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맛, 젓갈 사러오세요

작은 포구 영광 염산의 ‘누운 섬’

등록 2004.12.13 12:09수정 2004.12.1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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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꼬숩다. 냄새 좋구만.'


허름한 젓갈 집으로 들어서던 할머니가 내뱉은 말이다. 고린내가 나는 냄새가 구수하다니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적어도 내가 바닷가를 쏘다니기 전에는.

근데 정말 냄새가 좋다. 밥이라도 한 공기 있으면, 금방 담근 김장 김치 한 폭 옆에 두고, 살이 통통한 멸치젓 얹어 한번 먹고, 김치 걸쳐 한번 먹고, 좀 짜다 싶으면 굴 한 수저 떠 넣으면 그만이다.

영광군 염산면 설도(雪島).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일제강점기까지도 이곳은 섬으로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 설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34년으로 마치 '누워 있는 섬' 같다 하여 '와도'(臥島)라 했는데 일제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누운 섬을 눈섬[雪島]으로 바꿔 설도로 잘못 표기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마을의 전체 가구는 80호 정도며 이 중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는 어민이 25호, 젓갈 집을 운영하는 어민이 10호 정도다.


a 설도포구와 팔랑개비배

설도포구와 팔랑개비배 ⓒ 김준

칠산바다의 새우잡이

이곳에 새우어장이 형성된 것은 25년 전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낙월도에서 주로 새우를 잡았으며 설도 인근 바다에서 새우잡이를 할 생각은 못했다. 이곳 새우잡이는 인천사람이 닻 배와 팔랑개비 배를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새우잡이의 중심지는 임자도와 낙월도 인근 바다였다. 칠산바다의 중심지인 이들 해역은 조기 회유로지만 1960년대 후반 접어들면서 조기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멍텅구리 배를 이용한 새우잡이가 대신했다.

스스로 동력을 갖지 못하고 다른 동력선이 이동해 주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어서 이름 붙은 '멍텅구리 배'의 본래 이름은 해선망어선(醢船網漁船)이다. 태풍으로 멍텅구리 배에 탔던 많은 어부들이 죽고,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문제가 제기되면서 정부는 1998년 멍텅구리 배를 값을 치러주고 폐기토록 했다.

팔랑개비 배가 소개되기 전까지 설도의 어민들은 낙월도에서 새우젓을 가져다 파는 일만 했지 직접 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설도에 팔랑개비 배가 들어온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팔랑개비 배(돼지망 배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인천에서는 '대저망'으로 부른다. 이 배는 인천에서 개발되어 들어왔는데 왕소산(서울 거주)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들어왔으며 이보다 약간 앞서 닻 배가 인천에서 들어왔다.

요즘엔 젓새우는 닻자망이나 팔랑개비 그물을 이용해서 잡는다. 닻자망은 배구 네트와 같은 그물을 바다에 넣어 두었다가 밀물과 썰물에 새우가 밀려 그물에 걸렸을 때 잡는 방법으로 '새우를 턴다'라고 말한다.

반면에 팔랑개비 그물은 자루형 그물을 설치해 두었다가 그물을 건져서 새우를 잡는다. 따라서 닻자망의 경우에는 하루에 4번까지 그물을 털 수 있지만 팔랑개비 그물은 통째로 건져서 새우를 담아오기 때문에 한 번 건지면 새로운 그물을 다시 집어넣는다.

닻자망은 직접 새우를 털어야 하기 때문에 몇 사람 일할 사람이 필요하지만 팔랑개비 그물은 배에 설치된 기계를 이용해서 그물을 들어올리기 때문에 부부만으로도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런 탓에 설도의 새우잡이 배들은 대부분 팔랑개비 그물을 이용한다. 새우잡이 배 20여척 중에서 18척이 팔랑개비 배며 나머지 2척이 닻 배다.

새우잡이가 끝나면 여름철에는 보리새우(일명 '오도리')를 잡고, 추석에 서대, 봄철에 꽃게를 잡는다. 선주들이 직접 고기를 잡는데 이들은 일 년에 7-8천만원, 젓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일 년에 1억원 가량 소득을 올리고 있다.

a 누운 섬의 젓갈집들

누운 섬의 젓갈집들 ⓒ 김준

오젓이나 육젓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설도에서 맛 볼 수 있는 젓은 조개젓·엽삭젓(송어젓)·황석어젓·갯물토화젓·오젓·육젓·잡젓·북새우젓·멸치젓·짜랭이젓(병치새끼)·갈치젓·갈치속젓·줄무늬젓·명란젓·창란젓·꼴뚜기젓·오징어젓·숭어젓·까나리액젓으로 헤아리기가 숨이 차다.

