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67

뭐야? 빌려줬다고? (5)

등록 2004.09.01 11:18수정 2004.09.0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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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장의 의사청에 있는 원탁엔 사람들로 그득하여 마치 저잣거리 한 복판에 자리한 주청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실내에는 여러 개의 탁자가 있었는데 중앙에 놓인 것에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타신니를 비롯하여 장일정과 이회옥 그리고 여옥혜와 왕구명 마지막으로 사면호협이 앉아있었다.


다른 탁자에는 청타족 족장인 자하두와 유라 등이 있었고, 또 다른 탁자에는 백만근 천애화와 그녀를 따르는 십이선녀 그리고 보타신니의 제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호옥접의 놀라운 부술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라는 터졌던 창자가 아물기 전까지는 거동을 해서는 안 되므로 병사에 누워있고, 호옥접은 약초를 채취하기 위하여 정의문 당주인 탑탁호골 좌비직 등과 출타중인지라 자리에 없었다.

흥청망청하던 술자리는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술과 음식이 모자랐기에 끝났지 그렇지 않았다면 밤새 계속되었을 만큼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의사청에는 사면호협 여광과 이회옥만이 남아 있었다. 긴히 할말이 있다기에 남은 것이다.


“저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하셨는데 어떤 것인지요?”
“공자께서 무림천자성 철마당 당주이시라 들었소이다.”

“어르신! 소생이 비록 무림천자성의 당주라고는 하나 어찌 어르신 같은 분께 공대를 받겠습니까? 그냥 말을 놓아주십시오.”
“흐음! 그럼 그럴까?”
“예! 그렇게 하시지요. 저도 그게 편합니다.”


사면호협은 굳이 호칭이나 예의 범절 따위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용무가 있기 때문이다.

“좋네! 자네가 권하니 그렇게 하지. 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묻겠네. 자네, 우리 혜아를 어찌 생각하는가?”
“예에? 여 소저를 어찌 생각하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런 방비도 없는 상태에서 급작스런 공격을 받으면 제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순간적으로 몸이 굳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하수의 기습 공격에 엄중한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지금 이회옥이 그런 형국이었다.

너무도 느닷없는 물음이었기에 무얼 어떻게 대답하여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당황한 것이다.

“허허! 듣자하니 아직 혼례를 올리지 않은 홀몸이라고? 어떤가? 길일(吉日)을 잡아 혜아와 혼례를 올리는 것이.”
“예에…? 어,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혼례라는 말이 나오자 이회옥의 뇌는 순간적으로 혼수상태와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된 것이다.

“자네는 사내라 괜찮겠지만 그 아이는 이미 과년한 나이가 되었네. 그러니 미루지 말고 말 나온 김에 아예 날을 잡세나.”
“예에? 나, 날을 잡다니요? 어, 어르신! 무, 무슨 말씀이신지 소생은 너무도 갑작스런 말씀이신지라 아직…?”

“허허! 당황하긴 뭘 그리 당황하는가?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혜아로부터 대강 이야기를 들은바 있네. 그러니….”
“저어,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허허! 자네가 은자로 만든 주사위를 주었다며?”
“그렇습니다. 그건 여 소저께서 소생에게 주었던 은자로….”

“허허! 더 말하지 않아도 되네. 어쨌거나 그 아인 그걸 정표(情表)로 삼아 틈 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자넬 그리워했다더군. 보타암에서도 한시바삐 무공을 익혀 얼른 자네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무척 애를 썼다고 하더군.”
“예에…? 정표라니요? 그게 정표라고요?”

“허허! 그렇네. 자네가 줘 놓고 뭘 그리 당황하는가?”
“예에…?”

이회옥은 너무도 당황스러웠기에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여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 말 나온 김에 길일을 잡아 식을 치렀으면 하네.”
“예에…?”

“그 아이는 어디에 내놔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아이네. 자네가 알지 모르겠네만 불면 날아 갈 새라, 만지면 터질 새라 그야말로 금지옥엽처럼 키웠네. 내 신세가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아마 통혼(通婚)하자는 청을 넣으려 매파(媒婆 : 혼인을 중매하는 노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것이네. 안 그런가?”

“그, 그야 그렇지요. 여 소저는 참으로 참한 규수라…”
“허허! 자네도 인정하는구먼. 그렇다면 좋네. 자네 마음에도 드는 모양이니 긴 이야기하지 말고 이쯤해서 매듭을 지으세. 어찌하겠는가? 오늘, 날을 잡겠는가? 잡는다면 언제가 좋겠는가?”
“예, 예에…?”

이회옥은 무방비 상태에서 연타를 당한 것처럼 멍한 상태가 되었기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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