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01회

등록 2005.01.19 07:53수정 2005.01.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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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이미 좌중의 인물들은 동의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어차피 저 오룡번을 얻기위해 불원천리 먼길을 쫒아왔다. 더구나 오룡번이 전설이 아닌 현실로 눈 앞에 있었다.자칫 잘못하면 피바람이 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이오. 그러한 의문은 당연하오. 허나..”


독고좌는 의외로 순순하게 긍정했다. 하지만 그의 다음 행동은 좌중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욱---!

오룡번이 그의 손에서 반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천고에 다시없을 기학(奇學)이 담겨있는 오룡번이 훼손되는 것이다.

그 순간 이장 정도 떨어진 탁자에서 한 인물이 기쾌하게 독고좌가 가지고 있는 오룡번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그의 신형은 마치 형체가 없는 그림자 같아서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워낙 거리도 가까웠지만 그의 움직임은 감탄할 만큼 빨랐다. 어느새 뻗어간 그의 손은 오룡번에 닿고 있었다.

슈---우우---!


허나 그 신형의 손끝에 오룡번이 닿는 순간 그는 갑작스럽게 경련을 일으켰다. 오룡번을 향해 쏘아가던 그의 동작을 정지되고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퍽----!


무언가 그에게 꽂히는 소리는 이미 그가 절명(絶命)한 다음에야 들렸다. 사람들은 한순간에 인간의 몸이 고슴도치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기습해 온 인물과 같이 앉자있던 세명의 인물들의 탁자에도 한자 길이의 비침(飛針) 같기도 하고 창(創) 같기도 한 꼬챙이들이 날아가 움직일 수조차 없이 만들어 버렸다.

탁자 위에 올려진 팔소매를 마치 바느질한 듯 피 한방울 나지 않게 탁자 위에 박아 버렸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한 순간에 분을 발라 놓은 듯 핏기없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만약 자신들의 목숨을 노렸다면 절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철혈대의 독문무기인 혈폭비(血爆飛)였다. 다섯자 정도 길이에 외형은 창(創)으로 보이나 그 끝은 세 개의 혈폭비라고 부르는 한자 길이의 소창(小創)이 정교하게 장착되어 보통 때는 일반적인 창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비상시 세자루의 혈폭비를 날릴 수 있는 가공할 무기였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패기는 좋으나 젊은 사람이 아깝군.”

두 눈을 부릅 뜬 채로 혈폭비에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인물을 보며 독고좌는 안타까운 듯 입을 열었다. 죽은 인물은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흑의 경장차림의 젊은이였다. 허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의 가슴에 새겨진 문양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불을 뜻하는 화(火)자를 새겨놓은 그 문양은 마치 불이 타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탁자에 앉아 있는 세 사람 역시 같았다. 다만 죽은 자의 옷에는 붉은 글씨인데 반해 탁자에 앉자있는 자들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화령문(火靈門)의 소화룡(小火龍)이라던 진남학(晋南鶴)이군. 세상 넓을 줄 모르고 설쳐대더니 여기서 개죽음했군.”

좌중 어디선가 나직한 중얼거림이 들렸다. 죽은 인물은 그 중얼거림과 같이 호남 상음현(湘陰懸)에 있는 화령문의 소문주인 소화룡 진남악이었다. 어려서부터 기재(奇才)로 알려지면서 화령문의 이름을 크게 떨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었다. 허나 나이가 젊은 탓에 천고기물인 오룡번이 찢어지자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었다 변을 당한 것이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건데 일시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겠소. 본 대주의 말을 다 듣고 나서는 모두 이해되실 것이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하룻밤 사이에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 중 호북의 동호(東湖)를 지배하던 적수채(賊水寨) 칠백여명을 몰살시켰다는 철혈대의 위명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미흡한 것 같았다. 그들의 행동에는 절도가 있었고 신속했다.

독고좌는 전독마조 척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척선배의 말씀에 대답을 드리겠소. 오룡이라 불리는 다섯분의 기인들이 왜 절대구마를 제압하고 그 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겠소? 또한 본 보의 조사(祖師)이신 철혈대제께서 오십회의 생신을 맞은 이후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던 것을 기억 하실 것이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오룡이라 불린 기인들은 구마를 제압한 후 모습을 보인 적이 없고, 철혈대제 역시 오십회 생일연회를 끝으로 무림에 모습을 보인 바 없었다.

부--우--- 욱---

또 다시 반으로 짤린 오룡번이 겹쳐져 다시 또 반으로 찢어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겹치고 있었다. 이 장안루 안의 인물들이 합심한다면 천하의 철혈대라도 맞설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일사불란하게 통솔해 철혈대와 맞선단 말인가?

