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백화산 '교장바위' 이야기

등록 2004.05.08 08:28수정 2004.05.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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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기록'이라는 것이 일찍부터 생활화되지 못했다. 문자라는 것이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데다가 한자 자체가 위압감을 주는 탓이었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이 오래 언문으로 불리며 박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기록은 자칫 화를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기에 서민 대중이 '기록의 가치'를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실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관계로, 한국천주교는 100년에 걸쳐 수많은 박해를 겪으며 1만 명이 넘는 순교자를 내었지만, 신유(1801년)박해의 순교자들은 일단 제외되고 기해(1839년), 병오(1846년), 병인(1866년)박해 순교자들 중에서도 확실한 기록이 뒷받침되는 103위만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를 수 있었다.

동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늘날 민중사의 큰 봉우리로 평가받는 1894년의 갑오동학혁명도 별다른 자체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모든 사실은 구전(口傳)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구전조차 여의치 못했다. 그럴 것이, 동학군에 가담하여 '역적질'을 하다가 죽은 사람은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고 해 감시 속에서 쉬쉬하며 살아야 했다. 당연히 구전도 철저히 제약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분명한 기록도 없고 구전조차 공공연히 이루어질 수 없다보니 우리 고장의 경우 백화산 '교장바위'의 유래도 구전 단절 현상이 빚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장바위'라는 그 특이한 이름의 유래를 거의 잊거나 무관심으로 대했고, 한때는 '校長바위'로만 알고 살아왔다.

나는 교장바위 아래에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이 건립된 사실과 관련하여 교장바위 자체에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미처 '絞杖'이라는 말은 생각하지 못했다. '목을 졸라 죽이고 때려죽이는 것'을 뜻하는 그 살벌한 말이 그 바위의 이름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바위 이름의 확실한 유래가 늘 궁금하던 중 10여 년 전, 향토사학 쪽에 조예가 있으신 박국환 선생님으로부터 '校長바위'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태안신문>과 <흙빛문학>에 소개된 그 이야기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었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을 깔보고 능멸하는 일본인들의 가게에 새벽 돌 투척을 감행한 일로 주재소에 구금된 학생들이 본서로 넘어가지 않도록 유치장 안에서 함께 생활한 일본인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교장 선생님에 대한 감사 표시로 학부모들이 그 분의 이름을 바위벽에 새긴 것에 연유하여 그때부터 그 바위가 교장바위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보통 미담이 아니었다.

어린 조선인 학생들의 기개를 전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그 기개를 높이 산 일본인 교장 선생님의 바른 사표를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것은 참으로 뜻이 깊고 값진 미담이었다.


그래서 나도 1997년 <태안읍지>를 편찬할 때 태안읍의 세 개의 전설을 발굴 기술하면서 '교장(校長)바위의 유래'도 보충 정리해서 수록했던 것이다.

원래의 이름인 '絞杖바위'가 일제 때 '校長바위'로 쉽게 바뀐 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의 사회 분위기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법하고, 백화산 기슭에 태안초등학교가 자리잡은 것도 한 몫을 했을 터이다. 그리고 絞杖과 校長의 뜻이 각기 너무도 현격한 질감의 차이를 사람들에게 심어준 탓이었을 법도 하다.

아무튼 지난호 <태안신문>에 게재된 안용환 선생님의 '絞杖바위의 유래'를 읽고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큰 기쁨과 다행스러운 느낌을 안았다. 여러 가지 사항들을 면밀히 유추하고 고려해 볼 때 '校長'보다는 '絞杖'이라는 이름이 더 설득력이 있고, 또 그 이름의 정착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이 고장의 작가로서 우리 고장의 자랑인 동학혁명 당시의 북접 기포와 관련하는 교장바위의 이름 유래를 좀 더 착실하게 파고들지 못한 점이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확실한 유래가 알려지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긴다. 아울러 안용환 선생님의 노고에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지금 백화산 교장바위 옆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제라도 태안군은 새로 돈과 수고를 들이더라도 기존의 안내판을 철폐하고 '校長바위'가 아닌 '絞杖바위'의 유래를 알릴 수 있는 글을 적어 넣은 새 안내판을 만들어 설치해야 할 것이다.

'絞杖'이라는 말이 음울하고 슬픈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교장(絞杖)바위'라는 이름이 '교장(校長)바위'라는 이름보다 한결 고장의 명예와 역사적 사실을 실팍하게 내포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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