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을 저만 하면 되겠습니까?"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28) 제자에 대한 그리움

등록 2004.09.12 21:35수정 2004.09.13 11:3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지난날 두 코미디언(구봉서와 배삼룡)이 라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고 하면서 서로 상대에게 양보하는 TV 광고가 있었다. 두 코미디언의 표정도 재미있었지만 라면 한 그릇을 서로 양보하는 그 마음씨가 아주 보기 좋았다.

그래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말이 한 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양보하는 모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흐뭇하다.

사람의 본성은 인(仁)에서 우러나온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온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온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우러나온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마음씨를 지닌 바, 이를 사단(四端)이라고 한다.

케케묵은 옛 어른 말씀 같지만 오늘 이 시점에서도 사람됨을 가름하는 기준으로 더 이상의 잣대는 없을 것이다.

바쁜 출근 길, 꼬리를 문 차량 행렬로 당신의 차가 골목길에서 큰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을 때, 한 승용차가 멈춘 채 앞서 가라고 손짓을 하면 그 때 당신은 얼마나 감격할까?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양보하는 마음이 너무 부족하다. 때로는 양보하는 사람이 아름답게 비치기는커녕 오히려 바보처럼 비치기도 한다. 특히 어떤 자리에 이미 앉은 사람은 좀처럼 양보할 줄 모른다.

1982학년도에 나는 고 1-3반 학급 담임이었다. 2학기 반장 선거 날이었다. 선거는 그 날 마지막 홈룸(자치회) 시간에 할 예정인데, 점심시간에 반장인 신유철군이 찾아왔다.


“저, 이번 2학기 정·부반장 선거 후보자에서 저를 제외시켜 주십시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순간 나는 뜨끔했다. 나에 대한 반감이나 혹 반장을 하면서 경제면으로 부담을 느낀 나머지 학생 어머니가 못하게 압력을 넣은 거나 아닌가 하고. 말머리를 돌려 물어봤다.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 점에서는 참 편하게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나는 평소 학급 반장에게 과중한 부담이나 권한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바, 심지어 “차려! 경례!”라는 구령까지도 주번에게 돌려가면서 시켜왔고, 학생이 반장이면 그 어머니도 반장 노릇하는 그런 일은 근원부터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럼, 그 이유가 뭐니?”

“반장을 저만 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고자 합니다. 신수안이나 이효준이도 잘 할 겁니다.”

두 학생은 1학기 정·부반장 선거 때 셋이서 결선까지 겨뤘던 급우였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너를 반장으로 뽑을 권한도, 반장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할 권한도 없거든. 그 권한은 오직 학급 친구들에게 있어. 정히 네 생각이 그렇다면 이따가 선거 때 네가 직접 학급 친구들에게 네 뜻을 전하는 게 옳지 않을까?”

“네,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홈룸 시간 신유철군은 선거에 앞서 신상 발언을 통해 정·부반장 후보자에서 사퇴를 했고, 이어서 실시된 선거에서 1학기 선거 때 차점으로 낙선된 신수안군이 학급반장으로 당선했다. 그 후 그들 세 학생을 지켜본 바, 늘 사이좋게 지내면서 졸업 후에도 끈끈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

a 1983년 정초에 내 집을 찾아온 담임반 학생들과 북한산에서(왼쪽부터 필자, 이효준, 신유철, 신수안군). 이제는 이들 모두 중년일 게다.

1983년 정초에 내 집을 찾아온 담임반 학생들과 북한산에서(왼쪽부터 필자, 이효준, 신유철, 신수안군). 이제는 이들 모두 중년일 게다. ⓒ 박도

지도자의 조건

'유신'의 조종을 울린 다음해인 1980년 ‘서울의 봄’.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민주화를 갈망하고, 두 김씨 중 어느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던가? 그분들은 분명히 백성들에게 단일화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그분들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기가 양보하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서로 상대가 양보하기만 바랐다. 후보 단일화에 틈이 가자 정국이 더 혼미해져 갔고, 마침내 5·17 계엄령으로 정국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민주 제단에 바쳤다.

다시 7년 후, 아까운 숱한 젊은이들을 다시 제물로 바친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하지만 그 때도 또 두 김씨는 눈앞의 대권에 다시 눈이 어두워 지난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두 후보는 황새와 조개처럼 사생결단 서로 싸우다가 어부에게 잡힌 꼴로 군정 연장을 도운 일등 공신이 됐다.

그러고는 군정을 종식시키자고 하면서 연단 위에다 군화와 철모를 올려놓고 핏대를 세웠다. 누가 군정을 연장시켰나? 블랙 코미디였다.

대선 패배 뒤에 단일화 실패 책임론이 나오자 그분들은 “자기는 양보하고 싶었지만 밑에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민주 국가의 정치를 한낱 도방(都房)나 지역 정치로 여겨서 정치 발전을 그만큼 더디게 했다.

지도자의 첫째 조건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됨 곧 인격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것은 사람에서 시작하고 사람에서 나온다.

그 사람됨의 잣대는 위에서 말한 사단(四端)인데, 나는 그 중에서 자신의 이익에도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과 양심에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에 그 우선 순위를 두고 싶다.

다른 이에게 양보할 줄 알고 자기 잘못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그 사회는 도덕이 살아나고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다.

“반장을 저만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고자 합니다.”

20여 년 전에 신군의 말이 아직도 쟁쟁하다. 양보하는 사람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논어에 “후배는 두려운 존재(後生可畏)”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를 대하면 두려운 마음보다는 어떤 경외감을 갖게 한다. 그때 어린 나이에 어쩌면 생각이 깊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닐 수 있었을까?

그를 기억할 때마다 나는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는 자부심으로 무척 행복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