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과 인간의 공존, 횃불 낙지

[르포] 바다와 어민을 지키는 전통어업

등록 2004.12.21 15:08수정 2005.07.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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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부지런히 달려 도착한 곳은 해남 북평면 안평리 갯벌. 3년 전 봄에 미황사 '산사음악회' 참석하러 왔다가 잠깐 들렀다 정이 들었던 곳이다.


특히 바닷가에 작은 민박집을 짓고 고기를 잡는 문종식(60), 고선애(58)씨 부부를 만나는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잠도 자고, 아침에 일어나 고기잡이배를 탈 수 있었으니 얼마나 큰 인연인가. 그때 그렇게 만났다.

점심을 먹고 광주에서 출발하면서 문씨 부부에게 계속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질 않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부부의 친절함과 정감 있는 갯벌을 소개한 탓에 내심 불안했다. 그 사이에 문이라도 닫았다면 체면이 말이 아닌데. 나주를 지나 월출산을 지날 때 겨우 통화가 되었다. 지금 소안도 인근 해역에서 장어낚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a 횃불을 들고 낙지를 찾아 헤맸던 안평리 갯벌

횃불을 들고 낙지를 찾아 헤맸던 안평리 갯벌 ⓒ 김준


횃불 들고 갯벌을 헤매다

모처럼 방문에 문씨 부부는 직접 잡은 장어를 손질해 석쇠에 구워 내놓았고, 인근 가게에서 소주와 맥주가 배달되었고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포구에서 굴을 까던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해 생굴도 가져왔다. 몇 순배 술잔이 돌아가고, 얼마쯤 지났을까 바닷가에 불빛이 반짝였다. 물이 빠지기 시작한 갯벌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뭔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따뜻한 겨울날씨라고 하지만 바닷가의 밤바람이 결코 녹녹치 않았다. 호기심에 문씨의 허리까지 올라온 장화를 싣고 나섰다. 횃불 대신 배터리를 들고 낙지를 잡는 중이라고 한다. 무안에서는 횃불을 들고 잡은 낙지라고 해서 '홰낙지'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횃불낙지'라고 한다.


횃불낙지를 보기 위해 안평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을 따라나섰다. 그 동안 남편과 함께 낙지 주낙을 해왔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남편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기가 어려워지면서 횃불을 들고나선 것이라고 한다. 낙지주낙은 부부가 해야 하지만 횃불낙지는 혼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a 낙지를 잡는 안평리 어민

낙지를 잡는 안평리 어민 ⓒ 김준

a 바람에 물결이 찰랑대는 바람에 1시간 동안 2마리 밖에 잡지 못했다

바람에 물결이 찰랑대는 바람에 1시간 동안 2마리 밖에 잡지 못했다 ⓒ 김준

사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어촌에서 여성들이 배를 타는 것은 금기해 왔다. 그래서 대부분 통발이나 주낙을 할 경우 남자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작업을 해왔다. 이럴 경우 경비를 제외하고 남은 수익을 둘이서 나누어야 했다.


그러다 둘이 나누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부부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어촌인구의 감소 탓도 있지만 늘어나는 수입 앞에 금기는 서서히 약화되었던 것이다. 잡는 양은 조금 줄지 모르지만 나누지 않기 때문에 소득이 훨씬 높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낙지주낙을 할 경우 보통 200-300마리의 낙지를 잡지만 횃불낙지를 하는 경우 많이 잡아야 50마리 정도라고 한다. 낙지를 담을 플라스틱 통을 핸드백을 걸듯 팔에 걸고 뒤에는 배터리가 배낭에 담겨 있다. 3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는 배터리는 매번 충전을 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일 년을 사용할 수 있다. 요즘 아주 작은 꽃낙지는 한 마리에 1500원, 작은 것은 다섯 마리에 만원, 큰 것은 세 마리에 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횃불낙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때보다 바람이다. 아무리 물때가 좋아도 바람이 불어서 바닷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하면 그날 횃불 낙지잡이는 영 글렀다. 낙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때로 본다면 서물(세 물)을 전후해서 낙지가 가장 많이 나온다. 물이 빠지기 시작해 불을 비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되어야 횃불낙지가 가능하다.

불쑥 따라 나선 것 때문인지 낙지가 영 보이지 않는다. 1시간 이상을 헤맸지만 겨우 2마리만 잡았다. 내심 미안하고 더 이상 따라 다닐 수 없었다. 선착장 가까운 갯벌에 이르렀을 때 쑥스럽게 인사를 하고 갯벌에서 나왔다. 낙지를 많이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면서.

a 장어주낙 잇감을 준비하는 문씨부부

장어주낙 잇감을 준비하는 문씨부부 ⓒ 김준

a 잇감끼우기

잇감끼우기 ⓒ 김준

a 잇감이 끼워진 장어주낙

잇감이 끼워진 장어주낙 ⓒ 김준


장어도 오징어 꼬리는 안 먹는다

12월 초에 시작해서 재미를 본 문씨 부부에게 이번이 세 번째 나서는 장어주낙이다. 고씨는 오늘도 새벽 6시 무렵 불쑥 찾아온 우리에게 이른 아침을 주고 나갈 채비를 했다. 집에서 쉬다가 알아서 가라고 한다.

같이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는 문씨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맥주컵에 물을 한 잔 가득 채워 벌컥 마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물이 아니라 소주란다. 아침에 한잔하고 나서도 찬 바닷바람이면 금방 술기운이 확 달아난다는 것이다.

