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굿과 함께 하는 정신 건강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풍물굿으로 날려버리세요

등록 2004.06.08 20:30수정 2004.06.0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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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산속에서 몇십 년 동안 유기농을 하는 농민이 있다. 강문필 그는 자신의 논밭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언젠가 펴냈던 그의 책에서 그는 자식들에게 공개유언을 했다. 자신의 농장은 하느님에게서 빌린 땅이니 남에게 팔지도 말며, 농사짓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상으로 빌려주라고. 그런 그가 언젠가 내게 한말이 생각난다.

“나는 밭에 나가서 꽹과리를 쳐줍니다. 그러면 밭작물이 좋아하고, 쑥쑥 잘 자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식물과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남 강진 영동농장에서는 유기농 음악농법으로 “그린음악쌀”을 만든다. 영동농장의 쌀은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부터 유기재배인증을 받은 것인데, 확성기를 사용하여 벼에 오전엔 클래식음악을, 오후엔 풍물굿을 들려준다.

a 풍물굿 소리를 좋아하는  작물들

풍물굿 소리를 좋아하는 작물들 ⓒ 뉴스툰

사람뿐 아니라 벼를 비롯한 작물들도 풍물을 좋아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법 늘고 있다. 식물에도 실제 감정이 작용한다면 풍물이 싫을 리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것을 보지만 우리는 그들을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잠시 피하며, 자연스럽게 자주 들려주다보면 언젠간 풍물소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나는 십여 년 전 괴산의 한 시골 성당 추수감사제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징을 친 사건이 있다. 그야말로 ‘사건’이다. 그때 나는 풍물을 좋아하기만 했지 실제 연주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왕초보자였다. 어떻게 징을 칠 수가 있었을까?

잔치를 하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흥겨워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양동이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에게나 한 바가지씩 퍼줬다. 도저히 안 마실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도 몇 잔을 거푸 마시면서 거나하게 취해갔다.


이 때 한 분이 오셔서 내게 징채를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징을 쳐 보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한사코 거부했지만 그분은 반 강권하다시피 했다. 나는 막걸리 기운에 마지못해 징잡이가 되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장단에 맞춰 징을 쳤다.

왕초보가 치는 징소리에 짜증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흥겹게 돌아간다. 그날의 풍물판에 대해 모두가 만족해했다. 처음 본 사람들도 모두가 한 식구가 된 것처럼 정겹다. 이것이 바로 우리 풍물굿의 특징이다.


그러면서 이는 동시에 우리 한국문화의 특징이다. 무대에서 연주하고, 공연하며, 청중에게 박수를 치라는 서양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주자와 청중이 따로 없다. 연주자가 청중이 되고, 청중이 연주자도 되는 그런 구조이다. 그러기에 연주하는 사람 중 하나가 실수를 해도 그것이 드러나는 법이 없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풍물굿판에서 한바탕 논 사람은 찌든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내는 시간을 갖는다. 풍물굿판에서 한 덩어리가 되고도 우울해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만큼 풍물굿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어쩌면 훌륭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은 이상으로 좋은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일본총독부는 삼천리 곳곳의 민속놀이를 조사하여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것은 조선의 문화발전을 위한 일일까? 아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 안에서 풍물을 비롯한 각종 민속놀이를 금지했다. 조선시대 천 가지가 넘었던 우리의 민속놀이가 말살되고, 가장 인기있었던 “쌍륙”의 맥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한동안 우리의 풍물굿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총독부는 왜 우리의 민속놀이를 금했을까? 그것은 우리 문화를 지배해야 진정한 식민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풍물굿이 갖고 있는 즉, 모여서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공동체적 요소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존재기반을 위협하는 굿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 더하면 조선인들을 쥐어 짜야만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터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어줄 풍물굿이나 민속놀이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음은 임실필봉굿 누리집에 실려 있는 문찬기씨의 “대보름굿 참관기” 중 일부이다.

a 풍물소리를 들려주면 작물은 쑥쑥 자란다

풍물소리를 들려주면 작물은 쑥쑥 자란다 ⓒ 뉴스툰

“문 열어라 외치고 가락으로 몰아대고 한다. 굼실굼실 껀득껀득 가락에 맞춰 마당에 들어선다. 신나게 때려대고 고함지르며 북적북적 놀다보니 오늘 화동을 맡은 정우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는 긍청거리며 왔다 갔다, 참 가관이다. 그러더니 두 번째 집에서는 키를 쓰고 나타난다. 세 번째집에서는 바구니 같은걸 쓰고… 이건 완전히 이정우 모자 패션쑈다.

술먹고는 얼굴 벌개서 악쓰고 춤추고 그러다가도 술상 나르고, 마당정리하고, 치배 앞길 터주고… 부지런히도 다닌다. 나는 그런 정우가 언제나 믿음직하고 좋다.”


이만큼 풍물굿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대목이 있을까? 이만큼 풍물굿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드러내는 것이 있을까? “신나게 때려대고, 고함지르며, 북적북적 놀다보니…” 풍물굿판을 잘도 그려낸다.

화동을 맡은 이가 “오토바이 헬멧을 썼다가, 키를 썼다가, 바구니를 쓰고 모자 패션쇼를 하는 모습에다 술먹고 얼굴 벌개서 악쓰고, 춤추고, 그러다가도 술상 나르고, 마당 정리하고, 치배 앞길 터주고…” 하는 모습이야말로 풍물패들의 기본적인 모습이리라. 이렇게 한바탕 푸지게 논 다음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지 못할 사람이 뉘있으랴?

현대인 치고 스트레스에 쌓여 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스트레스야말로 만병의 근원임을 의학계에서는 확신한다. 똑같은 병원균이 우리의 몸속을 쳐들어온대도 스트레스가 쌓여 있느냐, 털어냈느냐에 따라 병원균을 물리칠 수도 있고,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 갑자기 암에 걸려 손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달리 한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탓으로 갑자기 몸이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우리에게 스트레스는 가장 큰 적일지도 모른다.

그 적을 물리쳐야만 하는데 무엇으로 할까?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대안은 풍물굿이 될 수도 있다. 풍물굿은 왕초보자라고 따돌림받지 않고 같이 즐길 수 있는 판이어서 절대 걱정할 일도 아니다.

들어볼, 즐겨볼 생각도 않고, 그저 시끄럽다고만 여기지 말고 한 번 풍물굿에 빠져보자. 그리고 그 풍물굿의 매력 속에서 스트레스를 털고, 우리 모두를 환한 삶의 마당으로 끌어내 보자.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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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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