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의 저 새는 누구의 넋인고

공능의 장순왕후 이야기(1)

등록 2004.08.27 04:18수정 2004.08.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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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은 드라마처럼 설정해서 회고하는 형식으로 관람하면 더 흥미가 있다. 공릉을 찾을 때마다 사라진 왕조의 실록과 권력 투쟁으로 얼룩진 뒷의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왕비는 여자들이라면 어릴 적 한번씩 꿈꾸던 동화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 왕비가 실제 인물일 때는 더 흥미와 호기심이 간다. 왕비의 무덤은 이런 면에서 신비롭다.

국도 1호선 통일로를 타고 구파발에서 출발해 20여분 달리면 공릉이 나온다. 경기도 파주시 봉일천리에 있는 이 사적은 보통 공릉이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공릉·순릉·영릉이다. 예종의 원비 장순 왕후(1445-1461)가 묻힌 공릉, 성종의 비인 공혜 왕후의 순릉, 사도세자의 이복형이며 정조의 양부인 진종과 왕비 효순 왕후의 영릉이 이곳에 있다.


a 장순왕후가 잠든 곳. 석물이 단촐하고 쓸쓸해 보이기조차 한다.

장순왕후가 잠든 곳. 석물이 단촐하고 쓸쓸해 보이기조차 한다. ⓒ 한성희

공·순·영릉은 사적 205호로 지정된 국가 문화재다. 사람들이 능을 찾는 것은 능 주변에 조성된 넓은 숲을 문화재와 함께 즐기기 위해서이다. 문화재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럼 천천히 드라마틱한 환상을 함께 하며 공릉을 거닐어 보자.

장순 왕후는 한명회의 셋째 딸로 태어나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된다. 물론 그 배경엔 한명회라는 거대한 권력이 작용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 배경보다는 540여년 전, 세자빈이 된 지 1년 후에 아들 인성대군을 낳고 5일 만에 죽은 10대 소녀 왕비의 죽음이 더욱 마음을 이끈다.

17살이라면 지금 나이로 여고 2학년 정도다. 그 소녀가 왕가에 속하지 않았다면 수백 년 후에도 이렇게 소녀 왕비의 능으로 나타날 수 없었으리라. 엄격하게 따지면 장순 왕후는 세자빈으로 죽었으니 당연히 능이 될 수 없었다.

당시의 법도는 능(陵)이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무덤 중에서 가장 상위에 속한다. 그 밑이 원(園)이다. 원이란 왕세자와 세자빈, 왕의 부모가 묻힌 무덤을 말한다.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소령원(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무덤)이 대표적인데 당연히 능보다 규모가 작다. 그밖에 왕자와 공주, 옹주의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라고 칭한다.

a 공능 숲 마른 나무둥치에 운지버섯이 꽃처럼 돋았다.

공능 숲 마른 나무둥치에 운지버섯이 꽃처럼 돋았다. ⓒ 한성희

그런데 세자빈으로 죽은 장순왕후가 어떻게 능으로 격상된 것일까? 이것 역시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옆에 있는 순릉의 주인공인 성종 왕비 공혜 왕후는 장순 왕후의 친여동생이다. 이 소녀 세자빈의 무덤은 성종3년에 왕후로 추존되어 능으로 격상한다.


추존된 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에서 능으로 지위가 올라간다 해도 무덤의 석물은 처음 원으로 묻혔을 때 조성한 것에서 변하지 않는다. 이제 천천히 소녀 왕비의 능을 방문해 보자.

당대 최고의 권력자이며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한명회의 딸, 그리고 왕비가 될 뻔 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은 소녀. 그녀의 능으로 가는 입구는 모든 능이 그렇듯이 홍살문에서 시작한다.


a 공릉 홍살문에서 시작되는 참도가 꺾여 정자각에 이른다. 홍살문 오른쪽 밑 사각 석물이 망료위.

공릉 홍살문에서 시작되는 참도가 꺾여 정자각에 이른다. 홍살문 오른쪽 밑 사각 석물이 망료위. ⓒ 한성희

홍살문은 홍문(紅門), 또는 신문(神門)이라고도 한다. 홍살문은 신(神)이 들어 오는 곳을 의미한다. 홍살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사각 모양으로 돌 판이 조성돼 있고 중앙에 돌로 만든 길이 있다. 돌 판은 제문을 불사르던 것을 살피는 관료가 서 있던 곳으로 '망료위'라고도 한다. 능 주변에 잔디와 나무가 무성하니 혹여 제문을 불사를 때 화재의 위험이 있을까 감시하던 곳이라 보면 된다. 또 망료위는 능을 들어설 때 참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왕과 왕비는 죽으면 자동으로 '신'이 된다. 홍살문부터 시작되는 돌로 만든 길은 원래 2단으로 만든 것이다. 아랫길은 임금이 홍살문에서 신을 모시고 제례를 지내러 들어가는 어도(御道)고 윗길은 당연히 신이 들어가는 신도(神道)다. 이 돌길을 참도라고 한다.

