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하여 텃밭에서 마련한 옥수수와 고구마박도
아내가 기왕이면 고구마도 몇 알 캐서 맛을 보이자고 해서 아직은 이르지만 고구마 순을 헤치고 호미로 두둑을 후볐다.
그런데 갑자기 왜 눈물이 쏟아질까? 그것은 내 부모님에게 불효한 회한의 눈물이다.
곰곰 생각할수록 나는 불효자였다. 학교 다닐 때는 그런대로 자주 다녔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한 뒤로는 부산에 사셨던 아버지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이면 차표를 사지 못했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못했다.
어쩌다가 내가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아들을 잡고 온갖 얘기를 다하셨다. 그때마다 여러 번 들은 얘기이고, 따분한 얘기인지라 피곤하다는 핑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처럼 내려온 아들에게 자랑삼아 당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거래처에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당신은 헌 신문으로 배 봉지를 만들고, 고물상에서 주워온 자투리 종이로 꼬리표도 만들고 살지만, 그래도 내 아들은 서울서 대학을 다니고, 학교 선생님이라고, 거래처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동안 그들에게 무시당했던 스트레스도 조금은 풀고 싶었던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은 자주 내려오지도 않고, 내려온 데도 아비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니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말씀 잘 하시던 아버지였건만 큰집(교도소)을 다녀오신 뒤부터는 통 말씀이 없었다. 드문드문 하신 말씀을 연결해 보면 수사관들이 어떻게나 잠을 안 재우고 고문을 하는지 “그놈들이 지쳐서 잘 때, 시뻘건 난로를 뒤집어쓰고 죽고 싶었다” “내가 죄닦음을 했다”는 등의 말씀이었다. 그 이후로 거의 말문을 닫다시피 하시고는 붓을 잡았다.
아버지가 그렸던 그림은 ‘설중마부(雪中馬夫)’요 ‘대춘록보(待春鹿譜)’, ‘달마상(達磨像)’이었다. 눈보라를 헤치고 말을 모는 마부를 당신이라고, 눈 속에 사슴이 봄을 기다리는 그림에서는 사슴을 당신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눈은 '현실'이요, 봄은 '조국통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 그림에 찬사를 보내면서 아버지를 위로하기는커녕 모난 당신의 삶을 원망했다.
이런저런 지난 일들을 곰삭히고 있는데, 아내가 텃밭으로 나와서 아직은 고구마를 캐기가 이르니 아이들이 잘 먹으면, 그때 더 캐주자고 일렀다. 듣고보니 아직은 씨알이 작았다.
아내는 막 딴 옥수수의 껍질을 벗기고 고구마를 닦아서 아이들이 오면 바로 쪄줄 수 있게 솥에다가 앉혔다. 슬그머니 나는 글방으로 돌아와 이 글을 자판에 두드리면서 온통 귀를 길가 자동차 소리에 쏟고 있다.
“애비야, 너도 사느라고 욕 본다.” 멀리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 글을 막 마무리하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저 지금 내려가는 중이예요." "그래! 조심해라."
또 한번 눈물이 글썽거려진다. "그래, 너희는 애비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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