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되살리는 고마운 향기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25) 시냇가에서

등록 2004.08.31 10:46수정 2004.08.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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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네 언저리 산들

동네 언저리 산들 ⓒ 박도

예로부터 강원도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고장이었다. 아울러 산이 엄청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강원도는 앞도 산이요, 뒤도 산, 옆도 산”이라고 앞집 노씨 부인이 그랬다. 그 얘기를 듣고 새삼 언저리를 확인해 보니까 딱 맞는 말이었다. 온통 우람한 산들이 내가 사는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우리 마을 앞 시내는 주천강 줄기로 꽤 크다. 그런데 물이 맑지 못하다. 오래 사신 동네 어른에게 여쭙자 원래는 아주 맑은 시내였는데, 인근에 아무개 유업이 들어선 후부터는 냇물이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여기뿐 아니다. 웬만한 산골에 들어가도 시냇물이 흐려서 그대로 마시기가 꺼림칙하다. 시내 상류에 인가가 없는 게 확인돼야만 비로소 안심하고 시냇물을 마실 수 있다. ‘사람 = 오염의 주체’라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게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2, 30년 전만 해도 시골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면, 아무 시내에 가서 두 손아귀로 움켜 물을 떠서 마시거나 짐승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흐르는 시냇물을 그대로 마시곤 했다. 그러면 간장이 시원할 정도로 상큼하고 물맛도 좋았다.

a 지난여름 지리산 뱀사골 계곡의 피서객들

지난여름 지리산 뱀사골 계곡의 피서객들 ⓒ 박도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 산골을 찾아가면서도 가게에서 샘물을 사가는 풍경이다.


지난 여름 한창 피서객들이 붐빌 때였다. 한 텔레비전 보도에 따르면, 어느 계곡에서 야영 생활을 한 피서객들이 상류에서 제대로 정화하지 않고 방류한 뒷간물을 마셨다고 소동이 났다. 안방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조차도 구역질이 났다. 사람들이 모르고 마셔서 그렇지 이런 일들이 그때 그 계곡에서만 일어났겠는가.

심산유곡을 찾아도 사람들이 그곳을 수영장으로 착각하여 맑은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자기가 더럽힌 물이 다시 자기 입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나만은 아니라고 항변할 게다. 사실은 문명을 누리는 현대인치고 환경을 더럽히는 주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말이다.


요즘에는 산골 마을에 울긋불긋한 양옥집이나 페인트 냄새가 덕지덕지한 조립식 주택, 펜션 등 그림 같은 집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농촌주택 개량 사업으로 날로 달로 번듯한 집들이 지어지고 있다.

재래식 뒷간은 하나 같이 수세식으로, 온돌 아궁이 대신 기름 보일러나 심야 전기 보일러로 바뀌고 있다. 집집마다 뒷간에 똥오줌을 한 방울이라도 더 모아서 논밭의 거름으로 쓰기는커녕 용변을 보고는 곧장 물로 씻어 하수도로 흘려 보내고 있다. 가축의 분뇨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더럽힌 오수나 분뇨들이 정화조를 거쳐 하수도로 흘러간다고 하지만 어디 샘물처럼 맑을 수야 있겠는가. 그런데 세상의 이치란 우리가 편하게 누린 만큼, 즐긴 만큼 문명 생활의 역작용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선생님께서 중동이나 유럽 나라에는 물 값이 석유 값보다 더 비싸다고 가르칠 때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이미 그렇게 돼 버렸다.

a 설법하는 도법 스님

설법하는 도법 스님 ⓒ 박도

지난 여름 실상사에서 열린 한 불교 수련회에 갔더니 도법 스님이 ‘즉문즉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똥오줌을 더럽다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만듭니까?”

그날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이 가장 마음에 닿았다. 생각할수록 명언이었다. 우리는 몸에 똥오줌을 지닌 채 살아가지 않는가.

실상사 경내 뒷간은 여태 재래식이었다. 뒷간 어귀의 안내문이 재미있어서 카메라에 담았다. 뒷간 냄새를 “우리 모두를 되살리는 '고마운 향기'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여태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재래식 뒷간을 청소한 뒤 요즘은 자주 '고마운 향기'를 맡으며 그곳을 쓰고 있다.

a 실상사 뒷간 안내문

실상사 뒷간 안내문 ⓒ 박도

내년 호박구덩이를 팔 때에는 뒷간도 치고 퇴비도 하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을 해야겠다. 그러면 내년 여름 싱싱한 호박을 실컷 먹을 수 있을 테지.

이제라도 우리 사회에 환경을 되살리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를 빌고 또 빈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이 시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날이 하루 바삐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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