공릉의 참도는 다른 능에 비해 매우 특이하다. 북향으로 향하다가 서향으로 ㄱ자로 꺾어진다. 이런 형태는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라 한다. 왜 그런 모양을 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드라마틱 환상의 시각으로 보면, 소녀 왕비의 죽음이 너무 애달파서 꺾은 길을 가는 걸까? 이는 역사의 진실과는 관계없는 개인의 생각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럼 신도를 걸어 들어온 신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느 능이든 들어가 보면 정자각(丁字閣)이란 건물이 있다. 능에서 가장 큰 건물, 눈에 보이는 익숙한 그 건물이 바로 정자각이다. 지붕의 형태가 고무래 정(丁)을 닮았다 해서 정자각이라 부른다.

왕과 왕비의 제례는 반드시 정자각에서 지낸다. 그럼 무덤 앞의 상석은? 사가에서는 상석에 제물을 놓고 지내지만 능은 신을 제사 지내는 곳이니 사가와 다르다. 능에서 석상(石床)은 일명 혼유석(魂遊石)이라고 한다.

a 정자각으로 오르는 왼쪽 둥근 석조 계단이 신계이고, 오른쪽이 동계이다.

정자각으로 오르는 왼쪽 둥근 석조 계단이 신계이고, 오른쪽이 동계이다. ⓒ 한성희

신이 제례를 받기 위해 임금이 모시고 온 참도를 걸어 정자각에 도달하면 동편에 있는 두 개의 계단으로 간다. 왼쪽에 둥근 석조 계단은 신계라고 한다. 신만 오를 수 있는 신의 전용 계단이다. 오른쪽에 있는 계단은 동쪽에 있으니 동계다. 제관들이 산릉 제례를 위해 오르는 계단이다. 반대편 서쪽의 계단은 하나뿐이다. 서계라고 하며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러 오르내리는 계단이다.

능의 구조나 당시의 절차를 알면 능을 관람하는 재미가 몇 배 더할 것이다. 자, 이제 제례가 끝났다. 그럼 음복이 끝난 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자각 뒤편으로 가보자. 돌로 만든 다리가 중앙에 하나 보일 것이다. 이것을 신교라고 한다. 신은 제례가 끝난 뒤 신교를 지나 능으로 되돌아간다. 다시 잠들러 가는 도중 혼유석에서 잠시 노닐지도 모른다.

장순 왕후의 능은 앞에서 말했듯이 세자빈 무덤으로 조성된 것이라서 능 앞의 석물이 간소하다. 왕비로 죽은 여동생 공혜 왕후의 능과 차별된 것이 확연히 보인다. 망주석도 없고 무인석과 병풍석, 석난간도 없다. 문인석과 장명등과 석호와 석양이 있는 단촐한 능이다.

a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고 나무를 갉아 대고 있는 청설모.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고 나무를 갉아 대고 있는 청설모. ⓒ 한성희

가끔 저녁 무렵 까치 몇 마리가 능의 푸른 잔디에 날아와 앉아 벌레를 쪼아 먹는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잠자고 있는,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소녀 왕비는 500여년 후에 능을 찾는 사람들이 때로는 자신의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까?

장순 왕후가 낳은 예종의 맏아들인 인성대군은 유년기에 죽었다. 예종의 계비인 안순 왕후 한씨가 1남1녀를 낳지만 아들 제안대군은 세조의 왕비이며 시어머니인 정희 왕후에 의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 장순 왕후의 남편인 예종이 재위 1년2개월 만에 만 19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자, 조선 최초로 정희 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며 조선시대 여인천하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는 성종을 왕위에 앉혀 딸 공혜 왕후를 통해 권세를 누리려는 한명회와 정희 왕후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어쨌거나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은 두 왕비 모두를 한씨로 맞은 임금이다.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일찍 죽은 것은 문종의 왕비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 왕후 권씨의 저주 때문이라는 설을 믿지 않더라도, 한명회가 수양대군과 단종을 내쫓고 권좌에 앉지 않았더라면 장순 왕후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조는 맏아들을 잃고 며느리인 장순 왕후도 잃었다. 또 손자인 인성대군도 잃게 된다. 세조의 재위 중에는 초상을 치르고 묘역을 조성하느라 늘상 바빴다고 한다. 인과응보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a 비각에서 장난 치는 청설모. 비각 위편으로 도토리거위벌레에 의해 희생 당한 상수리 가지가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비각에서 장난 치는 청설모. 비각 위편으로 도토리거위벌레에 의해 희생 당한 상수리 가지가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 한성희

푸른 잔디가 깔린 정자각 앞 참도를 걸어 오른쪽 비각으로 가니 어디선가 청설모 한 마리가 조르르 달려와 비각에 엎드려 장난을 친다. 나무를 갉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이곳 청설모들은 꽤 낯이 두꺼워서 먹을 것이 없으면 쓰레기통을 뒤지기가 예사다.

녹의홍상으로 단장한 소녀 장순 왕후의 모습은 아리따웠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언니보다 11살 어린 여동생이 잠든 순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혜 왕후 또한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두 자매가 20을 넘기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왕가로 시집가서 요절한 비운을 맞은 것이다.

순릉으로 가는 길에 있는 냇가의 돌에 앉은 하늘빛 고운 새 한 마리가 날아가 앉다가 다시 날아가기를 반복한다. 마치 앞장 서는 것처럼 길을 안내하는 듯하다. 이름 모를 새, 저 예쁜 새는 누구의 화신일까.

a 순릉 가는 길의 냇가에 앉은 이름 모를 하늘빛 고운 새.

순릉 가는 길의 냇가에 앉은 이름 모를 하늘빛 고운 새.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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