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늙은이들두 반성을 허얀다구"

총선의 추억 ③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

등록 2004.04.12 12:51수정 2004.04.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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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국민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열 번 치렀다. 동시에 치러진 부통령 선거는 세 번이다. 그리고 국회의원 총선거는 1960년에 한 번 있었던 참의원 선거까지 포함하여 열일곱 번을 치렀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는 네 번이 있었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는 세 번이 있었다. 1956년과 1960년에는 읍·면장 선거도 있었다. 광역의회 선거는 일곱 번, 기초의회 선거는 네 번이 있었다. 또 과거에는 읍·면의원 선거도 세 번이 있었다.

여기에 대통령 간선을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라는 게 유신 시절에 두 번 있었고, 대통령선거인단 선거라는 것이 5공 시절에 한 번 있었다.

그리고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다섯 번 있었고, 박정희의 유신체제 신임을 묻기 위한 국민투표가 한 번 있었다.

국민투표는 제외하더라도, 나라와 지역의 일꾼(대통령 간선을 위한 사람들까지 포함하여)을 뽑기 위한 국민의 직접선거라는 큰 정치 행사가 도합 56회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48년의 초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그 모든 선거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합 56명에게 표를 주어온 셈이다.

1948년생으로 1969년 군에 입대한 해에 영내에서 이른바 '삼선개헌 국민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처음 투표권을 행사했던 나는 지금까지 도합 스물 아홉 번의 직접선거에 참여하여 스물 아홉 명에게 표를 주었다(서른 번이 될 뻔했는데, 1971년의 제8대 국회의원 총선에는 월남에서 참여하지 못함).


여기에서 대선과 총선 두 가지만을 놓고 굳이 내 표의 '사활(死活)'를 구분해 보자면, 대선에서는 네 번의 투표 중에 두 번이 '승표(勝票)'가 되었으니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총선에는 모두 여덟 번 참여하여 무려 여섯 번이나 승표가 되었지만, 이중에서 네 번은 한 선거구에서 두 명씩 당선하던 중선거구제 시절의 투표라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소선거구제로 실시된 총선에서는 두 번, 내 표가 사표(死票)가 되지 않고 승표가 된 것이다.

소선거구제로 실시된 총선에 참여한 것만을 놓고 본다면 역시 대선에서처럼 나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오늘 내가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1948년의 제헌의회 총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갖가지 모든 선거에 참여한 사람, 그리하여 도합 56명의 당선자에게 표를 준 사람, 여섯 번의 국민투표까지 포함하여 62번이나 모조리 승표만을 거둔 사람도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까닭이다.

독자들 중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자기 표를 한 번도 사표로 만들지 않고 모조리 승표로 만든 놀라운 '성공' 사례는 물론 흔치 않겠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1996년 <내일을 여는 작가> 11·12월호에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1995년의 지방선거와 96년의 제15대 총선에서 충청도 지방을 휩쓸었던 이른바 '신지역감정' 바람의 실체 속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연결시켜 형상화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구도 속에 평생 동안 수많은 선거에서 오로지 승표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 노인에게는 놀라운 신통력(?)이 있었다. 자기 표를 사표가 아닌 승표로 만들고 싶은 일념으로 이미 대세를 업고 있거나 어렵게라도 이길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에게 표를 주었는데 매번 들어맞곤 했다. 일찌감치 마음을 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누가 이길지 알 수가 없어서 막판까지 고심을 하다가 표를 준 경우도 있었다.

그는 막판까지 고심을 할 때는 더욱 이상한 쾌감을 느꼈고, 신기하게도 자신의 선택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큰 희열을 느꼈다.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경우에는 쾌감과 희열이 배가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기분이 그를 계속 그런 방향으로 몰아갔다.

