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가둬라, 그러면 부시가 승리할 지어다"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11] 텍사스 주 헌츠빌 감옥박물관

등록 2004.09.06 13:49수정 2004.09.0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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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 이어 2004 미국 대선은 양극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미국 사회내 블루(blue)와 레드(red)의 대립은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증오하는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정치는 물론 지역, 인종, 경제, 문화, 심지어는 스포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묘하게도 세계화(globalization)에 있다. 세계화의 엔진이자 진원지인 미국이야말로 세계화의 영향을 가장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는 2004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사회의 양극화된 이면을 현장취재한다. 블루와 레드는 미국대선 개표 때 주별로 민주당이 이긴 지역은 블루, 공화당이 이긴 지역은 레드로 표현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기자 주>

“앉으세요(Have a seat).”
자주 쓰는 말이지만 어떤 경우엔 이렇게 끔찍한 말이 있을 수 없다. 지금 필자는 텍사스 주 헌츠빌(Huntsville) 초입에 있는 감옥박물관(Prison Museum)에서 전기의자를 보고 있다. 진짜 전기의자다. 별명은 ‘Old Sparky.’ Sparky는 spark에서 온 말일 텐데 spark는 전기가 통하면 "지지직"하고 불똥을 튄다는 뜻이다. 그것을 명사형으로 만든 Sparky에는 전기 기사라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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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박물관에 전시된 전기사형의자. ⓒ 홍은택

이 올드 스파키에 앉은 사람은 361명이었다. 여기에 한번 앉았다가 모두 제 발로 일어서서 나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표현한다. 올드 스파키는 64년 미 대법원이 사형 집행을 ‘잔인하고 상궤를 벗어난 처벌’이라고 금지시킨 후 퇴역했다가 89년 감옥박물관이 생기자 박물관의 가장 진기한 구경거리로 영구 보존되고 있다.

76년 마음이 바뀐 대법원은 사형을 다시 허가했다. 그러자 텍사스 주는 전기의자가 너무 잔인하다며 약물주사로 사형방법을 바꿨다. 사실 전기의자도 ‘인도적인’ 견지에서 1924년에 처음 도입된 것이었다.

그 전에는 교수형에 처했는데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했다. 공개 처형할 때 ‘죄 지으면 이렇게 된다’는 엄숙한 교훈을 느껴야 할 텐데 마치 서커스 구경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변질되자 비공개 처형으로 바꾸면서 이 전기의자를 도입했다. 전기의자를 만든 사람도 사형수였다고 하는데 공로를 인정 받아 종신형으로 감형 됐고 나중에 석방됐다고 한다. 이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혼자 살아남으려고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계를 만들어낸 비정한 배신자라고 해야 할까 동료들을 보다 ‘편하게’ 보내는 방법을 고안한 인도주의자라고 해야 할까.

이 박물관은 약물주사 요법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먼저 병상과 같은 곳에 수인을 눕힌다. 끈으로 묶은 뒤 양쪽 팔의 혈관을 소금물로 닦는다. 수인의 최후의 발언을 듣는다.(담배 한 대 달라고 한 사형수도 있었는데 "실내에서는 금연"이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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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 티오펜탈 나트륨(Sodium Thiopental)이라는 마취제를 놓는다. 수인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판큐로늄(Pancuronium)이라는 골격근 이완제를 주사해 폐와 횡격막을 무너뜨린다. 마지막은 염화 칼륨(Potassium Chloride)을 주사해서 심장 박동을 중단시킨다. 7분이 걸리고 약값은 86달러니까 10만원 정도 한다.

터프한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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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츠빌 감옥박물관 전경. 앞에 있는 탑은 텍사스주 법무 교정국에서 일한 직원들을 기리는 탑이다. ⓒ 홍은택

이렇게 해서는 모두 323명이 처형당했다. 이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76년 대법원이 사형을 다시 허용한 이후 미국에서 모두 918명이 처형당한 것에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텍사스 주의 사형 집행 건수가 미국 전체의 35%에 이른다. 지난번에 썼듯이 텍사스인들은 정말 터프하다. 뿐만 아니다. 85년 이후 텍사스에서 18세 이하 청소년도 13명이나 처형당했다. 그 기간 미국 전체에서 사형당한 청소년이 22명이었으니까 이 부문에서는 텍사스 주 한 곳이 59%를 차지한다. 청소년 사형 집행의 위헌성 여부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그 사형을 집행하는 곳이 바로 헌츠빌에 있는 교도소에 있다. 헌츠빌은 세계의 사형 집행의 수도(World Capital of capital punishment)라고 불리운다. 서방선진국에서 사형집행이 남아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사형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에 와 있는 것이다.

