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 사라진 미국의 중심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1] 캔자스주 레바논에 가다

등록 2004.08.04 23:27수정 2004.08.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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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오는 11월 2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 체류중인 홍은택 기자의 미국 심층취재기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주2회꼴로 연재합니다. 홍은택 기자는 <동아일보>에서 사회부-정치부-국제부 기자로 일했으며 노조위원장(2001년)을 지냈습니다. 현재는 미국 미주리대학 저널리즘 스쿨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으며,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글로벌 저널리스트>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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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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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 이어 2004 미국 대선은 양극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미국 사회내 블루(blue)와 레드(red)의 대립은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증오하는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정치는 물론 지역, 인종, 경제, 문화, 심지어는 스포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묘하게도 세계화(globalization)에 있다. 세계화의 엔진이자 진원지인 미국이야말로 세계화의 영향을 가장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는 2004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사회의 양극화된 이면을 현장취재한다. 블루와 레드는 미국대선 개표때 주별로 민주당이 이긴 지역은 블루, 공화당이 이긴 지역은 레드로 표현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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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원(Great Plains)을 달리는 기분은 매우 저조하다.

사우스 다코다에서 9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다 281번 지방도로를 만나 남쪽으로 우회전했을 때에는 눈이 다 시원했다. 고속도로에서 모텔과 주유소,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의 입간판들만 상대하다가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들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경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는 속도를 손해 보는 만큼 더 많은 경치를 완상(玩賞)할 수 있다는 계산이 바로 나왔다.

대평원(Great Plains)을 달리며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도 없었다. 아무리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이라지만 일곱 시간을 계속 달리는데도 골든 아치가 없기로는 모하비 사막이후 처음이었다. 그 시간 동안 차는 일직선으로 남하해 사우스 다코다 주를 넘어서 네브라스카에 들어섰고 네브라스카를 넘어서 캔자스에 들어 왔다.


그러나 사람도 없다. 대낮인데도 대부분의 마을에서 인적을 찾기 힘들다. 밀과 옥수수가 쨍쨍한 햇볕을 받고 있는 마을 너머 들판에도 사람들은 없다. 여기가 바로 ‘대평원’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밀의 절반, 그리고 소고기의 60%를 생산하지만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마을들은 버려져 사막을 빼고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희박한 곳이 되고 있다.

원래는 로키 산맥에서 빗물에 씻겨 내려온 흙이 영겁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로키 산맥과 나란히 남북으로 달리는 초지였다. 우크라이나에서 건너 온 터키 레드 위트(Turkey Red Wheat)라는 밀 품종의 재배에 성공하면서 초지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탈바꿈했다. 위로는 캐나다의 앨버타 주에서부터 아래로는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12개 주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 지괴에 속한다.

이 대지가 개간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1862년 링컨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홈스테드법(The Homestead Act)에 있다. 이 법은 21세가 넘은 시민이거나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160에이커(65헥타르)의 국유지를 공짜로 나눠 줬다. 조건은 5년 동안 집을 짓고 살면서 농토를 개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2백만명이 이 법의 혜택을 입어 2억7천만 에이커(1억9백만 헥타르)의 땅을 가져갔고 대평원은 곡식의 파도로 출렁거렸다.

'먼저 본 사람' 위에 '더 빨리 간 사람' 있다


a 캔자스주 레바논의 외곽에 있는 미국의 지리상 중심 기념탑

캔자스주 레바논의 외곽에 있는 미국의 지리상 중심 기념탑 ⓒ 홍은택

미국은 ‘종종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나라다. 오클라호마 주에서 홈스테드법이 적용 됐을 때인 1889년에는 무려 5만명이 출발선에 섰다. 4월 22일 낮 12시를 기해 총성과 함께 나팔이 울려퍼지자 일제히 말을 타고 마차를 타고 또는 걸어서 인디언이 추방된 땅으로 달려 나갔다. 땅에 말뚝을 박아 자신의 소유가 됐음을 표시했다. 미국 식민의 역사가 그렇듯 먼저 도착한 사람이 좋은 땅을 차지했다. 미국은 선착순 사회다.

하지만 미국의 이면은 오클라호마 주의 별명 ‘더 빨리 간 사람(Sooner)’에서 잘 나타난다. 총성이 울리기 훨씬 이전부터 미리 가서 말뚝을 박아 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선착순이지만 실제로 금싸라기 땅은 가장 천박한 분배의 원칙인 선착순마저 어긴 사람들이 차지했다. 그 사람들을 ‘더 빨리 간 사람(Sooner)’이라고 불렀고 그게 주의 별명으로 정착했다.

필자가 대평원을 달리는 이유는 캔자스 주에 있는 레바논(Lebanon)에 가기 위해서다. 레바논에는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 본토 48개 주의 중심이 있다.

