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24

별들이 모여있는 집 1

등록 2004.05.12 04:51수정 2004.05.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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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는 산을 넘어 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곳으로 갔습니다.

천문신장님이 사신다는 산에 거의 다다르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었습니다. 그 계곡 입구에는 이상한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부리부리한 눈에 불그스레한 피부에,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달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리는 순간 섬찟 놀라 백호 옆에 바싹 붙었습니다.


"저, 저게 뭐야... 저게 산오뚝이라는 거야???"
"아냐, 저 분은 도깨비야."

도깨비를 보자 백호가 물었습니다.
"어이, 도깨비 아저씨, 여기는 웬일이셔요?"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긴옷을 입고 있는 도깨비는 두 다리를 모아 성큼 성큼 뛰어오는 듯한 걸음걸이로 바리와 백호 앞에 나타났습니다. 허리에는 말로만 듣던 도깨비 방망이가 걸려있는지 도깨비가 움직일 때마다 같이 위 아래로 움직였습니다.

"천문신장부인께서 자네가 오는 것을 보고 마중 나가라고 말씀하셨네."

말로만 듣던 도깨비를 처음으로 만나는 바리는 여전히 백호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바리야, 염려할 것 없어, 이 분은 좋은 도깨비야."

도깨비는 얼른 바리의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가까이서 본 도깨비의 얼굴은 생각했던 것처럼 무서워보이지 않았습니다. 불그스레한 얼굴은 붉은 빛을 발하는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고, 부리부리해 보이는 눈동자 역시 보름달처럼 맑게 빛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런 바리의 마음을 읽고 있는지 도깨비가 먼저 말했습니다. 허리에 달린 것은 방망이가 아니라 큰 칼 같았습니다.

“어때, 가까이서 보니까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가 않지?”

도깨비는 등을 돌려 계곡 옆 숲길로 두명을 안내하며 앞장서 들어갔습니다. 도깨비는 바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천문신장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산과 강, 들판, 날씨, 하늘의 별자리를 주관하는 분이야. 나는 그 분 밑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단다."

바리가 물었습니다.
"이 산엔 산오뚝이들이 없어요?"

"이 산에는 산오뚝이들이 살지 않아. 여기는 산오뚝이들이 할 일이 전혀 없거든"

"산오뚝이들은 나쁜 사람들인가요?"
도깨비는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람들?? 그 놈들은 사람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한 귀신도 아니란다. 우리나라 산에 가면 어딜 가나 있는 요괴들인데, 돌덩어리에서 생기기도 하고, 나무에서 나오기도 하고, 풀에서 자라기도 하고 어디에서나 자라는 놈들이야. 다 자라지 못한 놈들이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누가 하는 말에 금방 속아서 시키는대로 일을 다 해주는 미련한 놈들이지. 그 산오뚝이들 중에는 우리가 데려와서 훈련을 시켜서 우리와 같은 도깨비로 만들어주는 일이 있는데, 그 호랑이들이 그 어린 것들을 많이 잡아다가 자기들 편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 놈들을 뭔가로 홀려버린 것이 분명해."

"그럼, 도깨비 아저씨도 산오뚝이였어요?"
도깨비는 또 껄껄 웃었습니다.

"아니야, 난 아니야. 도깨비는 그냥 도깨비일 뿐이지... 산오뚝이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도깨비가 될 수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우리 도깨비들 밑에서 시중이나 들어야 돼. 아니면 영원히 나무나 돌덩어리 속에서 산오뚝이로 살 수도 있고….”

“그런데 아저씨는 도깨비 방망이가 없나요?”
그러자 도깨비 아저씨는 숲이 울릴듯 또 큰소리로 껄껄껄 웃었습니다.

“허허허,바리는 참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로구나. 우리 도깨비들은 네가 아는 것처럼 사람들 앞에 나타나 방망이로 요술이나 부리는 사람들이 아니야. 물론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이곳에 사는 신들과 사람들을 나쁜 악령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단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물건을 꺼내어 보여주었습니다.
“보이니? 이것은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한테는 칼이 될 수도 있고, 착한 사람들에게는 요술방망이가 되어서 돈을 안겨줄 수도 있단다. 바리 너에겐 무엇으로 보이니?”

