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각오로 도망가야 하는 사람

단속과 강제추방 앞에 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현실

등록 2004.11.08 18:41수정 2004.11.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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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밤 9시가 가까운 시간, 수원과 광주 사이 도로에서 사고가 났는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평소 베트남어 통역 봉사를 늘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해 주는 최 사범이었습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던 사람의 발뒤꿈치가 바퀴에 끼어 뼈가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사고가 난 위치를 정확히 가르쳐 달라고 하자, 최 사범은 우리 집과 불과 몇 분 사이에 있는데 당장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전화 내용 그대로 얼마 되지 않아 집 앞 사거리에서 만난 최 사범은 사고를 당한 사람과 오토바이 운전자를 차에 태우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지혈을 위해 발뒤꿈치를 움켜잡고 있었는데, 허연 뼈가 손가락 사이로 얼핏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입고 있던 청바지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두터운 겨울 잠바를 두 벌이나 입고 있었는데도 추운지 몸을 벌벌 떨며 얼굴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만나자 마자 긴급히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밤이라 차량이 많지 않아 10여 분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수술에 들어갔던 간호사 중 한 명이 한 시간여가 지나자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수술 경과를 전해 주었습니다.

발뒤꿈치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뼈는 의외로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아킬레스건이 1/3이 손상되어 3주간의 깁스가 불가피한데 치료를 잘하면 큰 무리 없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호사는 수술이 끝나면 당장 퇴원이 가능하니 원무과를 들러보라고 일러줬습니다. 원무과에선 보험 카드를 갖고 오지 않아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일반진료 수가로 계산해 약 60만원 정도가 나올 것 같으니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퇴원에 앞서 보험수가가 적용되면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상당액이 될 것이라는 두리뭉실한 답변을 들으며 수술비와 약값을 합해 50여만원을 오토바이를 운전했던 사람이 지불했습니다.


밤 10시 40분경에 수술이 끝났는데, 사고를 당했던 사람은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입원하지 않고 퇴원할 수 있다는데 안도하는 듯했습니다. 오토바이를 운전했던 친구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습니다. 둘은 곧 결혼할 사이라고 했는데, 얼핏 보기에도 둘의 나이 차가 많아보였습니다.

우리는 깁스를 한 부위가 굳을 때까지 이러 저러한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다리를 다친 사람은 26세로 이름은 탄티똠이라고 했습니다. 탄티는 우리식으로 하면 전(全)씨로 베트남에선 우리의 김, 이, 박 처럼 흔한 성이라고 합니다.


탄띠똠은 처음에는 한국에 온지 삼년 반이라고 하다가, 유창한 한국어에 놀란 제가 사실이냐고 거듭 물어보자, 사실대로 한국에 온 지 칠년이 된다고 했습니다. 탄띠똠이 왜 삼년 반이라고 우겼는지 뻔히 알면서도 제가 짐짓 다시 물었습니다.

“왜 처음부터 칠년이라고 하지, 삼년 반이라고 우겼어요?”
“지금, 칠년이라고 하면, 다 불법사람이라고 해요. 다 잡아가요”
“똠은 출입국 사람들이 오면 죽을 각오로 도망갈 사람이네.”
“네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단속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화였습니다. 탄띠똠은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수술을 받아야 했던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분 때문에 누가 와서 잡아가지 않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탄티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지금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합동단속과 강제추방 정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력한 단속과 추방정책은 숱한 피해자를 양산하지만, 결코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정부도 충분히 경험한 바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물리력을 동원해 해결해 보려고 했던 각국의 경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1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있다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2002년부터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될 경우 5년간의 감옥행과 미화 2천불이 넘는 벌금형에, 태형까지 가하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가 물리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말해줍니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자 한다면, 책상머리에서 서류 작업을 통해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오랫동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요구사항이 뭔지 잘 알고 있는 지원단체 관계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강한 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정부가 알았으면 합니다.

그래야만이 죽을 각오로 단속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정부도 그런 사람을 붙잡겠다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각오로 도망가야 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두웠고,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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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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