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둥이 때문에 죽을 뻔한 동생

등록 2004.10.18 09:44수정 2004.10.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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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살던 형제들 가족이 다 모이는 명절에는 자연 이런저런 재미있는 얘기들이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지난달 추석 때도 그랬다. 우리 집은 명절날 화투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40대 세월을 사는 두 동생은 여자들을 도와줄 일을 찾아서 하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로 그것이 전날부터 이어지는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이다.

지난 추석에 우리 집에 가득했던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한 가지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 추석 전날 인근 바닷가로 갯바위 낚시를 갔다 와서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이면 망둥이 잡는 재미로 사는 성싶은 가운데, 동생이 그 망둥이 낚시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이야기다.

우리 삼형제는 똑같이 운동신경을 타고났다. 못하는 운동이 없다. 모두 초등학생 시절에는 가을 운동회 때마다 달리기 1등을 맡아 놓고 했고, 달리기 선수로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400m계주 경주를 하곤 했다.

그런데 가운데 동생은 수영을 하지 못한다. 운동을 고루 잘하는 타고난 운동신경인데 왜 수영을 배우지 못했는지 의아하고 우습기도 하다.

그런 동생이 가을에는 자주 바다엘 간다. 노는 날에는 무조건 망둥이 낚시를 간다. 나는 동생이 놀랍게도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때부터 은근히 걱정을 했다. "자신이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하고 망둥이 낚시를 절대로 위험한 곳으로는 가지 말라"는 당부를 하곤 했다.

그런데 동생은 망둥이 낚시를 갔다가 바다에서 두 번이나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몇 년 전의 일들인데,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제수씨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동생과 제수씨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고 했다.

한번은 이원면 내리에서 당한 일이었다. 재미있게 낚시를 한 다음 들물에 쫓기듯 갯벌을 나올 때였다. 물이 어지간히 덮인 탓에 동생은 낚지 구덩이를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낙지를 잡느라고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그만 퐁당 빠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고꾸라지듯 낙지 구덩이 속으로 빠졌는데, 그 놈의 낙지 구덩이가 유별나게 깊어서 머리까지 푹 들어가더라고 했다. 동생은 망둥이가 거의 가득 차 있던 다래끼를 반사적으로 어깨에서 벗어버리고 허우적거리며 용을 썼다.

낙지 구덩이가 깊기는 해도 별로 넓지는 않아서 동생은 가까스로 낙지 구덩이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가슴까지 오르는 '옷장화'를 신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미 폭삭 뒤집어져서 망둥이가 다 쏟아져버린 빈 다래끼만 겨우 주워들고 동생은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는 갯벌을 서둘러 나왔다.

또 한 번은 작은 녀석인 딸아이를 낳던 해 가을 소원면 법산포에서 당한 일이었다. 역시 재미있게 낚시를 한 다음 망둥이가 거의 가득 찬 다래끼를 메고 서둘러 갯벌을 나올 때였다. 동생은 갯고랑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낚시 재미에 푹 빠져 깜빡 물때를 놓친 탓이었다. 이미 들물이 많이 차서 갯고랑을 거의 덮은 바람에 동생은 그 갯고랑을 정확히 식별할 수 없었다.

갯고랑의 존재를 전혀 모른 것은 아니지만, 그만 방심을 한 것이었고, 그 갯고랑 지점을 반드시 지나야만 했다. 그 갯고랑을 건너야만 갯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계속 들물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동생은 갯고랑의 위치며 깊이 따위를 가늠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냥 걸음을 내딛었고, 물이 목까지만 차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물의 부력을 이용하여 다래끼를 어깨 위로 추겨든 채 조심조심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다가 동생은 한 순간 머리끝까지 물속으로 푹 파묻히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다래끼고 낚싯대고 모자 따위는 다 그의 것이 아니었다. 다래끼는 자동적으로 분리가 되었고, 동생은 물속에서 두 팔을 치며 허우적거렸다.

다행히도 갯고랑은 별로 넓지 않았다. 넓지 않은 갯고랑이지만 머리 위까지 차 오른 물속에서 동생은 천신만고를 겪어야 했고, 정말이지 천신만고 끝에 그 갯고랑에서 겨우 벗어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갯고랑에서 벗어나는 순간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서도 숨이 터질 것만 같았고 빙빙 도는 하늘이 노랗게만 보였다.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구토를 해야 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생각에 망둥이가 가득 든 다람치를 잃은 것이 전혀 아깝지 않더라구요.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고 몸이 떨려요."

그때의 그 긴박했던 상황을 상기하면서 동생은 웃음을 지었다. 다래끼도 없이 돌아온 남편의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죽을 뻔했던 그 상황을 실토할 때는 목이 메더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동생은 좀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 얘기를 했다.

"그 날 내가 옷장화를 신고 낚시를 갔더라면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었을 거요."

동생은 먼저 사용하던 옷장화가 구멍이 나서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새 옷장화를 사려고 낚시 가기 전날 저녁에 낚시 가게엘 갔노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닌데 낚시 가게 한 집은 문이 잠겨서, 또 한 집은 옷장화가 다 떨어지고 없어서 그걸 살 수가 없었어요."

가을 날씨가 좀 쌀쌀해져서 바닷물이 꽤 차가울 것을 걱정하면서 동생은 옷장화도 없이 망둥이 낚시를 갔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바지만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들어가서 낚시를 했다.

"만일 옷장화를 신었더라면 옷장화 속으로 물이 들어갈 테니, 갯고랑 물속에서 그걸 벗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결국 나는 도리 없이 죽었을 거예요."

동생의 그 얘기를 들으며 우리 가족 모두는 동생이 전날 저녁에 낚시 가게를 두 곳이나 갔어도 옷장화를 구입하지 못한 것이 천운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오랜 세월 유지되고 있는 내 기도 생활을 퍼뜩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거의 매일같이 이른 아침에 동네의 가로등과 방범등들을 끄는 일을 한다. 그 일을 하면서, 즉 움직이면서 아침기도를 한다. 저녁기도도 잊지 않는 날이 많다.

기도할 때마다 끝기도로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와 주보성인께 바치는 기도를 한다. 그 기도들을 복수형으로 한다. 즉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를 할 때는 '수호천사님들시시여'라고 복수형으로 지칭을 하고, 주보성인께 바치는 기도는 우리 삼형제 가족 주보성인들의 이름을 모두 부른다.

그 얘기를 신앙생활을 거의 등한시하는 동생에게 특별히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대신 우리 다 같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녁기도를 하자고 했다. 모두 불평 없이 찬동을 했고 가운데 제수씨가 동작 빠르게 텔레비전을 껐다.

어머니와 함께 삼형제 가족이 모두 거실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저녁기도를 했다. 지난 설 명절 이후로 한참 만에 가져보는 우리 집의 또 하나의 풍성하고도 안온한 풍경이었다.

통상적인 저녁기도 후에 나는 다시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와 주보성인께 바치는 기도를 복수형으로, 그리고 암송으로 바쳤다.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들이시여,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희들을 당신들께 맡기셨으니 오늘도 저희 가족을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저희들의 주보이신 성 안나, 막시모, 글라라, 엘리사벳, 헨리꼬님, 성 요왕, 요안나, 시몬, 히야친따님, 성 야고버, 루치아, 사도 요한, 안드레아님이시여, 오늘도 저희 모두의 삶을 당신들께 의탁하오니 저희 모두가 하느님의 품안에서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저희를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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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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