“제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방망이 같아요.”
백호가 도깨비는 같이 껄껄껄 웃었습니다.
도깨비가 보여주는 그 물건은 아무 장식도 없는 그냥 막대기 같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마치 저녁이 된듯 어둑어둑 해보일 정도로 울창한 숲에는 반딧불이 살고 있는지 신비로운 불빛이 반짝이며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도깨비 아저씨와 이야기 하며 걸어오는 사이 그런 숲길은 어느덧 끝이 나고 넓은 풀밭이 나왔습니다. 마치 누군가 예쁘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숲 한가운데 동그랗게 공터가 나있었고, 그 가운데 그림에서 본 것 같은 예쁜 기와집이 있었습니다. 집 주변으로는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길다란 바위들이 줄을 맞추어 차례차례 늘어서 서있었습니다.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천문신장님은 저기에 살고 계셔. "
어마어마한 대궐 같은 집을 기대하고 있던 바리는 조금 놀랐습니다. 저런 집에 세상의 지리를 주관하신다는 지리천문신장님이 살고 계시다니..... 저런데서 하늘과 땅을 어떻게 움직이고 계시다는 건지.

그 집 앞 대문엔 옷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바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문 앞에 나와 서계셨습니다. 저고리는 하늘색을 닮은 듯 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치마 색깔은 흙색깔을 머금은 것처럼 붉게 물들어있었습니다.

바리가 집 앞으로 다가오자 아주머니는 몇 발자국 앞으로 나오셔서 바리와 호랑이를 맞았습니다. 호랑이는 그 아주머니께 큰절을 올린 후 바리에게 말했습니다.
"인사 드려, 지리천문신장 부인이셔. 이 분이 천주떡을 만들어 주실거야."

바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지리천문신장님의 부인이라는 분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바리는 인사성이 참 밝은 아이로구나. 인사하는 모습이 아주 예쁜걸."
아주머니의 모습은 텔레비젼에서 보던 아리따운 배우처럼 예뻤습니다. 천문신장 부인님은 도깨비를 불렀습니다.

"손님 모시고 오느라 수고 했구나. 이제 돌아가도 좋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바리야, 백호야, 나중에 또 만날 날이 있을거야."

그러더니 도깨비는 순식간에 밝은 불꽃이 되어서 허공을 맴돌더니 저 너머의 숲을 지나 휘익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숲 속에서 보던 그 많던 신비로운 불꽃은 전부 이곳에 살고 있는 도깨비들이었나 봅니다. 깜짝 놀란 바리를 보고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이곳에 너무 놀라운 일이 많지? 허허, 어서 들어가자꾸나. 하지만 들어가서도 놀라면 안돼."

"어...여기도 인기척을 하지 않으면 혼 나나요?"

측간신에게 혼이 난 기억을 떠올리며 바리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아니야, 여기는 아무도 너를 혼낼 사람이 없단다. 그냥 나만 따라들어오면 돼."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지만, 안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컴컴해 보였습니다. 그런 어둠 속으로 아주머니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백호를 따라 들어간 바리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겉에서 보기엔 그렇게 작아보였던 기와집의 내부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가 온통 그 안에 다 모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리는 자기가 서있는 곳을 보고 하마터면 고꾸라질뻔 했습니다. 발 밑으로 물줄기가 콸콸콸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바다가 거센 파도를 치며 달려들다가 갑자기 잠잠해 지고 육지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천정으로는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별들이 검은 하늘에 다닥다닥 박혀 빛나고 있었고, 저 쪽으로는 복숭아만한 불덩이가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태양 같았습니다. 그 별들 사이로 이름을 알 수 없는 꼬리가 긴 새들과, 불꽃처럼 빛나는 깃털을 가진 동물이 우아하게 날아다니면서 또다른 금가루를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방 가운데로는 푸른빛으로 이글거리는 지구의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그것은 정말로 거대한 방이었습니다. 벽도 없고 천정도 없고, 방바닥도 없었습니다. 그냥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리는 신이 나서 저 건너편에 산을 향해 뛰어보기도 했습니다. 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지만 바리가 다가가면 언제가 움직였는지 다시 아까 그 곳에 서있었습니다. 하늘에 박혀있는 금가루들도 손을 뻗치면 바로 따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리 팔을 뻗어서 따보려 해도 닿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는 바리의 등을 앞으로 미시면서 말했습니다.

"저 아래 강물에 빠질 것 같아서 겁나지 않니?"

바리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빠져보려고 하는지 양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엄마 아빠와 같이 갔던 놀이공원에도 그런 신비로운 구경거리는 없었습니다. 그때 한 목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심해라. 정말 강을 밟으면 빠지는 수가 있다."

방 한가운데 이글거리는 지구의 뒤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 한분이 걸어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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