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난장 한번 옹골지게 펼쳐보세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81]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두돌을 자축하며

등록 2004.12.10 16:39수정 2004.12.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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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삼합. 홍어, 묵은김치, 돼지고기 순서로 싸서 한입 오물오물하면 체증이 사르르.
홍어삼합. 홍어, 묵은김치, 돼지고기 순서로 싸서 한입 오물오물하면 체증이 사르르.김규환
홍어는 먹어 본 사람만 그 맛을 안다. 짜릿하다. 톡 쏜다. 푸세식 화장실 맛이다. 찰떡 인절미 씹는 기분이다. 박하나 멍게 맛도 난다. 고향의 맛이다. 전라도 맛이 다 들어 있다. 여름에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삭힐수록 더 진하다. 애간장을 태운다.


도톰하게 썰어야 제 맛이다. 기가 막히게 목구멍을 일순간 닫았다가 확 정신이 들게 열어 준다. 며칠 먹지 않으면 아른거려서 함께 먹을 동무를 찾는다. 홍어 한점에 잘 발효된 포도주, 소곡주, 막걸리 한잔이면 기분 째지게 좋아진다.

홍어 맛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하기 무척이나 어렵다. 그만큼 오묘하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생각이 난단다.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한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먹는 홍어는 거시기한 맛이다. 찡한 눈물도 흘려 주고 땀마저 닦아 내게 한다.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콧물 질질 흘리는 이 놈이 뭐길래 이다지도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단 말인가.

2002년 12월 6일 첫모임을 가진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2002년 12월 6일 첫모임을 가진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김규환
회, 무침, 전도 좋고 튀김도 좋다. 홍탁삼합(洪濁三合) 하나면 술마저 취하지 않는다. 꼬리도 좋고 만만한 그것마저 씹을 만하다. 간은 사르르 녹는다. 물컹거리다 씹을수록 오도독 오도독거리는 홍어 코 한점 먹으면 한마리 다 먹은 거다.

코를 열고 혓바닥 입천장 볼딱지를 벗기고 목구멍을 쓸어 내리고 먹은 음식 잘게 부숴 내장을 타고 내려가 쭉쭉 훑어내는 데다가 아락실 소용 없으니 돈 절약하고 뼈째 씹으면 뼈로 가서 물렁뼈 보충하고 변비 있는 해강이와 아내가 먹으면 피부가 더 고와질 터. 이이구야, 온 가족이 홍어 없인 이제 못 산다.

담날 아침 홍어 내장 넣고 보리로 앳국을 끓일까 보다. 파래보다 가는 매생이 넣어 한그릇 먹으면 속이 확 풀리지. 숨이 막혀도 좋다. 혓바닥이 달아나도 좋다. 이 환장할 맛에 빠져 사는 사람, 방방곡곡 날로 늘어간다. 어중이 떠중이 열세명 모였다더니 얼추 두돌 만에 3300명이 넘는구나.


2003년 12월 19일 첫돌 잔치. 올해는 고려대학교 자연계생활관 학생식당에서 12. 11(토) 오후 4시에 연다.
2003년 12월 19일 첫돌 잔치. 올해는 고려대학교 자연계생활관 학생식당에서 12. 11(토) 오후 4시에 연다.김규환
2002년 대선으로 뜨거웠던 때 “홍어탕 톡 쏘는 맛에 흠뻑 빠졌다” 기사 하나로 홍어가 다시 내게로 왔다. 나에게 새로운 일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12월 4일 썼던 그 글을 보고 독자들은 선거에 잠시 머리를 식힐 참이었는지 2만3천회나 조회했고 90개가 넘는 덧글을 달았다.

사람들은 환장했다. 다른 것 먹자면 두번 만나기 힘들지만 오늘 보고 내일 또 보자 해도 마다 않고 모였다. 적게는 십수명에서 이십, 삼십을 넘더니 5, 60명이 함께 홍어를 먹다가 대사 치른 마냥 80명, 100명이 한군데 자리를 깐다.


아이야, 멍석 깔아라. 자네는 홍어 썰고 이녁은 돼지고기 삶게나. 나는 꼬막 살짝 데쳐 올리고 동무가 가져온 잡채 하나 올리면 잔치판이 따로 없다. 묵은 김치도 대령하렸다. 물 좋은 백아산 막걸리 몇 말 받아서 축이고 걸러 내고 배불리 먹으면 세상 얻은 기분이다. 어렵고 질긴 세상 하루쯤 잊기 딱 좋다.

흑산 홍어 간. 통상 애라고 한다.
흑산 홍어 간. 통상 애라고 한다.김규환
만만한 홍어 거시기. MBC 라디오에 출연했다가 MC가 네차례나 물어보는 통에 "아 예 홍어 좆말입니까?" 했더니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꽤 걸려온 적이 있었다.
만만한 홍어 거시기. MBC 라디오에 출연했다가 MC가 네차례나 물어보는 통에 "아 예 홍어 좆말입니까?" 했더니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꽤 걸려온 적이 있었다.김규환
누군 또 홍어를 들먹인다고 한다. 홍어 맛 진미, 진수를 보려거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누구나 따라다니면 속을 일 없이 질 좋은 홍어 맘껏 먹을 수 있다. 돈이 걱정이거든 서너명 꼬드기면 1, 2만원 혹은 2, 3만원으로도 흑산 홍어 맛보기 어렵지 않다.