레바논을 찾아낸 것은 그냥 호사가적인 충동에서였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지리적 중심을 밟는 것은 어떨까. 필자만 그런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문호 존 스타인벡은 1960년 미국 여행을 기획하면서 미국의 중심이 어딘지 알아내기 위해 원시적인 방법을 썼다.

그가 여행 후 펴낸 <찰리와의 여행>(Travels with Charley)에 따르면 그는 미국 지도를 동쪽과 서쪽 끝이 만나도록 반으로 접었다. 그랬더니 접히는 선은 노스 다코타와 사우스 다코타, 네브라스카,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를 지나갔다. 필자가 타고 내려온 길이 얼추 그가 접은 선 상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81번을 타고 남하하다 네브라스카 주를 넘어서 캔자스에 이르자마자 레바논에 조금 못 미쳐 미국 지리상의 중심에 대한 안내판이 보였다. 191번 도로로 우회전해서 1.5km쯤 가자 이 도로가 끝나고 피라미드 모양의 탑이 나타났다. 탑 위에는 성조기와 캔자스 주기가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탑 중간의 표석에는 'The Geographical Center of the United States· LAT 39' 50"·LONG 98' 35"(미국의 지리상의 중심. 위도 39도50분 경도 98도35분)'이라고 적혀 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사우스 다코타 주 케네벡의 캠프장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발해서 하루 종일을 눈을 마비시키는 오렌지 빛 밀밭을 어지럽게 뚫고 온 끝에 미국의 중심을 밟았다.

a 지리상의 중심 기념탑을 마주보고 있는 환영 나무 판자

지리상의 중심 기념탑을 마주보고 있는 환영 나무 판자 ⓒ 홍은택

그런데 탑을 마주보는 곳에도 뭔가 기념물이 있다. ‘WELCOME TO THE CENTER OF THE USA’라는 검정색 문구가 새겨진 나무 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세월에 바래 얼룩이 묻은 것처럼 흰색 바탕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고 문구는 자간 대칭과 행간 균형이 잘 안 맞아서 마치 “이런 델 왜 보러 왔느냐”고 조롱하는 듯했다. 김이 팍 새는 순간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쩌면 쇠락해 가는 미국의 중심에 대한 상징으로는 이 나무 판자가 더 적합한 듯했다.

탑 옆에는 기독교 국가답게 ‘US CENTER PRAY CHAPEL’이라는 이름의 예배당이 있었다. 들고 다닐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작은 예배당이었다. 사이 좋은 사람들이면 여섯 명, 그렇지 않으면 네 명이 앉으면 꽉 찰 듯싶다. 그것으로 지리상의 중심에 관한 기념물은 끝이었다. 예전에는 근처에 모텔도 있었다고 하는데 문 닫은 지 오래라고 한다.

아직도 '미국의 중심' 레바논에 남아있는 사람

사실 이 지점이 정확한 중심은 아니다. 계산해 보니 여기서 1km쯤 떨어진 쟈니 그립(Johnny Grib)이라는 농부의 돼지 농장에 중심이 있었다. 농장을 개방하면 사람들의 출입이 번잡할 것을 우려한 그립이 한사코 탑을 세우는 것을 반대해 할 수 없이 이 언덕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세계에서 가장 힘 센 미국의 중심을 밀어낼 만큼 힘센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립의 농장 역시 정확한 중심은 아니다. 미국 측지학회에 따르면 허용 오차가 15에서 30km쯤 된다고 한다. 대충 거기인 셈이다. 더구나 지구가 둥글게 굽어있는 점을 감안한 측지학적 중심은 여기서 45km쯤 더 남쪽으로 가야 한다.

레바논의 중심론에 대해 딴지를 거는 마을도 많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미국 땅이 아니냐, 다 포함시켜서 중심을 따지면 우리"라고 주장하는 마을<사우스 다코타 주의 캐슬 록(Castle Rock)>도 있다. "복잡하니까 그냥 북미 대륙을 기준으로 하자, 그러면 우리"라고 주장하는 마을<노스 다코다 주의 럭비(Rugby)>도 있다.

그러자 미 정부도 모르겠다고 자빠져 버렸다. 미 정부의 측지기관인 U.S. Coast and Geodetic Survey의 수석 수학자인 오스카 애덤스는 “사실 중심이 어딘지 꼭 짚어낼 결정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니 우리보고 어느 주, 나라, 대륙의 지리상의 중심을 가려내라는 강요에 가까운 요구는 무시하는 게 가장 낫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마을들의 등쌀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수학자가 그런 글을 썼을까 동정이 가는 얘기다. 그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미국인 특유의 외교적 화술을 구사한다. “이것은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옳을 수 있는 문제다.” 서로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마을들에게 "그래, 그렇게 주장해도 무방하다.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런 마을들의 공통점은 다 대평원에 속하면서 다 못 산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호사가들의 발길을 불러들여 단 돈 몇 달러라도 떨구고 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중심임을 주장한다. 인구가 적기는 하지만 중심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몇몇 지도에는 마을 이름이 올라가는 영광을 얻기도 한다.

