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골목'

[이철영의 전라도 기행 29] 골목대장 떠난 골목의 아련한 추억

등록 2004.05.13 17:34수정 2004.05.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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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70년대 초반의 '국민학교' 시절.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우리집 살림살이 중 전자제품이라고는 바닥이 새카맣게 눌은 다리미가 전부였다. 나는 날이면 날마다 저녁밥까지 얻어 먹어 가며 염치없이 옆집 텔레비전 앞을 굳건히 지켰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집에도 미끈한 다리에 문짝까지 달린 '금성 텔레비전'이 들어 왔다. 그 환희의 상자 속에서는 마징가제트, 서부소년 차돌이, 김일의 박치기가 불꽃을 튀겼다. 우와! 그들의 활약에 악당들은 몸 둘 바를 모르고 헤맸다.


오창석
텔레비전 바깥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매월 15일은 쥐잡는 날'로부터 '무찌르자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잡아 족치며 대한민국은 정의사회 건설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 같은 내 인생'은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도 무료한 세상살이에 지친 나에게도 무찔러야 할 '적'이 필요했다. 물론 적들은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로, 그들은 골목에 발을 들여 놓은 죄 하나만으로 테러의 희생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맨땅으로 위장된 늪에 발을 디뎠으며, 주워다 던져놓은 뱀의 사체에 놀라 비명을 내질렀고, 우리집 대문을 열 때는 자동으로 투하되는 물 폭탄 세례를 받아야 했다.

광주시 서구 양 3동 주택가 골목에서 고등학생들이 말뚝박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
광주시 서구 양 3동 주택가 골목에서 고등학생들이 말뚝박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오창석
골목은 나의 영지(領地)였으며 나는 그곳의 왕이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골목'이었다. 골목에서는 딱지치기, 구슬치기 대회가 매일 열렸다. 얼마나 딱지를 열심히 쳐댔는지 내 손톱은 다 닳아져 따로 깎을 필요도 없었다. 집 마루 밑에는 구슬이 상자에 가득했고, 딱지는 가마니에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해질 무렵이면 딱지를 모두 잃은 녀석이 징징 울며 제 할머니의 손을 끌고 나타났다.

"아이, 철영아, 우리 경찬이한테 딱지 몇 장만 주믄 안 되겄냐?"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비겁한 녀석을 용서해선 안 되지만 백성들에게 너무 인색할 수는 없는 일. 한 주먹 쥐어서 보내면 영지에는 평화가 가득했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지도자 내외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집을 장만하게 되었고 나는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동네는 '이태리식'이라는 국적 불명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아 그 황막함이란!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김치를 담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김치를 담고 있다.오창석
그곳의 골목은 월남치마와 몸뻬를 입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녀들은 평상에 앉아 마늘을 까고 나물을 다듬으며 "뉘 집 개가 새끼를 아홉 마리나 낳아 한 마리는 오늘 내일 한다네" "철공소집 자식은 사고뭉치라네"하는 정보를 교환했다. 그러고도 부족하면 빨래를 널다가도 건너편 집 아줌마와 목청을 높였다. 수다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 여론에 걸려 들면 동네에서 어린 골목 스타들의 위신은 끝장이었다.

노는 아이들이 떠난 텅 빈 골목에 자전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노는 아이들이 떠난 텅 빈 골목에 자전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오창석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뻥튀기 아저씨는 인기인에 속했다. 귀를 막고 강렬한 폭발음을 기다리는 가슴 졸임도 짜릿했지만 한나절 골목에 앉아 부산물들을 얻어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른들에게만 집중된 부로 말미암아 그때의 어린 우리들은 너무도 가난했고, 입은 어찌 그리도 궁금했던지…….


골목의 프롤레타리아들은 혁명을 꿈꾸어야 마땅했지만 우리는 슬픔을 삼키며 담장을 넘었다. 그런데 감식안이 부족하다 보니 그 석류와 무화과라는 것이 매번 설익은 것이거나, 또 익기를 기다리다 보면 주인이 몽땅 따버리고 난 뒤라,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의 주택가 골목 야경.
광주시 동구 동명동의 주택가 골목 야경.오창석
가방이 무거워지는 중고등학교를 거치게 되면서 우리는 점차 골목에서 버림 받았다. 밤 늦은 시간 젖은 몸으로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그곳은 어둠과 불투명한 미래로 가득찬 블랙홀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 나의 골목은 어느 사이엔가 보도 블록이 깔렸다가 지금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물샐 틈 없이 덮여 있다.

잡종개 '쌔리'가 뜯어 먹던 잡초 한 포기 자라지 않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던 개미들의 행렬도 찾아 볼 수 없다. 아이들도 모두 학원으로 쫓겨가고 골목은 이제 도시의 무료 주차장일 뿐이다.

옛 골목의 흔적을 더듬어 보기 위해 재개발을 앞둔 양동 발산마을을 찾았다.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양지 바른 곳에서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었다.

"애들이 나와서 놀 만도 한데 하나도 안 보이네요, 잉?"
"여그가 애기들 '장'인디 어제 우리집 유리창을 깨가꼬, 나 보기 무수와서 한 놈도 안나오요. 여그 테푸로 붙여논디 보이지라?"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더 황량한 골목.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더 황량한 골목.오창석
할머니가 깨진 유리창을 가리킨다. 재개발을 앞둔 탓인지 몇 안 되는 가게마저 비어 있는데 미장원 창에 붙은 '고데' '특수파마' 글씨가 정겹다.

어린 시절 하루 내 뛰어 놀다 배가 고파 집에 돌아 올 때면 담장 너머에서 풍겨 오던 김치찌개의 향긋한 냄새를 다시 맡아 볼 수 있을지. 이제 따스한 집에 돌아 왔다는 신호처럼 골목 안을 부드럽게 감싸던 석양빛은 어디에 있을까? 정말 시간은 흘러가서 추억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일까? 한 순간의 꿈만 같다.

무등산 자락 바로 아래 자리잡은 동구 소태동에서 만난 어린 형제.
무등산 자락 바로 아래 자리잡은 동구 소태동에서 만난 어린 형제.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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