)를 찌푸릴 정도였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넷은 곤드레만드레 취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잤다. 술시중을 드는 기녀들이라면 의당 각자를 정갈한 처소로 데리고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잡재나 서성감, 백잔성이나 신혜서 같은 쥐새끼들의 은자는 더러워서라도 받지 않겠다고 나가버린 것이다.

기녀들이 사라지고 난 뒤 사위가 적막에 싸여 있을 즈음 일단의 복면을 한 무리들이 기원 마당에 내려서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어깨에는 네 개의 포개가 올려져 있었고, 그들은 올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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