“본 보의 역대 보주들께서는 이 오룡번의 불완전함을 바로잡기 위하여 수없이 노력해 왔으나 본래부터 인간의 한계를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편법으로 벗어나려 했던 것이라 이미 본 보에서는 백여년 전부터 없애버리려 했던 것이오. 다만 무림을 구한 다섯 분의 기인을 기리는 뜻에서 차마 없애지 못하고 보관하였던 것이오.”

부---우---욱--
또 다시 네겹의 오룡번이 반으로 찢어지며 여덟조각으로 변했다. 그에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얼굴엔 더욱 더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잠깐.... 대주께서 하신 말씀은 잘 알아 들었소. 허나!”
다시 입을 연 사람은 전독마조 척응이었다. 그의 얼굴엔 초조함이 배어 나왔다.

“불완전함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것은 오직 철혈보 뿐이었소. 하지만 이 세상엔 기인이사들이 무수히 많소이다. 그 중에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분이 있을 터인데 무림의 보물인 오룡번을 철혈보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없애버린다는 것은 전 무림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소.”

마도(魔道)에 몸담고 있기는 하나 평생 무림의 흉험함을 견디어 낸 전독마조 척응의 말은 논리정연했다. 더 이상 오룡번의 훼손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엿보였다. 더구나 그의 말에는 교묘하게 좌중을 충동질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척선배의 혀는 너무 매섭구려. 헌데 척선배는 무림을 위해서 오룡번을 없애지 말라는 것이오, 아니면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한 것이오?”

독고좌의 갑작스런 반격에 허를 찔린 척응은 애써 비릿한 미소를 띠웠다.

“물론 전 무림과 무림동도를 위해서요.”

언제부터 전독마조 척응이 무림을 위했던가? 말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 자리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목적은 척응과 다를 바 없었기에 오히려 그를 두둔하는 표정들이었다.

“좋소. 그 마음을 잊지 마시오.”

독고좌는 다짐을 하듯 척응에게 말하며 눈길을 돌려 좌중을 다시 한번 훑었다.

“만약 이 오룡번을 없애지 않고 누군가에게 준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겠소? 아니면 죽겠소? 또 그 사람을 죽이고 오룡번을 차지한 사람은 살 수 있겠소? 보물은 화를 부르고 무림은 갑자기 이 오룡번으로 인하여 혼란에 빠질거요.”

그렇다. 지금 오룡번에 정신이 팔려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약 자신이 저것을 차지한다 해도 철혈대는 고사하고 좌중의 인물들로 인하여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좌중의 인물들의 얼굴에 긍정의 기색이 미미하게나 비치자 독고좌는 말을 이었다.

“죽음이 죽음을 부르게 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될꺼요. 이 오룡번은 약 한달전 본 보의 금적수사가 그의 아내와 함께 훔쳐서 본 보를 떠났소. 이 일은 본 보에서도 극비였고 수뇌부 몇 분만 알고 있었던 상황이오.”

독고좌의 음성에 진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나직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듣는 이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좌중은 철혈보 내 서열 삼위라는 그의 무위는 상상하는 것 보다 더욱 가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헌데 누군가 이를 의도적으로 유포했소. 무슨 목적이었는지 모르나 여러분들은 은밀하게 퍼진 이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온 것이오. 그것도 한 지역에서는 내노라하는 고수들만 이곳에 모이셨고 그간 보지도 못한 오룡번을 차지하기 위해 수십여명이 죽거나 다쳤소.”

그의 말은 틀린게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인물들은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인물들이다. 독고좌의 시선이 다시 전독마조 척응으로 돌려졌다. 금빛 투구 사이로 쏘아져 나오는 정광 역시 금빛이다.

“자...척선배. 오룡번을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주는게 무림과 무림동도를 위한 길이오? 아니면 없애 버리는 것이 무림과 무림동도를 위한 길이오?”

투구 사이로 쏘아져 나오는 독고좌의 시선과 마주친 전독마조 척응은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마치 폐부에 박히는 듯한 그의 시선은 그를 잠시나마 주눅 들게 하기에 족했다. 더구나 그의 말은 비수처럼 척응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 척응은 헛기침을 했다.

“험... 듣고 보니 대주 말이 맞는 것 같소. 하지만...”

그가 뭐라 변명을 하려하자 독고좌는 칼날같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잘랐다.

“지금 없애야 하오? 아니면 보존해야 하오?”

척응은 안타까운 마음이 이를데 없었다. 그것은 이곳 오룡번을 노리고 몰려든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것이기도 했다. 허나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더 이상 궁색한 이유를 댄다 하더라도 이미 틀린 일이다.

“없애는 것이 좋겠소.”

그가 탄식하듯 말을 하자, 철혈대주 독고좌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오룡번을 겹쳐서 다시 반으로 잘랐다. 그것이 손바닥보다 더 작게 잘라지자 독고좌는 그것을 양 손에 넣은채 가볍게 비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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