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권하는 사회는 과소비 권하는 사회?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분투기(19)

등록 2004.08.13 08:14수정 2004.08.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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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리 열심히 뜯고 있니?"


며칠 전 오빠네 식구들과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카애가 생수통에 있는 상표라벨을 막무가내로 뜯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멀쩡한 라벨은 왜 뜯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오빠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 야, 놔둬라. 저걸로 포인트를 모은단다."
"포인트, 뭔 포인트?"

그러자 대학생인 조카애가 보충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고모, 그게 아니구요. OO캐시백 포인트 적립하는데 쓰려구요. 이 라벨 안에 있는 표시를 모아 포인트 적립하면 인터넷쇼핑몰에서 책이나 화장품 주문 결재시 포인트 내에서 지불되니까 모으면 모을수록 돈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아이구, 알뜰한 것 같으니라구."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싶다가도 어쩔 때는 찬탄이 절로 나올 만큼 영악한 행동을 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 또한 조카애가 언급했던 모사의 00캐시백 포인트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으면 기를 쓰고 그 회사 주유소로 가서 문제의 포인트 모으느라 습관적으로 카드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문제의 포인트가 어느 정도 적립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 포인트를 가지고 물건을 공짜로 산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포인트가 많으면 좋은 사은품을 받겠거니 정도로 여겼는데 조카애는 그 포인트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책이나 화장품 등을 주문결제 할 수 있다니….


그런 조카애가 기특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야말로 디지털형 짠순이구나, 너의 알뜰함에는 이 아날로그형 짠순이는 손을 들고 울고 가겠다. 하하."
"아네요. 고모, 저는 요즘 청소년 애들에 비하면 먼 걸요?"
"왜!"
"어떤 애들은 한강 둔치나 놀이터에 버려진 쓰레기통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아이스콘 상표를 모아서 포인트 적립하는 애들도 있나봐요. 그러니 포인트 회사에서 특정 아이스콘은 포인트 적립시 수량제한을 한다고 하니까요."
"그래, 너보다 한술 더 뜨는 애들도 많나보구나?"

아날로그형 기성세대가 보기에 요즘 애들은 기계가 멀쩡한데도 낡았다는 이유로 핸드폰을 새로 사달라고 조르거나, 새로운 핸드폰 벨소리와 아바타, 캐릭터 등 디지털 콘텐츠를 시시때때로 바꾸느라 돈을 지불한다고 생각한다.

또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교환하느라 통화료도 많이 사용하는 등 한마디로 충동적인 소비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카로부터 의외로 이런 면에서 알뜰하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놀라웠다.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형 세대에 비해 각종 포털 사이트 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적립형 포인트 감각에 익숙해진 것이라 하겠다. 우리 사는 세상이 그만큼 포인트를 권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하다못해 비디오 대여점이나 미용실에서부터 각종 서비스 포인트가 난무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특성이 가져다 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런 포인트제는 사이버 상에서도 그 맹위를 떨쳐 요즘 애들은 현금이나 사이버 머니를 동일시할 정도로 사이버 머니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각종 사이트에 각각 적립되어 있는 이런 종류의 사이버 머니들이 현금처럼 사이버상 아무데서나 통용되지 않고 당해 사이트나 제휴사이트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포인트 권하는 사회라…. 갑자기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각종 사이트 상에 널려 있는 포인트나 사이버 머니들을 하나의 사이버 머니로 통합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고스톱으로 1억 정도의 사이버 머니를 모았다는 사람은 그 사이버 머니로 각종 쇼핑몰에서 필요한 만큼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니 졸지에 돈벼락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닌가?

사이버상에 게임만 잘해도 돈을 모을 수 있는 신종부자가 등장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이버상의 빈익빈 부익부?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진다. 물론 내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각종 포인트 적립 행위는 관련 회사의 매출 확대와 홍보를 위한 유인 수단이다보니 거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원래 적립포인트의 태생적인 한계는 소비를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포인트를 더 많이 적립하기 위해 조금 비싸더라도 웬만하면 그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고, 그 포인트 라벨이 들어간 과자나 일상용품을 구입하게 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생각에 별 생각없이 소비하다보면 주객이 전도되어 어느덧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닌 포인트 적립을 위한 과소비의 늪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이렇게 비판하는 나 또한 과소비의 틈새를 찾아 나름대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똘똘한 조카를 돕기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그 포인트 상표가 찍힌 제품을 찾느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릴지도 모르겠다. 포인트 1점이라도 더 모아서 책이라도 구입할 수 있게 도와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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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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