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가 끝나면 영웅들께선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외다. 모든 일이 정리되어 우리 선무곡이 새롭게 태어난 다음 후손들에게 영웅들께서 하신 위업(偉業)을 말씀해주시오."
"…?"
"이곳에 오기 전 영웅들은 일개 민초였소이다. 잠시 후 발표될 명단에 있는 장로들은 민초들을 잘 이끌겠다고 해놓고 제 이익만 챙긴 자들이외다. 그런 자들은 민초가 처단함이 마땅하기에 여러 영웅들로 하여금 이번 일에 동참해달라 요청한 것이외다."
지하광장 구석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덕분인지 조금 전과 같은 소란은 없었다.
"과수를 재배하는 농민은 때가 되면 가지를 쳐준다고 하오. 추수기(秋收期)에 좀더 알찬 수확을 하기 위해 멀쩡한 가지지만 눈물을 머금고 쳐내는 것이외다."
"이보시오. 말씀에 어폐(語弊)가 있소이다. 장로 새끼들은 절대 쓸만한 가지가 아니외다. 놈들은 모조리 썩은 가지라오."
"맞소이다. 놈들은 반드시 쳐내야할 썩은 가지외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 가지치기를 부탁드린 겁니다. 자, 이제 우리 제세활빈단은 여러분들께서 가지치기를 하시는 동안 본곡의 앞날을 가로막는 모든 존재들을 쓸어버릴 것이외다. 이제 우리 선무곡은 강자존 약자멸의 철칙이 지배되는 강호에서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문파로 거듭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감히 확언드릴 수 있소이다."
"와와와와! 선무곡 만세! 와와와와!"
"와와와! 제세활빈단 만세! 와와와! 모조리 죽이자! 와와!"
"장로 새끼들의 씨를 말려버리자! 와와와!"
"한 놈도 살려둬서는 안 된다. 반드시 멱을 따야 한다."
잠시 환호성이 가득한 광장을 내려다보던 누대의 인물은 다시 사자후를 터뜨렸다.
"본곡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초개와 같이 한 목숨을 던진 영웅들이시여! 거사를 앞둔 이 마당에 술 한잔 없어 되겠소이까?"
"크하하하! 물론 안 되오!"
"핫핫핫! 이런 날 술 한잔 안 하면 언제 하겠소?"
"크크크!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간절하였소이다."
"자! 앞자리에 놓인 술잔을 드십시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광장의 모든 술잔들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자! 희망찬 선무곡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하하하! 술맛 좋다!"
"크하하하! 난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처럼 기분 좋은 술자리를 처음이우. 형장은 안 그렇소?"
"크크크! 말하면 숨 가쁜 소리를 하시는구려. 크크! 여기 그렇지 않은 놈 있음 나와 보라구 그러슈."
"예끼 여보슈! 놈이라니? 조금 전에 말 못 들었수? 여긴 영웅들만 있수. 그러니 말조심허슈!"
"크크! 그랬던가? 이놈의 입이 버릇이 돼서… 미안하게 됐시다.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잔 더 합시다."
"크크! 좋소이다! 하하하! 난 마광우라 하는데 형장은?"
"후후! 난 안혁세라 하오."
"난, 남천국이라 하네."
"하하! 보아하니 형뻘들 되는 듯 싶소이다. 소제는 관욱이우."
"하하! 녀석, 아우라면서 말꼬리는 왜 잘라?"
"헤헷! 미안하우. 형님들!"
"크크! 미안한 줄 알면 되었네. 자, 아우도 한잔하시게."
장내는 금방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되었다. 술 한잔의 위력에다 워낙 친화력이 좋은 선무곡 사람들의 성품 때문이기도 하다.
"깜박 잊은 것이 있소이다!"
누대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오자 잠시 소란스럽던 장내는 삽시간에 정리가 되었고 모든 시선은 집중되었다.
"본곡의 장로라는 놈들은 질기기가 고래힘줄보다도 더한 놈이외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이니 처단하실 때에는…"
"하하! 걱정 마시오. 확실히 죽었는지 반드시 확인하겠소이다."
"크크!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오. 여러분! 장로 새끼들은 죽인 후에는 반드시 수급을 베시오."
"크크! 맞소. 수급을 벤 후에는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하여 저잣거리 한복판에 효시하여야 하오."
"하하! 물론이외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소이다."
"…!"
누대 위의 인물은 자신이 할 말을 밑에서 다 했다는 듯 두 팔을 슬쩍 추켜올리며 물러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또 터져 나왔다.
"잠깐! 본인은 요청할 것이 있소이다."
한동안 시끌벅적하던 장내에 누군가 벽력같은 음성을 토하자 일시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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