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한국 영화가 성공하려면?

[중국문화콘텐츠⑤]급성장한 중국 영화 시장 녹일 한국 영화 코드를 찾아라

등록 2004.12.10 03:36수정 2004.12.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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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산업의 눈부신 양적·질적 성장

2004년은 중국영화사에서 뜻 깊은 한 해였다. 내년이면 WTO 가입 이후 중국 영화에 대한 보호장치(2001년 가입 당시 10편이던 수입영화 수를 2005년까지 매년 10편씩 늘려 50편 이상이 되게 함)가 완전히 없어진다. 중국 영화계는 올해까지 영화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개혁을 마무리하고 한다는 목표 하에 영화촉진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는 등 영화산업 육성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또 내년이 중국영화 탄생100주년이어서 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우선 가시적인 성과로서 올해 9월까지 이미 170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12월까지는 2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어 사상 최대의 제작편수(1996년 이후 매해 2.2배씩 증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인도의 500여편, 미국의 350~400편에 이어 세계 3위의 기록이다. 한국이 한 해 100편에 못 미치는 제작 편수를 보이는 것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중국에는 현재 영화제작 기구 39곳, 극장 1140곳, 스크린 2285개, 상영기구 6만9176곳의 방대한 영화산업 기지를 갖추고 있다. 전국 영화관 매표 수입도 상반기 집계만 볼 때 작년 3.9억위엔에 비해 32% 증가한 5.3억위엔을 기록, 올해 처음으로 극장 수입 10억위엔(15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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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십면매복>의 한 장면

중국영화 산업은 양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도 두드러졌다. 민간 투자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국유기업 비율이 낮아지고 민영기업이 80%를 차지했다. 또한 <영웅(英雄)>(장이머우 감독), <십면매복(十面埋伏), 한국 상영 제목은 '연인'>(장이머우 감독), <서우지(手機), 핸드폰>(펑사오강 감독), <2046>(왕자웨이 감독) 등의 대형 상업 영화들이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중국 영화의 국제 경쟁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3억위엔의 제작비를 들인 <십면매복>의 경우 중국 내에서 1.5억위엔의 극장 매표 수입을 올렸으며 북미와 일본 극장 계약만으로 제작비의 2/3을 회수했다. 그밖의 나라에서도 CD, 뮤직비디오 제작 등을 통하여 총 4.3억위엔의 해외 수익을 올렸다.

특히 <영웅>은 해외에서만 11억위엔(미국 4.2억, 일본 3억, 유럽 1.7억, 한국 1.2억,대만, 태국 등지 1억)의 극장 수입을 올려 중국 한 해 전체의 극장 수입을 넘어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장이머우 감독과 제작자 장웨이핑은 난방저우모와 인터넷 시나(Sina)가 선정하는 '2004년 올해의 인물' 후보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영화전문채널인 CCTV-6, 상하이영화채널, 창시(長西)영화전문채널의 올해 광고 수입이 5억위엔에 달해 방송 부문에서의 영화산업 성장도 눈부셨다.

중국영화산업의 제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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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그룹 진춘치앙 사장이 지난 11월 12일 베이징대학에서 중국영화산업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김대오

중국 영화의 이같은 양적·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영화그룹 진춘치앙(金鐘强) 사장은 영화 산업은 최근 몇 년간 개혁이 가장 더딘 분야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칭화(淸華)대학 신문방송학과의 인홍(尹鴻) 교수는 지난 6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가 주최한 강연에서 중국영화산업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선 중국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전반적인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비록 200편의 영화가 제작된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저투자나 정부 지원에 의한 정치적 영화(主旋律電影)이다. 상업영화라 하더라도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시장 경쟁력이 있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중국에서 영화 한 편당 평균 제작비는 400만위엔(50만달러)인데 미국의 5000만달러의 1/100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3만이 극장 상영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거의 재고처럼 쌓이는 실정이다. 물론 월급의 5%를 당비로 내는 공산당원들에게 정치 영화를 단체 관람하게 하여 그 시장 규모가 1000만위엔에 달하기는 한다. 하지만 영화는 보기 싫으면 보지 않는 사치상품이어서 점점 그 시장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영화 제작이 활발한 것은 제작비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하여 제작비를 크게 부풀려 탈세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두번째는 중국 영화 시장 기반이 전반적으로 너무 취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 영화산업 수입 총액이 600억달러인 데 비해 중국은 10억위엔(약 1.2억 달러)에 불과해 미국의 1/600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인이 매년 평균 5.4편의 영화를 보고 한국인이 2편의 영화를 보는 데 반해 중국인은 5년에 한 번 1편의 영화를 본다고 한다.