“사형 집행의 수도라고 불리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디선가는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당신이 사는 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떤가.”
“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8세 이하의 청소년도 사형시켜야 하는가.”
“그렇다. 17세든, 50세든 누구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로이 버크헤드(Roy Birkhead). 휴스턴에서 학교 교장을 지내다 은퇴해 헌츠빌에 산다. 감옥박물관에서 만난 버크헤드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하면서 “사실 사형집행은 헌츠빌과 관계가 없다. 주에서 집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덕분에 헌츠빌의 실업률은 낮고 살기가 좋다”고 말했다.

헌츠빌의 실업률은 2%로 이례적으로 낮다. 인구 3만5천명 중 4분의 1 정도가 교도소에서 일한다. 그러니 헌츠빌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처벌에 대한 신념을 듣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물관에는 교도관 모집 전단이 쌓여있다. 18세 이상이고 고교졸업장이 있으며 미국에서 일할 자격이 있으면 기본적인 교도관 자격이 발생한다. 그리고 6주간 훈련과정과 2주간 실습과정을 거쳐 정식 교도관이 된다. 첫 월급은 1716달러(200만원). 8년쯤 일하면 2589달러(300만원) 정도 받는다. 한 가족을 꾸리기에는 빠듯한 보수다.

남북전쟁이후 첫 여성 사형 집행

최근에 가장 논란이 된 사형 집행은 칼라 파예 터커(Karla Faye Tucker)였다. 그녀는 텍사스 주에서 남북전쟁 이후 최초로 처형된 백인 여성 사형수였다. 창녀인 엄마 밑에 태어나 8살 때 이미 마약을 했고 14살에 자신도 창녀가 됐다. 어느 날 남자친구랑 마약에 취해 두 명을 곡괭이로 살해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녀의 인생은 14년간의 옥중생활에서 극적으로 바뀐다. 기독교에 귀의, 독방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그녀의 놀라운 신앙심에 반한 동료들(음, 그러니까 사형수들), 교도관들, 목사들, 그녀가 살해한 여자의 가족까지 나서서 그녀가 진심으로 회개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예쁘고 사진까지 잘 받았다. 그리고 미국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포스터의 주인공이 됐다. 국제사면위원회가 뜨고 보수 기독교단체인 기독 연합(Christian Coalition)의 창립자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도 구명운동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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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남북전쟁이후 처음으로 텍사스 주에서 처형된 여성 사형수 칼라 파예 터커의 생전의 모습 ⓒ 자료사진

그러나 그럴수록 사형주창론자들은 물러서기 어려워졌다. 터커를 감형하면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주 정부의 사면위원회는 사형을 종신형으로 감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주지사가 감형하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주지사는 ‘온정적 보수주의자(compassionate conservative)’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한 선거운동을 벌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그러나 그는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감형을 역시 거부했다. 98년 2월 터커는 약물주사를 맞고 처형됐다.

텍사스는 그렇게 터프한 곳이다. 감옥박물관은 무법천지였던 ‘거친 서부(Wild West)’를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과 단호한 법 집행이 필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텍사스에서는 압도적인 다수가 사형 집행을 지지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수적인 공화당 표를 생각한다면 부시 후보로서는 잠시 ‘온정적’이라는 말을 잊어버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회개한 수인에 대한 감형은 전례가 없지 않다. 감옥박물관은 멀리 올라가지만 존 웨슬리 하딘(John Wesley Hardin)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지구를 다녀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the meanest man that ever lived)’으로 불렸다. 44명을 살해한 것으로 돼 있는데 코를 곤다는 이유로 그에게 살해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1877년에 체포돼서 25년형(이상하게 사형이 아니다)을 언도 받고 복역 중 법과 신학을 공부했다. 형기를 15년 마쳤을 때 주지사로부터 사면을 받아 출소한 뒤 엘 파소(El Paso)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했다.

오히려 그 같은 일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텍사스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갈수록 죄인에 대한 처벌이 세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내 감옥에 갇힌 사람의 숫자가 210만 명에 이른다는 발표가 있었다. 인구 10만 명당 715명의 꼴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세계 기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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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급증하고 있는 재소자 인구의 통계(미 법무부)

영국 내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는 조사 대상 203개국의 4분의 3이 10만명 당 150명이 안 됐는데 미국은 686명으로 1등이었다. 일본은 10만 명당 불과 48명이 옥에 갇혀있다. 한국은 133명으로 일본의 두 배 이상이지만 미국에 비해서는 훨씬 적다.

