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서구 양 3동 주택가 골목에서 고등학생들이 말뚝박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오창석
골목은 나의 영지(領地)였으며 나는 그곳의 왕이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골목'이었다. 골목에서는 딱지치기, 구슬치기 대회가 매일 열렸다. 얼마나 딱지를 열심히 쳐댔는지 내 손톱은 다 닳아져 따로 깎을 필요도 없었다. 집 마루 밑에는 구슬이 상자에 가득했고, 딱지는 가마니에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해질 무렵이면 딱지를 모두 잃은 녀석이 징징 울며 제 할머니의 손을 끌고 나타났다.
"아이, 철영아, 우리 경찬이한테 딱지 몇 장만 주믄 안 되겄냐?"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비겁한 녀석을 용서해선 안 되지만 백성들에게 너무 인색할 수는 없는 일. 한 주먹 쥐어서 보내면 영지에는 평화가 가득했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지도자 내외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집을 장만하게 되었고 나는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동네는 '이태리식'이라는 국적 불명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아 그 황막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