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굿 소리를 좋아하는 작물들뉴스툰
사람뿐 아니라 벼를 비롯한 작물들도 풍물을 좋아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법 늘고 있다. 식물에도 실제 감정이 작용한다면 풍물이 싫을 리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것을 보지만 우리는 그들을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잠시 피하며, 자연스럽게 자주 들려주다보면 언젠간 풍물소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나는 십여 년 전 괴산의 한 시골 성당 추수감사제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징을 친 사건이 있다. 그야말로 ‘사건’이다. 그때 나는 풍물을 좋아하기만 했지 실제 연주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왕초보자였다. 어떻게 징을 칠 수가 있었을까?
잔치를 하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흥겨워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양동이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에게나 한 바가지씩 퍼줬다. 도저히 안 마실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도 몇 잔을 거푸 마시면서 거나하게 취해갔다.
이 때 한 분이 오셔서 내게 징채를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징을 쳐 보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한사코 거부했지만 그분은 반 강권하다시피 했다. 나는 막걸리 기운에 마지못해 징잡이가 되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장단에 맞춰 징을 쳤다.
왕초보가 치는 징소리에 짜증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흥겹게 돌아간다. 그날의 풍물판에 대해 모두가 만족해했다. 처음 본 사람들도 모두가 한 식구가 된 것처럼 정겹다. 이것이 바로 우리 풍물굿의 특징이다.
그러면서 이는 동시에 우리 한국문화의 특징이다. 무대에서 연주하고, 공연하며, 청중에게 박수를 치라는 서양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주자와 청중이 따로 없다. 연주자가 청중이 되고, 청중이 연주자도 되는 그런 구조이다. 그러기에 연주하는 사람 중 하나가 실수를 해도 그것이 드러나는 법이 없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풍물굿판에서 한바탕 논 사람은 찌든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내는 시간을 갖는다. 풍물굿판에서 한 덩어리가 되고도 우울해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만큼 풍물굿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어쩌면 훌륭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은 이상으로 좋은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일본총독부는 삼천리 곳곳의 민속놀이를 조사하여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것은 조선의 문화발전을 위한 일일까? 아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 안에서 풍물을 비롯한 각종 민속놀이를 금지했다. 조선시대 천 가지가 넘었던 우리의 민속놀이가 말살되고, 가장 인기있었던 “쌍륙”의 맥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한동안 우리의 풍물굿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총독부는 왜 우리의 민속놀이를 금했을까? 그것은 우리 문화를 지배해야 진정한 식민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풍물굿이 갖고 있는 즉, 모여서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공동체적 요소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존재기반을 위협하는 굿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 더하면 조선인들을 쥐어 짜야만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터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어줄 풍물굿이나 민속놀이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음은 임실필봉굿 누리집에 실려 있는 문찬기씨의 “대보름굿 참관기” 중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