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13회(3부 : 라일락 꽃향기)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4.12.25 15:36수정 2004.12.25 15:48
0
원고료로 응원
김형태
대학에서 우연치 않게 그녀를 다시 보게 된 나. 편지공세와 함께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만나자고 했지만, 보기 좋게 바람을 맞았지.

그녀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이후 나는 며칠 앓았다. 꼬박 3일을 아파서 누워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각, 결석을 한 번도 안 했다. 12년 동안 무결석인 셈이다. 이렇게 내가 12년 동안 개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성실함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의 교육관 덕분이었다.


아파서 죽을 지경이라도 나의 경우 학교는 가야 했다. 초등학교 때 한 번은 무릎에 종기가 크게 나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나를 학교로 보냈다. 죽더라도 학교에 가서 죽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는 몸에 배였는지, 아니면 세뇌가 되었는지, 고등학교에 와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도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3년 개근을 하였다. 이런 습성은 대학에 와서도 이어졌다. 지각이나 수업을 빼먹는 일을 예사로 여기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나의 경우에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강의도 늘 맨 앞 중앙에서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조금 늦게 들어가도 중앙 맨 앞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그런 내가 3일 동안 결석을 한 것이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천근만근이었다. 밥은 물론 물 한 모금조차 넘기기 어려웠다.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친구 노진이 뭐라고 시골집에 연락을 했는지 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모시고 급하게 올라오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몸살이 난 줄 알고 쉬엄쉬엄하라며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아버지께서는 내 곁을 오래도록 지키시다가 피곤하셨는지 이내 코를 골며 주무셨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첫차로 내려가셨다. 방문을 열고 나가시는 아버지의 등이 유난히 작게 보였다. 예전에는 그렇게 크게 보이던 등이…. 할머니의 극진한 간호 속에 내 몸은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흘째 되는 날, 별명이 메뚜기인 친구 한철이가 병문안 차 들렀다. 명노진, 조한철, 그리고 나는 고교시절 3인방으로 통했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는데도 비교적 우리는 잘 어울렸다.

고2 때 반장, 부반장을 나누어 하면서 우리는 친해진 것이다. 2학년 때 담임교사인 현인석 선생님은 자율성을 많이 강조하셨다. 그러면서 특이하게 부반장 하나를 더 뽑아 둘을 두었다. 그 때 급훈이 '적극적인 사고, 진취적인 행동, 야무진 일 처리'로 기억된다.


우리는 역할 분담을 해서 반을 이끌어갔다. 그것은 담임선생님께서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현선생님은 우리 반 56명을 8개 모둠으로 나누어 좌석, 청소, 방과 후 축구시합, 모둠일기 쓰는 것 등 거의 모든 것을 모둠별로 해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모둠별 조정을 우리 세 사람에게 일임했던 것이다.

우리 반은 확실히 단합된 힘으로 뭐든지 일등을 했다. 성적도, 환경미화도, 체육대회도, 장기자랑도 그 해는 모든 상을 우리 반이 휩쓸다시피 하였다. 노진과 내가 성적 향상이나 환경미화 등 비교적 정적인 일에 이바지한 반면, 한철은 체육대회나 장기자랑 등 동적인 일에서 단연 돋보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내가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 심사숙고 형에 속한다면, 노진은 걸어가며 생각하는 중간형이었고, 이에 비해 한철은 일단 저질로 놓고 보는 행동파였다. 또 내가 술, 담배를 전혀 못하는 반면 노진은 담배는 안 피워도 술은 좀 했고, 한철은 술도 잘 먹었고 담배도 골초였다.

우리는 고교 졸업 후 헤어지나 했는데, 다행히 내가 서울소재 대학을 포기하는 바람에 대학교도 함께 다니게 되었다. 다만 나는 국문학, 노진은 의학, 한철은 체육 등 전공이 서로 달라 고교 때처럼 자주 보지는 못했다.