레바논은 인구 30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항상 300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서 살고 있는 필리스 벨(75)은 “인구가 800, 900명 일 때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대공황이 일어난 1929년에 태어난 벨은 이곳에서 나오는 지역 신문 <레바논 타임스>의 발행인이다. 그녀는 대공황 이후 황진의 시대(Dust Bowl days)로 불리는 1930년대 가뭄과 농산물 가격의 하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턴주로 떠났다고 말했다.

a 버려진 레바논의 시청 건물

버려진 레바논의 시청 건물 ⓒ 홍은택

이농 현상은 그 이후로 어느 한 순간 멈춘 적이 없었다. 이곳에 하나밖에 없던 레바논 고등학교는 1984년 문 닫았다. 초등학교는 8년 뒤인 92년에 문 닫았다.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이 마을의 평균 연령은 52세다.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들은 지 오래다. 99%가 백인이고 22.1%가 극빈자다.

공장도 떠나고 아이의 울음 소리도 사라졌다

학교의 폐쇄는 주민들에게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곧 대가 끊기겠구나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마을도 하나의 생명이다. 레바논 도서관의 사서인 에스더 델리몽(71)은 레바논 고교의 마지막 졸업 앨범을 책꽂이에서 꺼내 보여 주면서 “우리 아이가 고교의 마지막 졸업생이었다”고 말했다. 앨범은 기만적이다. 이 마을에 언제 그렇게 아름다운 소녀 소년들이 득실득실했는지 상상이 안 된다.

여기에 온 덕분에 한반도 지리상의 중심이 어딘지도 알게 됐다. 강원도 양구군이다. 도서관에는 임경순이라는 양구군수가 같은 중심이라고 해서 들렀다가 놓고 간 차 숟갈 세트가 전시돼 있다.

마을이 쇠락한 원인은 농사를 지어서는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을 팔고 가면 농지의 소유는 더욱 소수에 집중되고 그럴수록 더욱 소규모 가족농이 설 땅은 좁아진다.

또 다른 결정적 타격은 의료기기를 만드는 백스터(Baxter) 공장의 철수.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백스터는 정맥 주사관을 생산했다. 이 공장에서 작업 공정 담당 엔지니어로 일했던 델리몽은 “한 천명이 일하는 큰 공장이었다”고 회상했다.

미국 농부들은 오래 전부터 농사만 지어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근처 공장을 다녀 수입을 보전하곤 했다. 백스터는 이 일대의 농부들에게는 생명의 젖줄 같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1985년 공장은 싱가포르와 푸에르토리코로 이전했다. 노동조합이 없었기 때문에 저항도 없었다고 한다. 델리몽은 백스터로부터 받은 많지 않은 주식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의 집들은 이국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안 좋은 집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집들이 버려진 채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생경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레바논 거리 곳곳에 현관문을 판자로 못질해 막아 버린 상점들과 문과 유리창이 깨진 빈집들이 눈에 띄었다. 시청마저 버려졌다.

a 레바논의 폐가들

레바논의 폐가들 ⓒ 홍은택

미국 기업들이 값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면서 단순히 제조업 노동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님을 레바논의 사례는 말해 준다. 대평원에 흩어져 있던 공장들은 농부들을 농토에서 떠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지지대 역할도 했던 셈이다.

공장이 떠나자 농민도 떠난다. 대평원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러자 캔자스에는 새로운 형태의 홈스테드가 부활했다. 캔자스주 마키트(Marquette)는 50에이커의 택지를 조성한 뒤 먼저 신청하는 80가구에게 택지를 공짜로 주고 있다. 값으로 따지면 8천달러(960만원 상당).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20여 가구밖에 신청하지 않았다.

AP통신의 칼 매닝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마을이 캔자스 주에 최소한 10군데나 된다. 뿐만 아니라 네브라스카 노스 다코타 사우스 다코다 주와 같은 데서도 시도한 바 있지만 아직 인구 증가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이유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을이 다시 소생하려면 뭐가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벨도 “산업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벨도, 델리몽도 해외로 나간 공장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a 홍은택 기자

홍은택 기자

그러나 벨의 딸은 돌아왔다. 레바논 고교를 졸업하고 캔자스 시티에 있는 전력회사에 다니고 있는 딸은 얼마 전 고교 건물을 매입했다. 그리고 매주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다니던 고교를 역사도서관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벨도 요즘 매주 한번씩 주민들과 뮤지컬을 연습하고 있다.

뮤지컬의 제목은 <앙코르>. 화려했던 시절의 부활을 바라고 하는 뮤지컬은 아니다. 단지 시청을 보수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공연은 8월27, 28일 이틀간이다. 살아있는 날까지 제대로 살아보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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