내가 소설에서 형상화한 그 노인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 노인을 서산의 어느 술집에서 만났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우연히 동석을 한 관계로 자연스럽게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동기였다. 나는 그 노인에게 막걸리 대접을 하며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노인을 만난 것이, 그리고 그 노인으로부터 자신의 신통력을 과시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을 질타하는 '나'의 글을 지역신문에서 읽은 안면도의 한 청년이 나에게 전화폭력을 가한 다음 흥분 상태로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를 당해 죽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청년의 아버지로 그 노인이 설정되었다.

아들을 잃게 되는 사연이 연유가 되어 나와 만나게 된 그 노인이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나에게 고백을 하는 형식으로 노인의 그 '신통력'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노인이 자신의 그런 평생의 투표 방식이 몹시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처리가 되지만, 나에게 소재를 제공해 준 실제로 존재하는 그 노인을 그 후 나는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서산의 그 술집에 두어 번 다시 갔지만 그 노인을 수소문해 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노인의 그 후의 투표 행위가 참 궁금하다. 내 소설에서처럼 어떤 계기로 말미암아 자신의 그런 투표 방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지는 않았는지, 그 후로도 줄곧 그런 방식의 투표를 거듭했는지, 그리했다면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계속 승표만을 거두었는지 두루 궁금하다.

그리고 그 노인이 지금도 살아 있고 만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을 접했다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도 참 궁금하다.

사실 그 노인에 관한 사례는 매우 특이하고도 희귀한 경우일 것이다. 그런 만큼 소설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유형일 터이다.

하지만 옛날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는 생각으로 투표를 한 사람들, '뭘 받았으면 표를 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요, 올바른 양심'이라고 생각한 사람들, 선거 때마다 학연 지연 혈연 따위를 따지는 것도 부족해서 지역감정 바람에 여지없이 휘말린 사람들과 그 노인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오늘의 노인들이 모두 그 노인과 어떤 공통성을 갖는 것은 절대로 아니겠지만, 오늘의 현실을 만들어온 과정을 놓고 보면 시대상황과 관련하는 이해 속에서도, 노인들이 뒤늦게나마 반성이나 책임 통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기를 희구해 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지난 8일 오전 내 12인승 승합차에 어머니와 친구 노인 분들을 가득 태우고 15분 거리인 삭선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병환 중인 한 할머니 댁을 문병한 일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가고 오는 차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총선 관련 이야기가 화제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얘기 중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 얘기가 나왔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흥미를 갖고 노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충 세 부류로 노인들을 나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한 부류는 정 의장의 그 발언을 몹시 기분 나빠하는, 아직도 노여움을 삭이지 못하는 노인들이었다.

또 한 부류는 이제 그만 이해를 하자는 쪽이었다. 그들은 대략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그 사람이 그만큼 반성을 허구 사죄를 혔으면 된 거여. 자신의 말실수 때문에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 겨. 테레비에 나오는 거 보니께 얼굴이 안 돼 보이더라구. 자꾸 그 얘기 되씹으면 우리 노인들만 더 추헤지는 겨."

마지막 한 부류의 태도는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올해 83세나 되신 김봉순 할머니의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정동영의 말은 물론 잘못된 말이구, 우리 노인들이 된통 무시를 당헌 거지먼, 그렇다구 우리가 무조건 노여워만 헐 것두 아녀. 우리 늙은이들두 반성을 혀야 혀. 오죽허면 그런 말이 나왔겄어? 우리가 옛날 고생허구 산 것만 내세워서두 안 되어. 늙은이들이 젊은 사람들헌티 존경받지 뭇허는 건 늙은이 책임두 큰 거여. 그러니께 감정적으루만 나가서는 안 되는 겨. 늙으면 애 같아진다는 거, 좋은 뜻만은 아니니께 잘 챙겨야 헌다구."

그 할머니는 단 하나뿐인 외손자가 작년에 천주교 신부가 된 덕에 특히 내 어머니로부터 더욱 대우를 받는 분이었다.

그 날 내 차를 이용하신 열한 명의 노인들 중에는 평생 동안 수많은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를 해오면서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은, 그리고 같은 성격 비슷한 유형의 사람도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별로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현실적인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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