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안준철
이제 곧 방학입니다. 제가 잘 아는 선생님은 해마다 방학이 되면 한동안 몸이 아팠다고 합니다. 한 학기 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잠시 쉬라는 몸의 신호였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방학이 되어도 몸이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방학이 선언되기가 무섭게 강도 높은 보충수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방학이 되어도 아이들은 방학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보충수업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리기 때문이지요. 올해 0교시를 폐지한 학교 중에는 그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방학중 보충수업을 한 달 내내 강행하는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바로 그런 이유를 들어서 0교시를 다시 부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참 딱하고 어이가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대화 속에 학생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0교시나 방학 중 보충수업은 학생의 자유의사에 따라 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아무도 그들의 의사를 묻거나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그리고 이런 정당하고 다급한 지적들이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잠꼬대로 들릴 만큼 우린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방학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돌의 여백과도 같습니다. 그 여백에 미숙하고 서툴지만 자기 그림을 그려보는 연습의 시간으로서 방학의 의미는 크다하겠습니다. 아무도 그려놓은 그림이 없기에 다양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신나고 생산적인 방학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