존 애쉬크로프트(John Ashcroft) 법무장관은 올해 6월 새 기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재소자 인구가 계속 올라가는 동안 범죄율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면서 “폭력범과 누범자들이 보다 엄격한 형량을 선고 받으면서 법을 지키는 미국인들은 전례 없는 안전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못된 놈’들을 모조리 잡아가둬서 착한 시민들이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자랑스런’ 세계기록

재소자 인구로 매년 세계기록을 갱신하는 게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어조다. 그게 미국 보수의 논리다. 범죄는 나쁜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고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본다. 재소자들이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안착하도록 돕는 갱생 시설보다는 더 많은 수인을 가두기 위해 교도소를 늘리는데 초점을 둔다.

그런데 미국과 함께 인구 10만명 당 재소자수에서 상위를 점하는 나라들을 보면 자랑스런 일도 아닌 것 같다. 러시아(638명), 벨라루스(554명) 카자흐스탄(522명) 투르메니스탄(489명) 우크라이나(406명) 등 잘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나라들이다. 국력의 크기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인권탄압의 시비를 받고 있는 나라라는 공통점은 있다.

원래부터 미국이 이런 기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72년 감옥 인구는 불과 33만명으로 인구 10만명 당 100여명의 수준이었다. 1925년부터 50여년 간 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30여년 만에 그 재소자 인구가 7배 가량 불어났다.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갑자기 민란이라도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가둬야 한 것일까.

7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그 30년간은 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되고 잘 사는 사람들을 더 잘 살게 된 시기였다. 숫자로 설명하면 2000년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하위 10%를 점하는 노동자들은 72년에 받던 임금의 91%를 받고 있다. 지난 20년간을 기준으로 하면 소득 순위 상위 20%에 속하는 계층의 소득은 인플레이션 등을 다 감안하고도 43%나 증가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21%나 줄어들었다. 절대적인 극빈자수는 9백만명이 더 늘어 3500만명에 이른다. 그 동안 더 많은 가정이 파괴됐다. 이혼율은 3분의 1 이상 늘었고 사생아의 숫자는 배로 늘었다.

그래서 범죄가 더 늘어났을까. 1980년에서 1996년까지의 범죄율과 수감율을 조사한 범죄학자 앨프레드 블럼스타인(Alfred Blumstein)과 앨런 베크(Allen Beck)는 “범죄율의 증가는 수감율 증가 원인 중 12%밖에 안 됐고 나머지 88%가 형량 기준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수감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넓히고 같은 범죄라도 더 무거운 형량을 때린 결과”라고 형량 선고 문제를 다루는 비정부단체인 ‘Sentencing Project’의 마크 마우어(Marc Mauer)는 말했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범죄율 자체가 감소했는데도 수감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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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박물관에 전시된 감옥. 2인실로 폭 1.8 미터에 길이 2.7미터의 직사각형이다. 난방은 되지만 에어콘은 없어 여름에는 살인적으로 덥다 ⓒ 홍은택

예컨대 3번째 범죄를 저지르면 죄질을 따지지 않고 종신형 또는 25년형 이상 때린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백화점에서 153달러(17만원 상당)의 비디오 테이프를 훔친 사람이 징역 50년형을 선고 받아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이른바 삼진아웃제에 걸린 것. 대법원은 삼진아웃제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50년 동안 가두려면 최소한 1백만 달러(12억원)를 납세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또 배심원에 재량권을 주지 않고 범죄에 따른 의무적 형량을 정해놓은 ‘진정한 선고(truth in sentencing)’ 제도도 확산됐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의 배후에 사회의 보수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들이 기성세대로 진입하면서 자산을 모으게 되자 보수화됐다. 이 바람에 70,80년대 20년 동안 지미 카터 행정부의 4년 임기를 빼고는 공화당이 집권했다.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대통령은 대법원 판사를 비롯, 주요 판사들을 보수적인 인사들로 채워놓았다.

그래서 종신제인 대법원 판사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8년 집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수적인 판사의 수가 절대 다수다. 그것이 미국 사회의 보수적 버팀목이 되고 있으며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플로리다 재검표 파동과 같은 결정적인 시기에 위력을 발휘한다. 대법원은 기계로 검표하는 데 문제가 발생해 손으로 정확히 검표하자는 것을 위헌이라고 가로막았다. 그래서 조지 W 부시 후보가 이겼고 나중에 진짜 손으로 검표해 보니까 앨 고어의 표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을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대법원이 지명한 대통령'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교도소의 사회적 불평등

형량이 높아진 것은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이라기보다는 가진 사람들이 더 지켜야 할 게 많아지거나 지켜야 하겠다는 의지가 정치적으로 더욱 강해진 탓이다. 범죄학자인 제임스 린치(James Lynch)에 따르면 영국이나 캐나다, 독일과 비교해 볼 때 미국은 재산침해 범죄에 대한 형량이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 침입 강도(burglar)의 경우 캐나다에서는 5.3개월, 영국에서는 6.8개월이 선고된 반면 미국에서는 평균 16.2 개월의 형량이 선고됐다.

