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68

뭐야? 빌려줬다고? (6)

등록 2004.09.03 14:30수정 2004.09.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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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을 본 사면호협은 슬그머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금이야 옥이야 기른 여식을 주겠다고 하면 고맙다고 절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머뭇거리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만두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무림천자성 당주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이던가!


일인지하 만인지상 같은 자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소임을 맡은 지역 내에서는 제왕처럼 군림하는 무천장 장주 정도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자리이다.

게다가 차기 성주인 철기린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으며, 형당 당주인 빙화 구연혜가 공을 들인다고 한다. 따라서 언젠가는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할 것이 확실시되는 재목이다.

친동생이나 다음 없다는 소화타는 또 어떠한가?

의술로는 천하의 그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기에 모든 의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무천의방의 방주이다.

사라의 경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백에 달하는 의원들에게 보였지만 손조차 대지 못했다. 그대로 놔두면 백이면 백 죽는 날만 남은 셈이었다. 하지만 소화타를 만나고는 단 하루만에 목숨을 건졌다. 듣도 보도 못한 의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였다.


태산에서 초지악과 예비정의수호대원들의 목숨을 끊었지만 그들은 남몰래 악행을 저지르던 악인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자신이 쓴 누명만 벗으면 다시금 무천장주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무림천자성이 천하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유지되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회옥이 철마당주인 것이 좋았고, 장일정이 무천의방의 방주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후일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금방 누그러뜨렸다.

“흠! 너무 갑작스럽다 생각한다면 좋네. 며칠 말미를 가지세. 허나 너무 오래 생각지는 말게.”
“그, 그렇게 하는 것이… 소생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이회옥의 당황하는 모습을 본 사면호협은 그의 내심을 짐작하고는 굳었던 얼굴을 누그러뜨렸다. 자신이야 과년한 여식 때문에 마음이 급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게다가 둘은 오랫동안 헤어져있다 오늘에야 다시 만났으니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 되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헤아린 것이다.

하지만 오래 놔둘 생각은 없었다.

빙화 구연혜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먼저 채가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다. 영웅은 삼처사첩(三妻四妾)을 거느려도 흠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웬만할 때의 이야기이다.

여식이 먼저 혼례를 올리면 정실이 되고, 빙화는 첩의 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빙화가 먼저 혼례를 올리면 그때는 방법이 없어진다. 첩을 두는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정실 자리를 꿰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 가지 이득이 더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자신이 사면, 복권되고 원직에 복귀되는 것이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놓아주지만 결코 오래 끌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흠! 앞으로 사나흘 정도면 되겠는가?”
“예에? 그렇게 빨리요?”

“이런 일을 오래 끌어 좋을 게 무어 있는가? 이리재고 저리재고 할 일도 아니고… 후딱 결정하는 게 좋을 듯 싶으이.”
“저어, 그 정도는 좀 부족한 듯 싶습니다.”

“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겐가?”
“혼례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배웠습니다. 따라서 소생의 모친께 허락도 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소 시일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흠! 그건 그렇지. 자네 모친이 우리 혜아를 본 적이 있는가?”
“아직 없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아예 혜아를 데리고 가서 허락을 구하게.”
“상황을 봐서 그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만 당장은 안 됩니다. 그러니 소생에게 충분한 말미를 주십시오.”
“좋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세.”

더 이상 말을 해봤자 진전될 것은 없고 괜히 닦달하는 기분만 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쾌히 승낙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사면호협은 연신 헛기침을 터뜨리며 사라졌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회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만 믿겠네. 허험! 허허허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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