부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장어주낙 준비로 분주하다. 오징어를 썰어서 낚시 바늘에 끼워 바구니에 잘 걸어 놓고, 들물에 한 번 더 끼울 먹잇감도 준비를 했다. 장어주낙은 낚시가 달린 1미터 남짓의 아랫줄 25개가 달린 80미터 가량의 몸줄(위짱이라 표현함)을 한 틀을 이룬다. 한 바구니에는 이런 장어주낙이 4틀이 들어 있다. 문씨 부부는 다섯 바구니를 준비하기 때문에 20틀의 장어주낙을 준비해간다.

아침 7시에 완도 소안도나 넙도 해역에 나가서 12시 무렵까지 낚시를 바다에 넣고 10여분 기다린 후 먼저 넣은 것부터 건져 올린다. 많이 잡힐 때는 한 틀에 일곱 마리씩 잡혀 올라오기도 하지만 맨 날 그렇지는 않다. 이후 물이 들기 전에 준비해간 먹잇감을 다시 바늘에 끼워서 들물에 드는 장어를 낚는다. 물때가 좋아서 하루에 두 번 하는 날도 있지만 하루 한 차례 낚시로 족할 때도 있다.

이렇게 잡은 장어는 요즘 1kg에 1만원에 상인에게 넘기고 있다. 장어의 먹잇감은 오징어나 전어를 사용하는데 오징어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오징어를 길이 2cm, 폭 1cm 정도로 잘라서 낚시에 끼우는데 오징어 꼬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장어도 꼬리를 미끼로 사용하면 입질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나 물고기가 입맛은 비슷한 모양이다.

a 안평리 포구에서 굴을 까고 있는 할머니

안평리 포구에서 굴을 까고 있는 할머니 ⓒ 김준


일 년 열두 달 뭣을 하든지 하제

이곳 어민들은 일년 내내 쉬는 날이 없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주낙을 이용해 장어를 잡고, 배를 갖지 않는 사람들은 굴을 깐다. 3월 말이면 흘림그물(뜬망)을 이용해 숭어를 잡기 시작해서 숭어 눈이 밝아져 그물을 피해 다닐 6-7월이 되면 보리새우(오도리)를 잡는다. 이 기간에 통발과 주낙을 이용해 낙지를 잡기도 한다.

보리새우 잡이가 끝나고 무더위가 가시면 가을전어를 잡기 시작한다. 가을 전어는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할 정도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가을생선이다. 그리고 낮보다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가을철 깊은 밤에 주낙을 이용해 낙지를 많이 잡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장어잡이로 돌아간다.

10일 전에 한 이틀 나가고, 인자 처음 어제 갔다 온 것이여. 3월말이면 끝나제. 장어잡이 끝나고 숭어잡이. 숭어하고 나서 오도리를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낚지통발을 하고, 고곳 끝 나고 오도리하고, 낙지 주낙한 사람은 낙지주낙도 하고, 오도리 끝나고는 그때부터는 전어잽이, 전어 끝나고는 장어주낙, 자기만 부지런 하면 일 년 열두 달 뭣을 하든지 하제. 우리는 둘 다 나이도 먹고 못하제. 젊은 사람들 하는 것처럼.

a 가래로 낙지를 잡는 모습(무안 구로)

가래로 낙지를 잡는 모습(무안 구로) ⓒ 김준

a 낙지주낙을 준비하는 어민(무안 달머리)

낙지주낙을 준비하는 어민(무안 달머리) ⓒ 김준

a 낙지를 잡는 도구(낙지가래와 조락)

낙지를 잡는 도구(낙지가래와 조락) ⓒ 김준


바다와 어민을 지키는 전통어업

낙지잡이는 밤과 낮 어느 때에 낙지를 잡느냐에 따라 잡는 방법과 도구가 달라진다. 낮에 잡는 대표적인 방법은 통발낙지, 손낙지와 가래낙지이지만 밤에 잡는 대표적인 방법은 낙지주낙과 횃불낙지이다.

횃불낙지와 손낙지 그리고 가래낙지는 혼자서 작업이 가능하지만, 통발이나 주낙을 이용해서 낙지를 잡는 경우에는 2명이 해야 일이 수월하다. 가래낙지는 낙지가래를 이용해서 낙지구멍을 파서 잡지만, 손낙지는 맨손으로 낙지구멍에 집어넣어 직접 낙지를 잡아낸다.

전통어업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맨손과 낚시를 이용한 것이었고, 그물을 사용한 것이었다. 가장 원시적이지만 어민과 바다를 오래도록 지키는 대표적인 어업방식도 맨손과 낚시를 이용하는 것이다.

횃불을 들고 나가서 낙지와 소라 등을 잡는 것을 '홰두질'이라고 한다. '홰두질'만큼 갯벌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어업방식은 없다. 전통 어업방식이 그래서 소중하다. 횃불을 들고 눈에 보이는 놈을 골라 잡아내는 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체포행위이지만 인간과 낙지가 함께 살 수 있는 지혜로운 고기잡이 방식이다.

낙지가 그나마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낙지를 대량으로 잡는 어업방식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낙지의 먹잇감인 칠게와 소라 등이 갯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칠게와 소라 등은 다른 갯벌 생물에 비해서 풍부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상품성으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 새만금 해역에서 보듯이 칠게를 잡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면 이것도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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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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