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댓글은 어떤 유형인가요?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20)

등록 2004.08.17 06:29수정 2004.08.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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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인터넷상에서 글을 올리는 사람에게 호응도 높은 댓글은 마치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것처럼 자신감을 주지만, 글쓴이의 원고 중 마음에 안드는 단어나 문장 한마디 꼬투리 잡아서 욕으로 도배하거나 글쓴이의 개인신상을 공격하는 식의 악의적인 댓글은 글쓴이의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곤 한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악의적 댓글은 이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싸움구경이며, 실시간으로 감정적인 댓글이 오고가는 열렬한 분위기는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싸움구경을 하는 것 같은 재미(?)와 스릴을 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댓글이야말로 그 특성이 장점이든 단점이든 간에 인터넷의 적나라한 쌍방향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저런 댓글을 보고 있자면 댓글 속에도 일정한 유형이 있고, 의식했든 못했든 간에 나름대로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진 형식을 밟아나간다는 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좌충우돌형, 말꼬리 잡기형, 욕설형, 사오정형, 조정형

게시판의 댓글이 어느 정도 많아지면 먼저 게시판 상에서 꼭 싸움을 일으키는 유형의 댓글이 나타나곤 한다. 싸움을 일으키는 유형은 주로 좌충우돌형과 말꼬리 잡기형, 욕설형 댓글들이다. 먼저 좌충우돌형 댓글은 기사내용 전체에 대한 의견보다는 특정 부분의 문장을 집어내어 반론을 하거나 평범한 의견 제시일 뿐인데 삐딱하게 나서는 유형이다.

이를테면 모 여행기사중에 나온 "보신탕은 민족 고유의 맛"이라는 문장에 대해 "왜 보신탕이 민족 고유의 맛이냐"라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자장면이 맛있다"는 의견에 대해 "왜 자장면이 맛있냐"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유형이다.

말꼬리잡기형 댓글은 댓글상의 한 부분을 말꼬리잡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유형으로서 이를 테면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보신탕의 구수한 국물과 부드러운 육질의 맛을 잊을 수 없다"라는 내용의 댓글에 "그럼 보신탕 안 먹는 사람은 음식 맛을 모른단 말이요"라는 식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유형이다. 욕설형은 기사의 글쓴이든 댓글을 쓴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XX식의 반말과 욕설을 해대는 유형이다. 댓글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이밖에도 자신의 의견을 이해시키기 위해 장황하게 관련자료나 데이터를 복사해 옮겨놓아 스스로의 지식을 과시하는 데이터 과시형, 보신탕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 "나는 오리탕이 맛있는데" 식의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오정형. 그리고 "보신탕을 먹건 안먹건 그건 개인의 성향일 뿐이지 옳고 그르다 따질 사항이 아닙니다"라는 식으로 양쪽을 조정하거나 정리하는 조정형 등이 있다.

익명의 댓글이나 사이버 토론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익명의 공간에서 흔히 나오는 열띤 댓글 주고받기나 사이버 토론을 보면 나름대로 일정한 순서와 법칙이 있다. 즉 먼저 좌충우돌형이 꼭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면 그 글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형이 나오고, 자연스레 욕설형이 등장하는데 한참 욕설형이 기승을 부리면 싸움하지 말라며 양쪽을 화해시키거나 둘 다 맞다는식의 조정형이 등장하고, 갑자기 주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내놓는 사오정형이 나오면 또 다시 욕설형이 나오고 또 조정형이 나오는 식으로 정리되곤 한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의 댓글 내용도 얼핏 보면 욕설이나 반말, 감정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내용 또한 중언부언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곳에서도 자신들도 모르는 자발적인 규칙에 따라 돌출적인 댓글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댓글은 여러 명의 반박 댓글로 자연스럽게 추방되거나 자정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결국 익명이든 실명이든 간에 가상공간 하에서의 댓글의 경우 많이 거칠고 정리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통 오프라인의 토론시 흔히볼 수 있는 수순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오프라인 상에서는 대놓고 토론할 환경이 그다지 없는 상황에서 사이버상에서나마 댓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주장하고 토론하는 법을 나름대로 습득하고 배우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지금의 현실은 좀 거칠고 감정적이고 투박한 면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이런 형태의 글쓰기가 정착되면 사이버 공간 속에서 보다 자유롭고도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오늘도 나는 각종 게시판이나 기사에 붙어 있는 여러 유형의 댓글들을 보면서 글쓴이가 댓글을 쓰고 있을 당시의 감정과 느낌을 나름대로 상상해보곤 한다.

글을 읽거나 쓰고 있을 때 혹시 마음 속에 불만이 가득했거나 흥분했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불쑥 나타난 불청객이나 특정인에 대해 너무 호전적이거나 감정적인 태도를 앞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만약 지금도 그런 상태라면 심호흡 한번 하고 가급적 정리된 마음으로 댓글을 쓰려는 습관을 가져보자.

지금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댓글을 쓸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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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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