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타작하는 풍경-보리타작은 영영 없어진 모양입니다.김규환
가마니에 담아 구루마에 실어 집으로!
오전 11시 경 얼추 일이 끝났다. 기계를 거두는 아저씨들 손길이 또 한번 분주하다. 그 틈에 놉들과 우리 가족은 주변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어른들이 보리 알갱이만 고르기 위해 비질을 하고 가마니에 담는 동안 아이들이 할 몫이 있다.
형제들은 도로변에 나뒹구는 보릿대를 산 쪽으로 끌고 올라가 집채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 미끄러운 보릿대는 자꾸만 흘러내렸다. 몇 번 발을 굴려 한 깍지 씩 움켜쥐고 꼭대기에 올라 눌러 주기를 반복했다.
이제 보릿대는 한동안 아이들 뒹굴고 노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타작할 때와는 달리 보릿대 까끄라기는 별로 없고 푹신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지날 때 가만히 두질 않았다. 꼴 베러 갈 때나 학교 오가는 길에 소나기가 오면 비가 스며들지 않기에 구멍을 파서 피신처였다. 동네 꼬마 녀석들 대여섯 명이 마당바위를 타고 놀 듯 오르내렸다.
보릿대를 정리하고 어른들 마무리 하는 곳으로 가서 가마니를 잡아 주었다. 한 가마 두 가마 퍼 담으니 주변은 보리가마니 일색이다. 다 담고 보니 50가마가 넘었다. 아버지는 사려놓은 새끼줄을 잘라 묶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보리는 예나 지금이나 벼농사 보다 수월하다. 농약통과 비료부대를 지고 다니고 물꼬를 아침저녁으로 매일 확인해야 하는 논농사와 달리 씨앗 뿌려주고 보리밭 밟고 수확만 하는 간단한 과정이며 약품 처리할 일이 없어서 좋았다.
묶어지는 족족 가마니를 소달구지에 실어나갔다. 하지만 한 번에는 마치지 못할 분량이다. 마저 담아 나가도록 몇 사람을 남겨두고 소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수확 뒤 달구지가 실은 짐 위에 올라타 하늘을 이고 드러누워 가는 기분 끝내줬다. 평소는 덜컹거리지만 짐을 가득 실으면 삐거덕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안정감이 있었고 집으로 가는 길이 더 멀어 차에 올라탄 기분을 오래 만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