이중 최고로 쳐주는 젓은 오젓과 육젓으로 한 도람에 몇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새우를 이용한 젓을 백하(白蝦)젓이라고 하는데 젓을 담아 놓으면 새우색깔이 하얗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전남과 광주는 물론 외지에서도 젓갈을 사러 오는 사람이 많다. 특히 추석 명절 때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영광·함평·광주·무안 지역에서 고향을 찾고 돌아가는 길에 김장용이나 일 년 먹을 용도로 젓갈을 사가지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웃 주민들의 젓갈까지 주문을 받아 사가지고 간다.

따라서 설도의 대표적인 소득원은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3, 4월에 잡는 봄젓, 5월에 잡는 오젓, 6월에 잡는 육젓, 가을에 잡는 추젓, 중하젓(봄 중하, 가을중하)으로 구분하는데 오젓과 육젓이 가장 좋은 젓이다.

5월과 6월에 잡히는 새우가 육질과 색깔이 가장 좋다. 좋은 젓갈을 만들 때 새우나 생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금이다. 소금 맛을 결정하는 것은 갯벌이다. 좋은 갯벌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바람과 햇볕이 만나야 좋은 소금이 생긴다. 그때가 바로 5월과 6월이며 그 젓이 바로 오젓, 육젓이다.

오젓과 육젓은 너무 비싸 옛날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좋은 소금과 물 좋은 생선과 새우가 버무려져 깊은 굴속에서 잘 숙성이 된 젓갈이 염산면 설도항의 젓갈이다.

a 엽삭젓-황석어젓-갈치속젓 갈치젓-까니리젓-밴댕어젓 봄새하젓-오젓-육젓 짜랭이젓-황석어젓

엽삭젓-황석어젓-갈치속젓
갈치젓-까니리젓-밴댕어젓
봄새하젓-오젓-육젓
짜랭이젓-황석어젓
ⓒ 김준

설도항이 가장 붐비는 철은 역시 김장철이다. 보통 11월 중순부터 말까지 많은 사람들이 젓갈을 찾는데 금년에는 날씨가 따뜻해서 1주일 늦어졌다. 이때 젓갈이 하루에 2-3백만 원어치 팔리며, 간혹 천여만 원의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한다.

언제나 이렇게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철에는 손님을 한 사람도 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날도 숱하다고 한다. 설도의 젓갈은 모두 직접 담는다. 젓갈집을 운영하는 이복희(46)씨는 젓갈은 보리베기 전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물 갔어요. 인자 이삭줍고 있어요. 나락은 벼불고, 한참 나락빌 때는 여가 사람이 꽉꽉 찼어요. 올해는 11월 10일부터 말까지 일년 중 제일 바쁜 때. 작년에는 10월 20일 넘어서 11월 말까지. 올해는 따뜻하니까. 한참 나락 빌 때는 며칠은 천만원 들어오는 날도 있어요. 없다고 할 수 없제. 큰 덩어리로 나가는 날이 그렇고. 보통 2-3백은 한다고 봐야제. 그렇게 할 때는 보름 밖에 안 돼요. 이삭 주을 때는 돈 백하고, 여름에는 십원나치도 못팔고 그냥 넘어갈 때도 있고. 그때는 사서 쟁여야제(저장)."

부산에서 온 아줌마는 언제나 새우젓을 사러 일부러 '누운 섬'을 찾는다고 한다. 김장용 젓갈은 물론이고 먹을 젓갈까지 사고, 소금도 한 가마니 샀다. 몇 번이고 소금이 우리 천일염이냐고 확인했다. 부산에도 젓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친척집에 왔다 여기 젓갈을 먹어본 후 한 번씩은 꼭 들려서 일 년 먹을 젓갈을 사간다고 한다. 서울·마산·대전 등 지역에서 전화로 주문을 해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a 부산 아지매도 누운섬 젓갈집의 고객이다(왼쪽 두번째)

부산 아지매도 누운섬 젓갈집의 고객이다(왼쪽 두번째) ⓒ 김준

젓갈소비는 쌀소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식생활의 변화 탓으로 젓갈 소비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설도 주민들은 젓갈과 새우를 중심으로 포구의 상권을 살리기 위해 어민회와 젓갈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수산물과 젓갈축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평소에도 포구에 가면 새우와 생선을 놓고 흥정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직접 살 수도 있고, 선주들이 운영하는 선창가 포장가게에서 싱싱한 생선과 갯것들을 놓고 소주잔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조기 대신 새우를 잡아먹고, 그 다음엔 뭘 먹지?

