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의 세월 뒤에 꽃을 피운 '해국'

내게로 다가온 꽃들(98)

등록 2004.10.22 19:08수정 2004.10.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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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신(神)이 처음 만든 꽃으로 알려진 꽃은 국화과인 코스모스라고 합니다. 코스모스(Cosmos)라는 명칭은 그리스어의 코스모스(Kosmos/질서,조화)에서 유래된 것이니 혼돈(Kaos)의 세계에 질서를 불어넣을 때에 국화과의 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신이 가장 나중에 만든 꽃은 무엇일까요? 제일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 바로 국화꽃이었다고 합니다. 신이 이런 꽃 저런 꽃 만든 경험들을 총동원해서 가장 예쁘게 만든 꽃이 바로 국화과의 꽃들이라서 국화가 꽃 중에서는 가장 고등식물이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 들판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들 그래서 일반적으로 들국화라고 부르는 국화과의 꽃들 중에는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 많은 국화과의 꽃들 중에서 바닷가에 피는 국화라 하여 '해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을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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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해국-흔하지 않는 종인 듯 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흰해국과 눈맞춤을 했습니다. ⓒ 김민수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子曰 吾 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에 확고히 섰고, 40에 유혹되지 않고, 50에 천명을 알았고, 60에 귀가 순해졌고, 70에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꽃을 좋아하는데도 세대의 차이가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40대 이전의 젊은이들은 화사한 장미 같은 꽃들을 좋아하고, 50대 이후는 은은한 향기를 가진 국화 같은 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좋아하는 꽃, 인고의 세월의 맛을 아는 이들이 좋아하는 꽃인 셈이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으려면 그만큼의 삶의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척박한 바다에 자리잡고 피어나는 '해국'이야말로 인고의 세월을 담아 피어났으니 그만큼 삶의 깊이가 깊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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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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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꽃 중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꽃이 국화꽃이라고 합니다.

장례식용으로 흰국화가 사용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신이 마지막으로 만든 꽃의 향기를 맡으며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들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숙연해 집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 라는 시가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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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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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국화의 꽃말은 색마다 다른데 빨강색 국화는 '사랑', 하얀 국화는 '고결', 노랑 국화는 '시련'이며 이를 통틀어 '굳은 절개'라고도 합니다.

사랑을 하되 고결하게 할 것이며, 고결한 사랑을 하기 위해선 때로 시련을 당하기도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절개로 지켜가야 할 것이 '사랑'이니 이 모든 꽃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해국은 보라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흰해국도 있으니 위의 꽃말들을 다 담아서 '인고의 세월'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꽃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해지는 것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간혹 전해지는 꽃말을 뒤로하고 자신이 꽃과 교감한 것들로 꽃말을 붙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해국은 여느 국화과의 꽃들과 달리 해안가의 바위에서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는 한 겨울에도 푸른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 겨울은 바위에 온 몸을 쫙 붙이고 납니다. 태풍이 불어 파도가 해안가에까지 올라오면 아무리 바다를 좋아하던 것들이라 해도 소금끼로 인해 이파리가 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고의 세월을 뒤로 하고 가을이면 가장 환한 얼굴로 가을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인고의 세월을 위로 한 꽃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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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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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국화과의 꽃 중에서 구절초와 어울릴 것 같은 꽃 이야기입니다만 해국도 국화과의 꽃이니 국화주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옛날 중국의 장방(長房)이라는 사람이 항경(桓景)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오는 9월 9일 당신 집에 큰 재앙이 있을 것이요."
"예? 그 큰 재앙을 면하는 방법을 없는지요."
"재앙을 면하고 싶으면 곧 집을 떠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십시오."
"올라가기만 하면 되나요?"
"떠나실 때에는 식구들에게 주머니를 하나씩 만들어 주고 그 속에 수유나무 열매를 넣어 어깨에 메고 가십시오. 그리고 산에 올라가시면 국화술을 마셔야 합니다."

항경은 장방이라는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식구들을 데리고 뒷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고 돌아왔겠지. 집에 와 보니 키우던 닭, 개, 소가 모두 죽어있었단다.

항경이 장방에게 이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했겠다.
"운수를 피해갈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당신 대신 가축들이 화를 입은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른바 '중양지연(重陽之宴)'이라는 것이 생겼고 9월 9일이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국화주를 마셨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네. -위 내용은 국화에 관해 구전되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국화주를 마시고 장수했다는 많은 설화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화주를 연명주(延命酒) 또는 불로장생주(不老長生酒)라고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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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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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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