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상의 중심 기념탑을 마주보고 있는 환영 나무 판자홍은택
그런데 탑을 마주보는 곳에도 뭔가 기념물이 있다. ‘WELCOME TO THE CENTER OF THE USA’라는 검정색 문구가 새겨진 나무 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세월에 바래 얼룩이 묻은 것처럼 흰색 바탕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고 문구는 자간 대칭과 행간 균형이 잘 안 맞아서 마치 “이런 델 왜 보러 왔느냐”고 조롱하는 듯했다. 김이 팍 새는 순간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쩌면 쇠락해 가는 미국의 중심에 대한 상징으로는 이 나무 판자가 더 적합한 듯했다.
탑 옆에는 기독교 국가답게 ‘US CENTER PRAY CHAPEL’이라는 이름의 예배당이 있었다. 들고 다닐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작은 예배당이었다. 사이 좋은 사람들이면 여섯 명, 그렇지 않으면 네 명이 앉으면 꽉 찰 듯싶다. 그것으로 지리상의 중심에 관한 기념물은 끝이었다. 예전에는 근처에 모텔도 있었다고 하는데 문 닫은 지 오래라고 한다.
아직도 '미국의 중심' 레바논에 남아있는 사람
사실 이 지점이 정확한 중심은 아니다. 계산해 보니 여기서 1km쯤 떨어진 쟈니 그립(Johnny Grib)이라는 농부의 돼지 농장에 중심이 있었다. 농장을 개방하면 사람들의 출입이 번잡할 것을 우려한 그립이 한사코 탑을 세우는 것을 반대해 할 수 없이 이 언덕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세계에서 가장 힘 센 미국의 중심을 밀어낼 만큼 힘센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립의 농장 역시 정확한 중심은 아니다. 미국 측지학회에 따르면 허용 오차가 15에서 30km쯤 된다고 한다. 대충 거기인 셈이다. 더구나 지구가 둥글게 굽어있는 점을 감안한 측지학적 중심은 여기서 45km쯤 더 남쪽으로 가야 한다.
레바논의 중심론에 대해 딴지를 거는 마을도 많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미국 땅이 아니냐, 다 포함시켜서 중심을 따지면 우리"라고 주장하는 마을<사우스 다코타 주의 캐슬 록(Castle Rock)>도 있다. "복잡하니까 그냥 북미 대륙을 기준으로 하자, 그러면 우리"라고 주장하는 마을<노스 다코다 주의 럭비(Rugby)>도 있다.
그러자 미 정부도 모르겠다고 자빠져 버렸다. 미 정부의 측지기관인 U.S. Coast and Geodetic Survey의 수석 수학자인 오스카 애덤스는 “사실 중심이 어딘지 꼭 짚어낼 결정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니 우리보고 어느 주, 나라, 대륙의 지리상의 중심을 가려내라는 강요에 가까운 요구는 무시하는 게 가장 낫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마을들의 등쌀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수학자가 그런 글을 썼을까 동정이 가는 얘기다. 그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미국인 특유의 외교적 화술을 구사한다. “이것은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옳을 수 있는 문제다.” 서로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마을들에게 "그래, 그렇게 주장해도 무방하다.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런 마을들의 공통점은 다 대평원에 속하면서 다 못 산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호사가들의 발길을 불러들여 단 돈 몇 달러라도 떨구고 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중심임을 주장한다. 인구가 적기는 하지만 중심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몇몇 지도에는 마을 이름이 올라가는 영광을 얻기도 한다.
레바논은 인구 30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항상 300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서 살고 있는 필리스 벨(75)은 “인구가 800, 900명 일 때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대공황이 일어난 1929년에 태어난 벨은 이곳에서 나오는 지역 신문 <레바논 타임스>의 발행인이다. 그녀는 대공황 이후 황진의 시대(Dust Bowl days)로 불리는 1930년대 가뭄과 농산물 가격의 하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턴주로 떠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