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배수아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여 정치 냉소주의를 부추기곤 한다. 냉소주의를 잠재우고 선거의 의미를 강조하고 투표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데, 실망스런 태도가 아닐 수 없다. 2000년의 16대 총선에서 그녀가 투표를 하지 않게 된 '무용담'을 들어보자.
"나는 원래부터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음을 자랑스럽게 코에 걸고 다니는 부류는 아니었다. 가능하면 하는 것이 좋은 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투표날만 되면 친구가 찾아온다든지,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가게 된다든지, 개를 목욕시킨다든지 하게 되나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투표일, 나는 새벽부터 회사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했다."(『한겨레21』2000년 4월27일자)
투표가 가능하면 하는 게 좋은 그런 것인가? 그러니 개 목욕시키는 일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4년만에 등장한 배수아는 또 다시 정치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3월 30일자 A4면의 '정치 냉소자들 - "정치여, 나도 투표하고 싶다"'에서다.
배수아는 여기서 투표를 하겠다는 유권자 중 각각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30대 후반의 여성을 소개한 후 선거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두 여성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포기한 냉소주의자들을 부각시킨다. 젊은이들의 시니컬한 태도를 과장해 놓았으며, 일생 동안 투표하기를 거부해온 자랑스런(?) 경력의 근본적 냉소자 K씨(여·31)가 투표하는 대신 그 동안 후원해온 소년소녀가장 돕기 모임에 자원봉사를 가기로 했다는 얘기, 대학시절 운동권이었으나 현실적 안정을 희구하게 된 회사원 E씨(여·35)와 홍대 앞에서 만난 직장인 K씨(여·34)의 사연 등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직장인 K씨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나도 정말 (투표)하고 싶다. 그런데 그 '조금'이 없다"고 했다 한다. 이 사람의 경우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염려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관심과 염려가 직업정치가들에 대한 미움과 환멸을 극복하게 해주지는 못하므로" 계속 냉소자로 남아 있겠다는 부류라고 한다.
배수아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지지하는 정당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투표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냉소자들이 매우 많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냉소자들의 선택이 보다 더 일리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냉소주의와 투표 포기를 조장하는 듯한 논지의 전개다.
어쩌면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변한 게 없을까? 탄핵 이후 80%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투표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는 현실에서 어째 배수아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그 모양일까?
선거란 민주주의의 핵심적 제도이며, 투표는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가능하면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의무적으로 해야만 한다. 4년 전 넋두리를 늘어놓았듯이 낙선 대상자가 없어도, 30대의 정치신참이 없어도, 케네디처럼 잘 생긴 사람이 없어도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선거다.
"미소짓는 사람은 느끼했고 나이든 사람은 무서워 보였다"는 게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어차피 그들은 일단 당선되고 나면 나와는 너무나 상관없을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배수아와도 너무나 상관 있는 사람들이다. 배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수고를 회피한 까닭에 16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대형사고'를 치게 된 것이다.
다음에 또 이런 글을 쓸 때는,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투표장엘 갔다든지, 재미있는 영화도 투표를 한 후 보았다든지, 개 목욕도 투표를 한 후 시켰다든지, 일생 동안 투표를 거부해온 게 자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든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가장 덜 싫은 후보라도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설득했다든지 하는 진짜 '무용담'을 들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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