레이건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도 죄수와 전과자를 대량 배출하는 데 큰 몫을 했다. 1980년 4만명이던 마약 재소자 수가 지금은 50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재소자의 4분의 1 가량이 마약 사범이다.

마약에도 종류가 있다. ‘Sentencing Project’에 따르면 코로 흡입하는 분말 코카인(Cocaine Powder)이 있고 말아서 피우는 크랙 코카인(Crack Cocaine)이 있다. 주사로 넣을 때는 분말 코카인을 쓴다. 이중에서 가장 효과가 빠른 것은 주사로 주입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크랙이다. 크랙은 비싼 분말 코카인을 베이킹 소다와 물을 섞어서 만드는 것이어서 분말 코카인보다 값이 저렴하다.

미국은 크랙이 중독효과와 폭력을 유발할 개연성이 더 크다는 이유로 크랙 복용자나 거래자에 대한 형량을 무겁게 해놓고 있다. 분말 코카인의 경우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하고 있는 게 적발되면 분말 500g 당 5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는 반면 크랙은 5g 당 5년이다. 분말 코카인이나 다른 마약 사범과는 달리 재량의 여지도 없다. 크랙을 거래하다 걸리면 자동적으로 5년 형 이상을 선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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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장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헌츠빌 교도소의 정면. 대학 캠퍼스 건물 같다. ⓒ 홍은택

그러나 크랙이 분말보다 중독이나 폭력유발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두 마약의 형량 차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한다. ‘Sentencing Project’에 따르면 크랙 거래로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의 88.3%가 흑인이고 백인은 불과 4.1%였다. 반면 분말 코카인 거래로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흑인의 비율이 대폭 줄어 27.4%밖에 안 되고 대신 백인의 비율이 32%로 더 많다. 분말 코카인 소지로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백인이 58%나 되고 흑인은 26.7%밖에 안 된다.

그러나 크랙 사범에 대한 형량이 더 무겁기 때문에 감옥에는 안 그래도 많은 흑인들로 넘쳐난다. 재소자 인구의 60%가 흑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만약 오늘 흑인 아기가 태어난다면 인생의 언젠가 감옥에 들어갈 확률이 29%다. 워싱턴 DC의 경우 흑인의 75%가 한번은 감옥에 다녀온다는 통계도 있다.

흑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찍는다. 공화당으로서는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중죄를 범하면 투표권을 빼앗는 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0년 대선 재검표 파동의 플로리다 주의 경우 82만7207명이나 범죄 경력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부시가 재검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과 537표차로 앨 고어(Al Gore)를 누르고 플로리다의 선거인단을 차지하고 결국 대통령직을 먹은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표다. 더구나 상당수의 흑인들이 행정착오로 투표권을 박탈당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비정부단체인 ‘Justice Policy Institute’는 최근에 공화당 성향의 주일수록 더 많이 가두고 더 많이 투표권을 빼앗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는데 당연히 그럴 법한 일이다.

번창하는 감옥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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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츠빌 교도소의 높이 10미터의 벽과 망루. ⓒ 홍은택

어쨌든 많이 가두다 보니 희한한 일들이 일어난다. 미국의 감옥 비즈니스는 연간 40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Justice Policy Institute’의 빈센트 쉬랄디(Vincent Schiraldi) 소장은 감옥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쇠락하고 있는 미 농촌 마을들은 교도소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교도소가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리는 연구보고서까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내 전과자수가 1300백만 명으로 이번에 올림픽을 개최한 그리스 인구보다도 많다고 보도했다.

또 하나 희한한 현상 중 하나는 미국 어딜 가도 헌츠빌처럼 감옥박물관들이 있다는 점. 캘리포니아주 폴솜(Folsom), 샌 퀜틴(San Quentin), 와이오밍 주의 롤링스(Rawlins), 콜로라도 주의 캐논 시티(Canon City) 등 곳곳에 산재해 있다. 감옥이라는 문화가 사회의 주류에 편입돼 있기는 한데 놀이문화로 들어와 있다.