한철은 노진에게서 내 얘기를 듣고도 바로 와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차, 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러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야 철민아, 내가 그 애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청순한 애가 아니더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좀 놀았다던데, 남자들도 많대, 뭐 지 금은 물리학과 놈팡이하고 열애 중이라나."

한철의 이러한 발언에 노진이 제지하며 말했다.
"야, 그만해. 너 어디서 뜬소문 듣고 와서 쓸데없이…,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왔냐? 너한테 얘기를 전한 내가 잘못이지."

"그게 왜 부채질이야. 애당초 그렇게 싹수가 노란 애니까 미련 갖지 말고 깨끗하게 잊어라, 뭐 그런 건데. 야, 철민아, 내가 네 대신 그녀를 찾아가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여 줄까? 그러면 네 속이 좀 시원하겠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가 왜 끼어들어. 야, 나가자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왜 그래? 내가 뭐 어쨌다고!"
"그만, 나가자니까."

노진의 손에 이끌리어 일어났던 한철이 다시 앉으며 말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철민아 내가 너 주려고, 아니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으니까, 솔직히 함께 마시려고 독한 술 한 병 사왔는데. 이 녀석 등쌀에 여기 다 이렇게 놓고 갈 테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툭 털어 넣고 깨끗하게 잊어 버려. 그 까짓 것. 어디 여자가 걔 하나뿐이냐, 세상천지 널리고 널린 게 여자다!"

"아 그 녀석, 사설도 길다. 빨리 나가기나 하자니까!"
할 말이 없어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그냥 듣고만 있었다. 아니 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아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솔직히 그녀에게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욕하는 말이 달게 느껴져야 정상일 텐데 이상하리만큼 쓰디쓰게 들렸다. 왜 그럴까?


목요일, 간신히 몸을 추슬러 학교에 나갔다. 그녀에게 전해주려 했던 선물도 꾸렸다. '기회를 봐서 이것을 전해 주면서 왜 지난 토요일 나오지 못했느냐고 물어보자, 아니 묻지 말고 그냥 이거나 전해주자. 물어서 무엇 하나. 나만 더 초라해지지. 그래 묻지 말자.'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2교시 영어 LAB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그녀가 결강을 다하다니.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단순한 궁금증인지 아니면 그녀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강의하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윙윙 귓전을 맴돌 뿐이었다.

그녀에 대한 소식을 같은 집에 하숙하고 있는 영희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여겨 그만 두었다. 다음은 심리학개론 시간, B반이 수업을 듣는 강의실로 한 번 직접 찾아가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오후 3시.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국문학개론 시간이었다. 시간표를 보니 B반은 국어학개론 시간이었다. 도무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205 강의실 뒷문을 살짝 열고 엿보니 그녀가 있었다. 분명히 그녀였다.

얼른 문을 닫고 다시 201 강의실로 돌아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205 강의실로 달려갔다. 그녀가 몇몇 여학생들과 함께 앞문을 통해 바쁘게 나가고 있었다. 멀찍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혼자가 되면 바짝 다가가 말을 건넬 계획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그녀는 혼자 있지를 않았다. 그녀는 좀 전에 우리가 수업을 받았던 201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누구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나와서는 벤치에 앉아 친구로 보이는 여학생과 한참을 얘기하고 있었다. 언뜻 보니 어깨가 처진 것이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우리 반 박영희가 합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일어서서 어디론가 같이 가고 있었다. 미행하듯 뒤따랐다. 혹시나 들킬까봐 조심하면서. 그녀는 영희와 그리고 모르는 여학생 하나와 함께 학생회관으로 들어섰다. 역시 뒤를 따랐다.

* 14회에서 계속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AD

AD

AD

인기기사

  1. 1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2. 2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3. 3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4. 4 미쉐린 셰프도 이겼는데... '급식대가'가 고통 호소한 이유 미쉐린 셰프도 이겼는데... '급식대가'가 고통 호소한 이유
  5. 5 한강 노벨상에 숟가락 얹는 보수, 그들에게 필요한 염치 한강 노벨상에 숟가락 얹는 보수, 그들에게 필요한 염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