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5년 일했는데 결과는 천지차이

귀국 준비 중인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과의 대화에서

등록 2004.11.02 20:35수정 2004.11.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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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또꼬, 아낭과 함께

또꼬, 아낭과 함께 ⓒ 고기복

오는 8일이면 한국 생활이 만 5년이 된다는 또꼬와 5년하고 넉 달을 넘긴 아낭을 만난 건 지난 주 일요일이었다. 둘은 성격이 조용조용하고 숫기가 없으면서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를 좋아해서 늘 천하태평으로 보이는 인도네시아 출신 청년들이다.

또꼬는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만났는데 벌써 5년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다.

또꼬는 기술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하기 원했지만,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농사짓는 부모님을 돕는 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산업연수생으로 해외에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같은 기술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점차 많아지면서였다고 한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송출회사에 신청을 하고 1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또꼬는 출국할 수 있었다. 처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용접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공장으로 배치 받아 만 2년을 일했다. 차량용 LPG통을 만드는 회사였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공장에는 인도네시아 출신 선배 산업연수생들이 20여명이 일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숫기가 없는 또꼬도 적응을 잘하며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업연수생에서 연수취업자로 신분이 바뀔 시기에 공장장이 자신이 그동안 적금한 것으로 알고 있던 돈을 써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 마음에 그 회사를 나오면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직장을 옮기기 전에 그 공장장은 업무상 실수였다는 부분을 설명하고 언제든지 어려운 점이 있으면 다시 회사에 들어오라고 하며, 임금과 적금 문제를 해결해 줬다고 한다.

처음 옮긴 공장은 건축현장에서 시멘트를 들이부었을 때, 시멘트가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틀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페인트도 칠하고 용접도 하면서 1년을 일하다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또 다시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역시 용접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회사의 배려로 인도네시아에 휴가도 한 번 갔다 왔다. 회사에서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라고 하고 있지만, 고용허가제하에서 쉽게 입국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걸 또꼬는 잘 알고 있다.


만5년 동안 세 번의 이직을 했던 또꼬는 이직할 때마다 업체측의 배려로 임금체불 없이 웃으며 이직할 수 있었고, 그 동안 꾸준히 고향에 송금하여 집도 장만하고 제법 많은 땅도 샀다고 한다.

한편 아낭은 또꼬보다 약간 먼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지만 업체 배정부터 자신의 적성이나 기술과는 전혀 다른 곳에 배정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아낭 역시 기술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갖고 있는 기술과는 상관없이 처음에는 섬유 공장, 그 다음에는 사출공장, 또 사출공장 그리고 얼마간의 도금공장 생활과 골판지공장 등을 전전해야 했다. 잦은 이직과 실직으로 아낭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내가 아낭을 처음 만났던 것은 3년 전 한 사출업체에서 아낭과 그의 친구들이 여권을 압류당하고 석 달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아낭의 하소연을 듣고 업체 대표를 찾아 갔던 날, 꽤 규모 있어 보이던 그 업체의 이사라는 사람은 “겨우 석 달 밀린 월급 갖고 왜 그리 호들갑이냐! 창피하게 어디서 한국 사람들까지 데리고 와서 지랄이야!”하며 아낭에게 폭력을 가하려고 하는 통에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후 아낭은 내가 알기로 1년 이상 일한 회사가 없을 정도로 이직이 잦았는데, 그 주된 이유가 회사의 경영난을 빌미로 한 임금체불이었다. 지난 일요일도 아낭은 두 달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다보니, 아낭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대로 송금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또꼬가 귀국 준비하는 것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또꼬는 귀국하기에 앞서 인도네시아에 갖고 갈 물건들을 사기 위해 지난 주부터 여러 시장들을 둘러보고 있다. 또꼬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물건은 휴대용으로 쓸 수 있는 소형 용접기라고 한다.

그런 또꼬를 보면서 아낭은 자신도 올해가 가기 전에 귀국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5년이 너무 허무하다고 했다. 달리 벌어 논 것이 없는 현실에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또꼬처럼 한국에서 쓸 만한 용접기계라도 하나 사고 들어가서 시골에서 가게를 차려볼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이라고 했다.

또꼬나 아낭 두 사람 모두, 내가 외국인노동자센터를 처음 연다고 했을 때, 자신들의 여름휴가 기간 내내 자신들일인양 함께 땀을 흘렸을 만큼 서로 의지하며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그 중 한 명은 나름대로 큰 희망을 안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막막한 현실 가운데 고민하고 있다.

같은 5년을 일하고도 영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낭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그의 성실성과 성격 좋음을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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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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