법성포가 '영광굴비'로 유명하다면 염산은 '젓갈'이다. 낙월도·소이도·안마도 일대의 칠산바다에서 잡은 새우가 모두 염산으로 모였다. 작은 포구인데도 염산의 시장성은 전남북을 넘어선다.

염산이 이처럼 젓갈로 유명한 이유는 인근에 칠산어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광 굴비에 밀리고, 소래포구나 곰소의 명성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염산은 일제강점기부터 소금과 젓갈로 명성을 날린 곳이다.

젓새우 어장은 강화, 옹진 장봉도, 용유도(이상 경기)와 천수만(충남), 곰소, 위도 부근의 칠산어장(이상 전북), 전장포, 안마도, 비치와 허사도 외해, 칠발도 어장, 도초와 우이도 근해, 진도 조도 해역(이상 전남)에 형성되었다.

이 중 경기지역의 어장은 영종도 신국제공항 건설로, 충남은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축소되거나 소멸되고 있다. 전남지역의 젓새우 어장은 연안자원이 고갈되어 깊은 바다로 이동하고 있으며, 진도 조도의 서거차도 부근에 새로운 어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a 조기말리기

조기말리기 ⓒ 김준


a 팔랑개비 그물로 잡은 새우를 추리는 작업

팔랑개비 그물로 잡은 새우를 추리는 작업 ⓒ 김준


a 생새우(물걸이)는 포구에서 바로 거래된다

생새우(물걸이)는 포구에서 바로 거래된다 ⓒ 김준

이들 지역들은 1960년대까지 조기파시가 형성되던 곳들이다. 새우는 멸치와 함께 조기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들이다. 이들 지역은 수심이 낮고 사니질 갯벌이 발달해 산란을 하기 위해 봄철이면 많은 회유성 어류들이 찾는다. 조기가 사라지면서 어민들은 이제 조기가 먹던 새우를 잡아 살아가고 있다.

금년에 칠산바다에 다시 조기가 나타나서 조기잡이 어민들이 모처럼 얼굴이 활짝 피었다. 어민들은 지난 여름 태풍도 비켜가고 새우 등 먹잇감이 풍부해 조기들이 충분히 자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우가 성장하는 곳은 풀등이라는 바다 속 모래언덕이다. 어민들은 이를 풀치라고 부르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재원 확보를 위해 한때 해사채취를 허락해 새우들이 서식하는 환경이 파괴되어 어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사채취를 금지하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지만 인천 앞바다, 통영 인근 섬에서는 여전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조기가 그랬던 것처럼 새우의 서식환경이 사라지면 더 이상 젓새우를 볼 수 없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새우를 먹는 어류들을 더 이상 이곳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겨울을 난 젓새우가 진짜배기다

젓새우(白蝦)는 참새우와 대때기(중국젓새우)로 구분하며, 젓새우보다 작은 곤쟁이를 자하(紫蝦)라고 한다. 이들 새우들은 모두 서남해 연안에서 잡히는 새우로, 참새우는 백색투명하고 꼬리에 붉은 반점이 있고 껍질이 얇고 육질이 단단하다. 반면에 대때기는 누런 빛에 껍질이 두텁고 육질이 약해 젓을 담가 놓으며 육질이 젓국에 녹아버리고 껍질만 남는다.

젓새우는 산란시기에 따라 겨울을 난 새우(월동세대)와 여름을 난 새우(여름세대)로 구분한다. 젓새우는 한번 산란한 후 1개월정도 지나서 죽게 되는데 이들은 같은 종이지만 다른 생활사를 가지고 있다. 겨울을 나는 세대는 7월 하순에서 10월 초순 무렵에 산란되어 젓새우로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성장을 중지해 보내고 4월부터 성장을 시작해 음력 5월부터 6월경 산란하고 죽는다. 반면에 여름을 나는 새우는 월동한 새우가 5월 상순부터 7월 상순에 산란한 젓새우로 여름철에 수온이 높아 7월 하순부터 10월 초순경에 산란하고 죽는다. 따라서 수명이 겨우 2개월 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들의 사랑을 받는 오젓과 육젓은 겨울을 난 후 음력 5월이나 6월 산란 직전에 알이 꽉찬 젓새우로 담근 젓을 말한다. 젓새우가 성장하는 시기는 수운이 19℃이상이며 산란기의 수온은 23-27℃이다.(이 글은 박광순, 김승의 '우리나라 젓새우잡이 현황과 과제'라는 글을 참고로 정리한 것입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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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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