정기 모임에서 한번 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나도 아쉬워 일주일이 멀다하고 신당동에서, 대림동에서, 응암동에서, 신사동에서, 사당동에서, 강남에서 먹다가 수원, 인천, 안양으로 원정을 나서매 계룡산을 찍고 국도 1번을 따라 광주로 목포 유달산에 가서 즐긴다. 취기에 흑산도로 가자면 “엇야 좋다” 맞장구치는 사람 부지기수니 친구 잘 둔 덕에 홍도까지 가부렀다.

식객(食客) 넘쳐나니 식솔(食率) 거느리고 이곳 저곳 기웃기웃 목이 길어지겠다. 홍어 한점 입에 넣고 볼일 보고 와도 몇 점 줄지 않았으니 안심 또 안심이다. 몇 가지 차리지 않아도 상다리 휘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이 없으니 여유만점이다. 콸콸 따르는 막걸리 소리 시원하고 질펀하고 후련한 이야기에 박장대소 흥겨웁다.

홍어 내장을 드러내고 부위별로 잘라 그냥 먹기도 하고 삭혀서 먹는다.
홍어 내장을 드러내고 부위별로 잘라 그냥 먹기도 하고 삭혀서 먹는다.김규환
흑산 홍어, 국산 홍어, 중국산, 칠레산, 미국산, 우루과이산, 아르헨티나산, 캐나다산, 호주산 모아 놓고 가오리 한마리 차리니 요놈들 서로 지네들이 대장이라 우긴다. 칼 꽁댕이로 잔말 말라며 톡 한번 치면 끽소리도 못한다.

“꼬리에 가시가 두줄입네 세줄입네 야단법석. 요것이 만만한 홍어 좆이여? 참말로 크구만. 근디 두개네? 뭐여, 홍어코는 누가 가져갔어? 싱싱한 간 좀 빼 주세요. 아따, 흑산 홍어 묵다가 다른 건 못 먹겄구만…. 때깔이 죽이네요. 막걸리 한잔 주세요.” 한마디 두마디 다 엿들을 수 없어 아쉽네. 질질 흐르는 점액을 헝겊으로 닦으며 칼질하는 홍어 장시 손놀림에 사람들 눈이 쏠려 있다.

뚝딱 온 세상 홍어 발라내고 도톰하고 예쁘게 잘도 썬다. 사람들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데 어찌 그냥 둘손가. 한점씩만 먹어 보라고 해도 두점 먹겠다니 말려 봐야 하릴없다. 술 한잔씩 부딪히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두돌 잔치를 위한 음식 장만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흑산 홍어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먹는데 싱싱한 것을 먹어도 비리지 않고 찰떡 씹는 맛이다.
흑산 홍어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먹는데 싱싱한 것을 먹어도 비리지 않고 찰떡 씹는 맛이다.김규환
“자, 지금부터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홍좋사모 두돌 잔치를 우뢰와 번개를 총 동원하여 기똥차게 힘찬 박수로 시작하겠습니다.”
“야~”

경향각지에서 올라와 100여명이 앉아 있다. 떡을 썰고 청주를 올려 한해 잘 살아왔음을 자축하며 건배! 왕성한 활동을 한 사람들에겐 상장을 준다. 지역별로 인사를 하고 끼리끼리 모여 지난 2년을 추억하며 기분 좋았던 나날과 부대끼며 살았던 한때 인연을 안주 삼아 부어라 마셔라 몇 순배 돌고 돌아도 홍어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부산서 온 혜림이 엄마는 흑산 홍어로 두 그릇을 비웠다. 대구 사람 홍탁삼합은 아직도 홍어 맛을 모르겠다며 아까운 막걸리만 축낸다. KTX 타고 온 값 뽑고도 남으리라. 머리 희끗한 분과 20대 아가씨가 함께 주거니 받거니 서로 먹여 주니 행사장 분위기 나무랄 데 없다.

흑산도 경매 현장에서 찍은 홍어 무더기. 요즘 육지 경기가 좋지 않아서 값이 대폭 내렸다.
흑산도 경매 현장에서 찍은 홍어 무더기. 요즘 육지 경기가 좋지 않아서 값이 대폭 내렸다.김규환
홍어는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 삭힌 내장에 더 많다고 한다.
홍어는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 삭힌 내장에 더 많다고 한다.김규환
서둘러 가자스라. 야무지게 밤 8시에 끝내고 집에 도착하였더니 집에서 기다리던 사람 “어, 당신 오늘 홍어모임 가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취소됐나요? 왜 이리 일찍 오셨데요?” “아녀, 내년에 또 가려면 오늘은 일찍 끝내고 오는 게 좋지 않겠어요. 실컷 먹고 왔으면 됐지 꼭 취할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도 같이 갈걸 그랬네.”

밖에서 술 먹고 칭찬 받기는 퍽이나 오랜만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나는 내일 하루를 즐거이 보낼 꿈을 꾸고 있다. 홍어, 진짜 홍어 같이 드실 분, 홍어 난장 한번 옹골지게 펼쳐 보세. 이렇게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음식 문화사를 다시 쓰고 있다.

한해가 가고 있다. 저 흑산도에서 홍도로 붉게 떨어지는 해를 보며 올 한해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한해가 가고 있다. 저 흑산도에서 홍도로 붉게 떨어지는 해를 보며 올 한해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해야겠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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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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