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 말뚝 보고 절하는 신랑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57) 결혼식장에서

등록 2004.12.06 22:29수정 2004.12.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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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랑이 너무 좋은 나머지 장모를 업고 예식장을 한바퀴 돌고 있다

신랑이 너무 좋은 나머지 장모를 업고 예식장을 한바퀴 돌고 있다 ⓒ 박도

웃음꽃이 핀 혼인 예식장


내가 안흥 산골에 내려온 지 아직 1년이 안 되지만 아내는 이곳과 인연을 맺은 지 몇 해가 된다. 주로 농민회 사람들과 연을 맺고 있다.

지난 일요일 아내가 횡성 녹색농원 댁 따님 결혼식에 청첩을 받아 간다고 하기에 따라 나섰다. 어쨌든 우리 내외는 '굴러온 돌'이다. '박힌 돌'을 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웃과 담을 쌓거나 거리를 두며 살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귀한 동네에 살면서 그나마 있는 사람과도 서먹하게 지낸다면 외로워서 견디기가 힘들다. 나는 하던 일을 제치고 따라 나섰다.

a 신부가 깊은 산속의 금강초롱처럼 예뻤다.

신부가 깊은 산속의 금강초롱처럼 예뻤다. ⓒ 박도

혼인예식은 횡성읍내 한 예식장에서 했는데 예식장 이름이 '향교 웨딩홀'이었다. 향교 예식장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향교 웨딩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게 눈에 거슬렸다.

상품이나 가게 이름에 굳이 서양 외래어를 써야 더 고급스럽거나 품위가 있는 걸까? 더욱이 향교라면 가장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 아닌가.


시골에 혼인잔치가 드물고, 농번기를 피한 탓인지 예식장에는 많은 하객들로 붐볐다. 혼인 예식을 시작하자 신랑이 코미디언처럼 실수를 연발해서 예식장이 화기애애했다.

주례자도 여러 번 주례를 했지만 오늘처럼 웃음꽃이 핀 혼인 예식은 없었다고 덕담을 했다.


신부가 아주 예쁘고 건강미가 넘쳤다. 요즘 농촌총각은 장가가기 힘든데 아리따운 신부를 얻었으니 아마도 신랑으로서는 생에 최대의 기쁜 날이 될 터였다.

혼인 예식장에서 신랑 신부의 자그마한 실수는 오히려 하객을 즐겁게 한다. 신랑 신부가 아주 노숙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하객들이 '처음 해 본 솜씨 같지 않다'고 쑥덕거리기도 한다.

a 신랑의 눈길은 내내 신부를 떠나지 않았다.

신랑의 눈길은 내내 신부를 떠나지 않았다. ⓒ 박도

'우리 사위 최고'

신랑의 눈길은 잠시도 신부를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몇 번 자그마한 실수는 있었지만 혼인 예식이 무사히 끝났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신랑의 돌출 행동이 일어났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양가 부모에게 드리는 인사에 이어 하객에게 큰 절을 드린 후였다.

신랑이 장모에게 다가가 장모를 업어주겠다고 어깨를 덥석 내밀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을 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신랑이 신부에게 얼마나 감격했으면 그랬을까?

a 신랑의 입장, 모든 하객을 즐겁게 했다

신랑의 입장, 모든 하객을 즐겁게 했다 ⓒ 박도

장모는 뜻밖의 제의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사양했지만 하객들이 사위에게 업히라고 종용하자 장모가 업혔다.

장모의 체중이 보통이 넘는지라 신랑이 업다가 그만 넘어졌다. 하객들이 웃음소리로 장내가 시끌벅적 했다. 신랑은 안간힘을 다해 다시 장모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식장을 한바퀴 돌았다. 다음으로 자기 어머니를 업고 예식장을 한 바퀴 돌았다.

"야, 신랑 낮에 너무 힘을 빼서 오늘 첫날 밤 치레 잘 할지 모르겠다."

객석에서 농담이 쏟아지고 박수가 터졌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즐거운 잔치 풍경이었다. 피로연의 음식도 정성이 깃들어서 좋았다. 평생 처음 사위에게 업힌 장모는 기분이 좋은지 하객에게 연신 술잔을 따랐다.

신랑도 신부도 늘 오늘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20여 년 곱게 기른 딸을 농촌으로 시집보낸 녹색농원 내외 분도 두고두고 사위 잘 봤다고 '우리 사위 최고'라고 여기며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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