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을 닮은 '개별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44)

등록 2004.04.22 07:29수정 2004.04.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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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꽃
개별꽃이선희
계절의 변화가 실감날 정도로 급변하는 혁명같은 시기가 있다면 바로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천천히 봄이 오는가 싶다가 이젠 달음박질을 해도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산야에 꽃이 피었다 지고 있습니다.

모든 꽃들과 눈맞춤을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만난 꽃들 모두 소중한 인연이려니 생각하며 그 꽃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꽃을 대하는 사람들마다 꽃을 사랑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어떤 분은 조심스레 꽃잎을 한 장 따서는 책갈피에 끼우는 분들도 계시고, 꽃향기를 맡는 분들도 계시고,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계시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 사랑하는 것을 닮아가게 되니 참 좋은 일입니다. 들꽃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면 참 따스한 사람들임을 알게 됩니다.

김민수
식물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면 대체로 기준이 되는 식물에 비해 작거나 모양이 다르다고 합니다. 개망초, 개머루, 개쑥부쟁이, 개양귀비, 개연꽃 등등은 기준이 되는 식물보다 작고 못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해 드리는 개별꽃은 그렇지 않습니다. 별꽃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꽃 중에서는 제법 큰 꽃을 달고 있는 편이거든요.

제가 하는 일의 특성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소외된 것, 작은 것, 못 생긴 것에 애착이 많이 갑니다. 크고 화려한 꽃들도 물론 예쁘지만 작은 꽃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은 크고 화려한 꽃들이 주지 못하는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김민수
개별꽃도 그랬습니다. 한라산 중산간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도로변에 하얗게 피어난 개별꽃들을 지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개별꽃을 따라 숲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들어가다 보면 현호색, 새끼노루귀, 복수초, 남산제비꽃, 개족두리, 천남성 등 수없이 많은 꽃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들판에 형형색색의 별들이 피어있는 듯 하여 그 별들을 짓밟기라도 할까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별들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치 '개'라는 글자가 '연다(開)'는 뜻을 가진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까지도 하게 됩니다.

김민수
얼핏보면 하얀색이지만 꽃술은 마치 붉은 팥을 잔뜩 붙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 화려하지 않는 색, 배색도 아니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개별꽃의 다른 이름은 뿌리가 인삼을 닮아 '태자삼'이요, 꽃 모양이 별을 닮아서 '들별꽃'이라고도 합니다. '태자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의 몸에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정신피로, 담, 건망증, 불면증, 입맛 없을 때, 위암, 폐암 등에 약으로 쓴다고 합니다.

김민수
들꽃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쩌면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에 따라 차별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귀한 약재로 사용되지 않으면 화려하기라도 해야 사랑을 받지만 귀한 약재로 사용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아서 인간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들꽃은 때에 따라 자신이 가진 최고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어떤 꽃들은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피어 있지만 그들이 언제라도 한번 그들을 보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들꽃은 아주 오래 전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김민수
꽃은 연약합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지고, 폭우가 쏟아지면 뿌리까지 뽑혀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위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반드시 어디에서고 피어납니다. 그래서 꽃은 강합니다.

때로는 바위틈에서 때로는 검은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기도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피워냅니다.

김민수
꽃에 대한 글을 쓰려면 식물도감 서너권을 비교해 봅니다. 그리고 꽃말이나 꽃이야기를 찾아보고, 그와 관련된 문학작품들이 있는지도 알아봅니다. 이런 것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으면 조금 밋밋하기는 하지만 꽃에 대한 글을 쓰기가 수월합니다.

그러나 어떤 꽃들은 분명히 무슨 이야기나 꽃말이 있을 듯도 한데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꽃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늘 아쉬운 것이 있었습니다. 도감상으로는 거의 천편일률적인 해설이 주를 이루고, 사진상으로는 구분하기가 힘든 것도 있고, 주로 인간에게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정도입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효능은 뒤로하더라도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으면 변방 취급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어떤 약효가 있다고 하면, 희귀종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뽑혀져 나가고 상품화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김민수
꽃,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며 누군가 잠시 눈길을 주며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들을 바라보며 사색함으로 삶의 위안도 얻고, 삶의 여정을 돌아보기도 하는 그런 존재, 가끔씩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꺾어도 늘 풍성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그런 만남이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꽃말이 없다고 서러워 말아라
너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고 슬퍼 말아라
네 안에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미워하지도 말아라
서러움, 슬픔, 미움 같은 것들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결국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겠니?
꽃말을 얻지 못했어도
애절한 전설을 얻지 못했어도
어느 날 문득 너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짓는 이들이 있잖니
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도
말을 안 해도
네가 간직한 그 모습 그대로 늘 피고 짐으로
황량한 들판을 아름답게 만드는 너의 모습이 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작시-꽃에게>

김민수
작은 별을 닮은 개별꽃. 이들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번 그들에게로 다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그 시간을 하루 이틀 미루다 일년을 꼬박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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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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