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 자동차와 삼륜차가 빚어내는 카오스

베이징대학 동문에서 칭화대학 서문까지

등록 2004.11.29 15:44수정 2004.11.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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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학 동문 ⓒ 김대오

베이징(北京)대학 동문을 나설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야 한다. 바오안(保安, 일종의 수위)에 대한 예의의 표시이자 대학의 권위를 존중하는 의미이다.

베이징대학 동문 앞은 몰려드는 차들과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뒤엉켜 늘 혼잡스럽다. 퇴근 시간과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면서 버스, 자동차, 자전거떼, 사람들이 뒤섞이며 만들어 내는 도로 위의 혼란은 그야말로 대장관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중국 IT산업의 요람인 중관춘(中關村)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지만 좌회전 신호가 없는 신호 체계와 기본적으로 그 신호를 무시하는 자전거와 보행자들의 무질서가 교통 흐름을 더욱 더디게 한다.

사람들에 묻혀 이게 바로 '무질서의 편리함'이거니 하며 신호등을 무시하고 간신히 길을 건넜다. 그리고는 칭화대학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 가려는데 웬 아주머니가 다가와서는 "CD 있어요"하고 조그맣게 말을 건넨다. 호기심에 "한장에 얼마냐"고 물으니 10위엔(1500원)이라고 한다. "싸게 해 줄 수 있느냐"고 하니까 8위엔까지 해 주겠단다.

1997년 중국에서 불법 복제가 막 고개를 들고 기승을 부리던 시절만 하더라도 아주머니가 호객을 하던 그 건너편에는 다오반(盜版, 불법복제CD)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베이징대학 동편으로 널따란 도로가 나 있다.

그때부터 중국은 지금까지 선진국의 수많은 소프트웨어와 영화, 음반 등의 문화 상품들을 '다오반'이라는 이름으로 값싸게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국조가 '디아오처(吊車, 고층 건물 공사에 사용되는 골리앗 크레인)'라고 할 정도로 베이징은 거대한 공사장이 되었다. 베이징대학 동편 울타리 옆에도 높은 디아오처가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다. 석양을 받으며 우람하게 올라가는 건축물에 비해 그 아래에 있는 인부들의 허름한 숙소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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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삼륜차, 이층버스가 함께 질주하는 거리. 현대화의 과정 중에서 변화하고 있는 다양한 중국의 모습일 것이다. ⓒ 김대오

길거리에도 호화 외제 자동차가 굴러가는가 하면 그 곁으로 우마차가 지나가고 이층버스와 재활용품 회수용 삼륜차도 서로 뒤섞여 달린다. 이렇게 근대와 전근대, 부(富)와 빈(貧)이 교차되고 뒤엉키며 거대한 문화 퇴적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오늘의 중국의 모습이다.

길가에 자리잡은 자전거 수리점, 복사가게, 미장원에는 손님이 별로 없는지 종업원들의 시선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모두 필경 고향을 떠나와서 간단한 기술을 배워 그걸로 먹고 사는, 베이징의 중심에서 밀려나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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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는 주로 간단한 기술을 배워 차릴 수 있는 자전거 수리점과 미장원이 들어서 있다. ⓒ 김대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없어서 자전거포에서 1마오(毛, 15원)를 주고 바람을 넣는다. 복사가게에는 A4용지 한장 복사에 7펀(分, 10원)이라는 글귀가 손님을 호객한다. 미장원 아가씨에게 이발비를 묻자 머리를 감겨 주고 드라이까지 해 주고 5위엔(750원)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소비 패턴은 각자의 경제적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상한가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5위엔의 이발비도 아끼려는 사람은 길거리 이발사에게 2~3위엔에 이발을 해결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빈부격차가 만들어 내는 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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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허름한 집 앞에서 과자를 나눠 먹고 있다. ⓒ 김대오

도로변으로 걸린 삼성의 MP3 광고는 끝이 보이지 않게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오른편으로 청부(成府)초등학교를 지나니 그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허름한 집 앞에서 과자를 나눠 먹고 있다.

세숫대야에 더운 물을 받아 머리를 감던 아저씨는 그 물을 아이들이 노는 먼지 나는 마당을 향해 내다 버린다. 그리고 허리를 펴는 그 아저씨의 시선이 한참 머무는 것을 향해 돌아서니 베이징대학의 쉐이타(水塔) 너머로 아름답게 노을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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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학의 쉐이타(水塔) 너머로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다. ⓒ 김대오

그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잠시 평화롭게 멈춰서는 듯하다. 아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무뎌져 버린 일상의 그렇고 그런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먼지가 많은 중국에서 보는 석양은 유난히 더 붉고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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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학 서문 ⓒ 김대오

칭화대학 서문 돌사자상을 지나 자전거를 내리려고 보니 다들 그냥 자전거를 타고 교문을 들어선다. 이곳은 이미 그 형식적인 권위를 내던졌다는 의미일까. 내 곁을 지나간 한 무리의 자전거떼는 칭화(淸華)대학 서문을 지나 상띠(上地)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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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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