중국의 극장 관객이 적은 이유는 낮은 영화 수준과 기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극장료가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영화표 값은 60위엔(우리 돈 8000원) 정도인데 미국의 7달러보다도 비싼 셈이다. 중국인의 평균 임금과 비교했을 때 수입의 1/50에 해당되니 극장의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서민들은 극장에 아예 시선을 두지 않는 분위기로 극장은 표 값을 내려도 관객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극장 수입을 늘리기 위해 표 값을 비싸게 책정하고 있어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세번째는 심사와 등급제도 등 정부 차원의 제도적 여건도 성숙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촬영 전에 극본 심사와 촬영 후의 방영 허가권을 위한 작품 심사가 있다. 이 두 번의 심사가 감독의 창의성이나 자유로운 상상력, 작품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영화 <2046>의 경우 10번의 심사와 10번의 재촬영 끝에 방영 허가권이 나왔다. 영화 내용 또한 감독의 의도와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등급분류제도가 확립되지 않아서 어린이에서부터 노인까지 함께 영화를 보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소란스럽고 어색한 분위기가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돌려 놓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그밖에 중국은 성수기(설, 노동절, 여름 피서기, 국경절, 연말연시) 지정된 기간에 중국산 지정 영화를 전국적으로 의무 상영하게 하는 당치(當期) 제도를 운영한다. 정부로부터 선택 받은 작품은 많은 혜택을 보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작품은 극장 상영 자체가 어려워지고 전체적으로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네번째 영화에 대한 발행과 배급 등 마케팅 분야도 크게 낙후되어 있다. 중국의 영화 마케팅 비용은 30만위엔(3.6만달러)에 불과해 할리우드의 3000만달러에 비교해 턱없이 모자란다. 각 성이나 시에 발행공사를 1개씩 두고 있으나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져 개혁이 시급한 실정이다. 자금력과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중국의 모든 극장에 좋은 영화를 발행 배급할 수 있는 민영공사 건립이 시급하다.

다섯번째 문화산업전반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골칫거리인 다오반(盜版, 불법복제) 문제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다오반만 없으면 중국의 극장 수입이 최소한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2월 1일 중국 정부는 베이징선언을 통해 영화 CD(정판) 제작은 영화 상영일로부터 15일 이후로 할 것을 명시하고 100만위엔 자금을 투자해 불법복제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다오반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 영화 관객의 20%만이 극장을 찾고 나머지 80%는 다오반 DVD로 영화를 본다고 응답했다.

문 여는 거대 영화 시장, 공략은 만만치가 않다

2004년 중국 광전총국(廣電總局, 방송영화총국)은 영화산업촉진법 등 일련의 법적 규정을 발표해 영화산업 진흥을 적극 추진했다. 그 가운데에는 외국 영화에 대한 정부의 독점적 수입을 완화하고 외국기업의 투자를 늘리며 중국과 합작영화제작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나가겠다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중국의 거대 영화시장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31호 문건 <중외합작 영화촬영 관리규정>에서는 출연자가 2/3 이상은 반드시 중국인이어야 하는 중외합작의 규정을 완화하여 중국 현지에서의 중외합작 영화 제작을 활성화시키고자 했다. 현재 중국의 20%만이 완전 중국자본이고 나머지 80%는 중외합작일 정도로 영화시장 개방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합작은 형태에 따라 시에파이(協拍)와 허파이(合拍)로 나눠진다. 시에파이는 외국 대본과 외국의 배우를 활용하여 중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자본은 외국기업이 46% 이하, 중국기업이 51%이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중문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 심사와 제작 비준 수속과 관리 비용이 10여만위엔 정도 든다. 그리고 촬영 후 다시 심사를 통과해야만 하는 등 비교적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배급 시에도 수입 영화와 동등하게 취급되며 극장수입의 15% 이하만을 챙길 수 있다. 우리 나라 영화 <무사>가 바로 이 시에파이를 통해 제작된 영화이다.

반면 허파이는 중국 원형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촬영하는 것으로 제작비는 절반씩 부담하며 1/3 이상은 중국 배우를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심사와 촬영 후 심사를 받지만 극장 수입에서 30% 정도를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에파이든 허파이든 신뢰성 있고 각종 업무 처리에서 중국 당국과 원만한 일 처리가 가능한 중국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각종 심사와 허가증 수속, 그리고 최종 극장수입 배분의 문제까지 곳곳에 보이지 않는 난제들이 있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저렴한 노동력과 물가를 활용한 제작비 절감과 거대시장만 믿고 중국에서의 영화 제작을 생각했다가는 그야말로 큰 코 다치기 쉬운 독소 조항들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먹힐 한국영화는?

중국인들은 한국영화에 대하여 대체로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영화는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막상 중국 극장에 수입되어 흥행을 하여 돈을 버는 한국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에서 외국 영화 수입을 50편으로 늘린다 하더라도 성수기에는 중국영화에 극장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비수기에는 막강한 할리우드 영화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나마 극장 수입은 15% 이하만 챙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면 중국 영화시장 진출과 성공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다오반이 파리떼처럼 기승을 부리는 여건도 감안한다면 더욱 말이다. 그나마 아직 한류의 전조가 남아 있고 중국인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칭화대학 인홍 교수는 한국영화가 진솔하고 서정적인 멜로에서 최근 지나치게 폭력성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한국 영화의 장점이었던 생활의 작고 소중한 진실성이 증발하고 재미만을 위한 과장된 폭력이 무분별하게 한국영화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우리 나라는 주요 영화 관객이 18~22세이어서 액션, 오락, SF 등의 대형 스타 영화가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중국은 상황이 좀 다르다. 중국의 영화 관객은 주로 화이트칼라 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버는 26~35세가 주를 이룬다. 물론 조금씩 관객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중국의 관객 연령대의 선호도와 감각에 맞는 작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진춘치앙 사장은 한국의 선진성과 유행을 느낄 수 있는 현대적이고 도시적 감각의 작품이 중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최근 한국 유학생이 많이 모여 사는 베이징 우다오커우(五道口)에 한국 기업이 최신식 극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70~80년대 지어져 낙후된 중국의 극장 현실과 중국 정부가 영화산업진흥을 위해 극장 건설에도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하고 있는 정책의 변화를 가만하면 충분히 사업적 전망이 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우리 어깨 너머에서 조금씩 문을 여는 중국의 거대한 영화시장이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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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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