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22회)

등록 2005.01.14 16:24수정 2005.01.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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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장과 채유정이 공안국에서 나왔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둘은 아직 버스가 다니지 않아 한동안 걸어갔다. 김 경장은 자신이 묶고 있는 서울 호텔로 가기 위해 서탑 거리로 향했다. 채유정의 집은 반대 방향이었지만 그녀는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아무 대꾸도 없이 김 경장과 함께 걸었다.

"댁은 집에 가지 않을 겁니까?"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어요."

"같이 가야할 곳이라뇨?"

그렇게 물었지만 채유정은 대답 없이 먼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서탑 거리를 통해 광장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늦여름이긴 하지만 새벽에는 한기를 느낄 만큼의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어두운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거나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광장 바닥으로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온통 젖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포개어 잠들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금이라도 쌀쌀한 기온을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기라도 하려는 듯 부둥켜안고 잠든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말이 섞여 있는 게 들려 왔다. 이상하게 생각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채유정이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 중 조선족들이 대부분이에요."

"조선족들이 왜 이른 새벽부터 여기 나와 있는 겁니까?"


"새벽이면 여기에 인력 시장이 섭니다. 일자리를 구해서 밤부터 여길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죠."

"왜 하필 우리 조선족들이 여기 나와 있는 것이죠?"

"한국으로 일자리를 구해 갔다가 불법 취입자로 쫓겨난 사람들이 여기로 온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김 경장은 초라하게 서있거나 누워 있는 조선족들을 바라보며 어떤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모국에서 버림 받은 이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같은 민족인데도 중국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취입자로 낙인 찍혀 돌아간 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질까?

그들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수많은 돈을 브로커들에게 쥐어 줬다고 한다. 그 많은 돈을 쥐어 주고도 쫓겨났으니 길거리에 나앉아 하루하루를 연명할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광장을 지나갈수록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주의 깊게 발자국을 떼어 놓지 않으면 잠들어 있는 사람을 그대로 밟아 버릴 정도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뿜어 대는 악취와 먼지 속에 묻어 있는 정체 불명의 고약한 냄새가 숨을 쉬기 곤란하게 만들 정도였다.

광장을 빠져 나오자 다시 큰 길이 나왔다. 큰길로 나오자 지나가는 차들이 늘어났고, 택시도 눈에 띄었다.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헤드라이트 불빛이 간신히 기둥이 되어 두꺼운 연막층을 뚫고 있었다. 채유정이 뛰어 가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와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채유정이 김 경장을 향해 외쳤다.

"어서 올라타세요."

중국 택시는 특이하게도 운전석과 손님이 타는 좌석 사이에 투명한 플라스틱 막이 쳐져 있었다. 그 막 사이로 돈을 주고 받는 구멍이 작게 뚫려 있는 게 보였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미국 택시를 보는 것 같았다.

김 경장이 채유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류허우성 교수가 안 박사님과 함께 갔던 곳을 알아내려고요."

"그 둘이 갔던 곳을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잠자코 절 따라와 보세요."

채유정은 도로에 나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는 기사와 한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뒤를 향해 외쳤다.

"어서 올라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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