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맛을 간직한 '감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97)

등록 2004.10.21 10:03수정 2004.10.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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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4년 5월 10일 제주시에서

2004년 5월 10일 제주시에서 ⓒ 김민수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일들이 기쁜 일,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누구나 소망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소망한 대로만 살아지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는 있으되 결국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삶의 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삶에는 맛이 있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삶에는 단맛도 있고 쓴맛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면 삶이 깊어집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면 삶이 경박해지기도 하고, 너무 무거워서 좌절하게도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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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감꽃을 드셔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맛을 '너무 달지도 않고 떫지도 않은 풀맛'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요즘 아이들이 감꽃을 먹으면 단맛에 길들여진 입이 "아무 맛도 없잖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때 보면 지나치리만큼 꽃받침이 꽃에 비해 크고 단단합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열매를 보면 그게 그렇게 크고 단단해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아이보리색의 감꽃은 나뭇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어서 핍니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모두 단감이나 홍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 떨어져 태풍이라도 지나간 날이면 감나무 아래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듯했습니다.

가을에 밤이나 도토리, 대추를 털 때에는 올라가서 텁니다. 그러나 감나무에는 올라가서 털지 않고 긴 장대를 이용해서 감나무 가지를 꺾어 땁니다. 긴장대로도 나뭇가지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뭇가지가 잘 꺾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니 감나무에 올라가면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 특성 때문인지 감꽃도 잘 떨어지는데 모진 비바람을 견딘 것들이 단감도 되고 홍시도 되고 까치밥도 되고 곶감도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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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런데 만약 너도나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꽃이 핀대로 다 열매가 되겠다고 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감의 사촌 격인 밀감이라고도 하는 귤도 꽃이 참 많이 피는 것 중의 하나인데 귤의 경우에도 열매가 한 나무에 너무 많이 열리면 솎아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품의 귤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감의 경우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비바람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그런 문제들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감 농사를 전문으로 지시는 분들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감을 크게 하려고 감꽃을 딴다거나 열매를 솎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떨어진 꽃들로 인해서,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니 그저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시들어간다고 손가락질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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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제주에서 감은 아주 특별하게 사용됩니다.
갈옷을 만들 때 열매를 사용하는데 언제 열매를 땄는가에 따라 갈옷의 색감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번 물들인 옷은 색깔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변해간다고 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갈옷의 색감을 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더해지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감이 퇴색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갈옷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지요?


꽃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채식이 육식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각종 유기농채소에서부터 약초에 이르기까지 자연친화적인 먹거리에 관심들이 많습니다.

채식주의자들 중에는 고기를 가리켜 '동물시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이 육식보다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활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새벽 산책길에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좋을 듯한 연한 쑥을 한 줌 뜯어왔습니다. 그런데 깜빡 잊고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쑥이 가방에 들어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실 것입니다. 시든 쑥에 물을 뿌려주니 다시 생기를 얻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죠. 그런데 고기는 그렇지 않잖아요. 썩거나 상하면(삭혀 먹는 홍어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다시 신선하게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고기는 '죽은 것=동물시체'인 셈이죠. 우리 몸에 살아 있는 것이 모셔지는 것이 건강에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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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갈옷을 물들일 때 쓰는 떫은 푸른 감, 아삭한 맛과 단 맛을 간직한 딱딱한 단감, 치아가 없는 노인들도 부담 없이 후루룩 먹을 수 있는 홍시, 겨울철 별미 쫀득쫀득 곶감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는 감은 참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을 너무 좋아해서 먹고 싶은 대로 먹다 보면 변비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땅콩 같은 것을 먹어서 다스립니다. 설사가 날 때에는 감, 변비일 때는 콩 종류를 많이 먹으면 다스려진다고 합니다.

감은 호랑이보다도, 일본 순사들보다도 더 힘이 세죠.
아이들을 달랠 때 '호랑이가 온다거나. 순사가 잡으러 온다거나'하는 공포심을 심어주는 말보다도 '곶감 줄게 울지 마라'는 말이 훨씬 더 따스한 말이겠지요. 요즘 아이들이야 호랑이나, 순사, 곶감으로 달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다'의 명사형이 '감'입니다.
우리네 삶도 오고 가는 것이니 어쩌면 감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세상살이를 굽어보며 그 세상살이 맛을 담아 떫은 맛, 단 맛을 모두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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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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