헌츠빌 감옥박물관은 죄수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데 3달러를 받는다. 박물관에서 감옥은 죄값을 치르고 있는 고통스런 장소가 더 이상 아니다.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놀이공간이다. 실제로 교도소를 새로 지은 뒤 ‘진짜 손님’인 죄수들을 받기 전에 일반인들한테 비싼 숙박료를 받고 몇 일간 개방하는 것도 하나의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다. 죄수와 죄수 아닌 사람들 사이에는 선과 악처럼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벽이 있고 비죄수들은 죄수가 아닌 행복을 감방체험을 통해 확인한다.

다른 곳들은 안 가봤지만 헌츠빌은 그런 점에서 압권일 것 같다. 여기는 감옥박물관만 있는 게 아니라 감옥 드라이빙 투어(driving tour)가 있다. 헌츠빌 시내 안에 있는 헌츠빌 교도소(Huntsville Unit)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감옥박물관이나 방문자 안내 센터에 가면 투어 지도를 구할 수 있다.

어디선가에서는 혐오시설이라고 밀어낼 텐데 헌츠빌에서는 시내 주택가 안에 교도소가 있다. 교도소부터 생겼기 때문이다. 1849년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한 유서 깊은 곳이다. 빨간 벽돌의 3층 정문은 교도소가 아니라 대학 캠퍼스 건물 같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감옥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중 철문이 복도를 가로막고 있고 사람들이 부산하게 다닌다. 이곳에 1700명이 높이 10m의 벽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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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츠빌 교도소의 로데오 경기장. 관리가 안 돼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중이다. ⓒ 홍은택

교도관의 제지를 받고 나왔다. 흥미로운 건물은 로데오 경기장이다. 마치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 경기장을 흉내내다 실패한 듯한 경기장이 교도소에 붙어있다. 이곳이 ‘철창 속의 가장 거친 쇼(The Wildest Show Behind Bars)’라는 이름으로 로데오 경기가 열리던 곳이다. 로데오는 길들여지지 않은 소 등에 올라타 오래 버티는 경기다. 1931년에 시작돼 한때는 수천 명의 관중이 몰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죄수들은 정말 물불 가리지 않고 화끈하게 경기를 벌였다. 그래서 스타도 탄생했고 존 웨인과 같은 진짜 스타도 보러 왔다. 하지만 86년 경기장 시설이 낡아 폐쇄되면서 그나마 죄수들이 바깥 공기를 쐴 기회가 줄어들었다.

12번 스트리트와 J 애버뉴가 만나는 곳에는 정거장이 있다. 감옥에서 나오면 여기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난다. 출소자들로서는 처음 자유를 맛보는 곳이면서 마지막으로 보게 될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에 100명 가까이 교도소에서 받은 5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냉혹하다. 한번 전과자면 운전면허조차 따지 못하는 주도 있다. 마약 전과자는 월마트에 취직 못한다.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도 등록금 대여를 받지 못한다. 전과기록이 있는 사람을 뽑겠느냐는 질문에 회사들의 60%가 아마 안 뽑거나 절대 안 뽑는다고 답했다(조지 타운대 해리 홀저 교수 등의 설문조사). 대부분은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져든다. 그렇게 해서 이들 중 70명은 현실의 유리 벽에 부딪혀 몇 년 안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다 삼진아웃제에 걸리면 감옥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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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커우드 힐 공동묘지에 있는 한 재소자의 무덤. 79년3월16일에 옥사했고 수감번호가 277596다. ⓒ 홍은택

드라이빙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페커우드 힐(Peckerwood Hill) 공동묘지다. 캡틴 조 버드(Captain Joe Byrd) 공동묘지라고도 부른다. 1962년 교도관이던 존 버드가 19세기에 쓰이다 버려진 이 공동묘지를 찾아냈다. 900기가 나왔다. 그 이후 더 매장해서 지금은 2000기의 무덤이 있다.

사형당했거나 옥사했을 때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수인들의 시체들이 이곳에 묻혀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봉분을 하지 않는다. 땅을 파서 관을 묻고 다시 흙으로 덮은 뒤 그 위에 묘석이나 팻말을 놓는다. 이 묘지에는 묘석이 놓인 무덤은 두 개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흰 팻말들의 행렬이다. 마치 암호와 같은 숫자의 행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팻말에는 무정하게도 묻힌 수인의 이름이 없다. 사망연월일과 수감번호만 있을 뿐이다.

숫자로만 표시되는 죽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이다. 죄인들에 대한 완벽한 격리란 이런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았든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격리한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더욱 안전해질까, 격리가 더 심각한 대립을 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묘지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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