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08회

등록 2005.01.28 07:58수정 2005.01.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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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남옥 장군의 휘하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담명장군이었고, 아마 그로 인해 금의위 군령부 수장으로 발탁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데...?”


“담명 장군의 일가는 남옥대장군이 숙청되던 해 비슷한 시기에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하인과 하녀들까지 모두 참살되어 살아난 자가 없다고 합니다.”

“누가...?”

상대부는 묻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담명은 남옥대장군이 믿을 수 있는 수하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건국공신들의 숙청에 앞장섰던 군령부의 수장인 담명은 남옥대장군 숙청에 대해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황제가 결정한 일을 반대하는 것 자체도 역모다. 아마 그는 스스로 군령부를 그만 두었거나 해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황실에서 그를 제거했을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균대위의 비밀은 선황의 치부(恥部)라 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 국법(國法)이 엄연한데 그에 따르지 않고 전횡한 것이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였으니 죽여야 할 이유는 분명해진다.

“누가 그랬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합니다. 더구나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더 조사하기가..”


“그만 둬. 굳이 밝혀낼 필요가 없는 일이야.”

“담명장군 사임후 군령부의 수장을 잠시 맡았던 강중장군 역시 남옥대장군 숙청 후 군령부가 해체되면서 온 가족 모두가 실종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나머지 군령부 인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에 상대부는 고개를 끄떡였다. 어쩌면 강중 역시 황실에서 제거했을 것이다. 이미 사냥은 모두 끝났다. 황실을 위협할 개국공신들을 모두 숙청했고, 백련교의 주요인물들 역시 대부분 처리했다. 남은 것은 그들을 사냥했던 사냥개다. 이리저리 짖어대는 사냥개는 오히려 사냥감이 무엇이었는지 알려 줄 위험이 다분하다.

“알았어. 다시 말하지만 그쪽에 대한 조사는 모두 덮어. 우리는 조사한 적이 없는 거야.”
“알겠습니다.”

전연부는 그쪽에 대한 서류를 모두 모아 없애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부의 지시는 그것을 의미했다.

“천지회에 대해서는 건진 거라도 있나?”

조궁에게 묻는 소리다. 조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천지회의 수뇌부는 이미 상대부께서 알고 계신 바와 같이 세 명의 회주(會主)와 열두명의 십이지신(十二支神)으로 이루어지고 그 이하로는 십이지신이 열두개의 분파를 각기 하나씩 직접 지휘하고 있습니다.”

천지회에 세 명의 회주가 있다는 것은 뜻밖이다. 어느 조직에 있어서도 우두머리가 하나가 아니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비밀결사라 하면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를 가져야 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천지회는 그 형체만큼이나 기이한 조직이었다.

“십이지신 중 두 명이 중앙 고위 관직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만 누군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알아내겠습니다. 헌데....”

조궁이 말꼬리를 흐리자 상대부가 흥미를 나타냈다.

“뭔가 짚이는게 있어?”

상대부는 수하들의 특징이나 버릇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조궁이 말꼬리를 흐리는 것은 추측한 것이나 불확실한 정보를 보고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천지회의 회주 중 한명이 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를 지냈던 유곡(兪谷)이 아닐까 합니다. 유곡은 태조 말년에 전시에서 탐화로 뽑힌 자로 곧 홍문관에 들었던 인물입니다.”

“유곡....유탐화...그래. 문장으로 보아 장원(壯元)이었으나 몸이 허약하고 계집 같은 외모 때문에 탐화를 제수하였다고 하지. 아마 홍문관에 오륙년 있었지?”

“현 황상께 즉위의 조(詔)를 작성하지 못하겠다고 버틴 방효유(方孝孺)가 처형되고 나서 관직을 그만 둔 인물입니다. 조사해 본 결과 방효유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는데 관직을 그만둔 후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방효유의 자는 희직(希直), 호는 손지(遜志)다. 절강성(浙江省) 영해현(寧海縣) 출신으로 송렴(宋濂)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뒤 혜제(惠帝)를 섬기며 시강학사(侍講學士)에 올랐다. 사심이 없고 민생과 왕도정치에 온 힘을 기울였던 관료이자 학자였다.

허나 그는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한 후 즉위의 조(詔)를 작성토록 한 것에 대해 붓을 던지며 거부하다가 극형에 처해졌다. 즉위의 조는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한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칭송하는 글이다. 혜제와 함께 왕도정치를 꿈꾸던 방효유가 그런 글을 작성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극형에 처해지면서 친족 등 그와 관련된 인물들 천여명이 처형되었다. 이 당시 방효유와 동문인 대학유 송렴의 제자들 역시 이에 관련되어 죽은 자가 많았다.

“방효유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면 가능성이 높겠군.”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보면 그가 세명의 회주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로서는 그의 행적이 일정치 않아 잡아들이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잡아들이긴....타초경사(打草驚蛇)야. 선황 사후 그들은 선황 때와 같은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어. 현 상황에서 그들이 뚜렷하게 황실에 위해를 가하거나 적의(敵意)를 보인다면 몰라도 그들을 애써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 지켜보면서 그들 수뇌부를 모두 알아내야해. 적이라면 그때 가서 처리해도 늦지 않아.”

상대부의 의도는 모호했다. 얼마 전 태도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조궁은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문득 상대부는 전영반을 바라 보았다.

“유곡의 나이가 서른서넛 정도 되었나? 이십이세에 등용되었다 하니 서른다섯이 맞겠군. 헌데 그 나이로 천지회 같은 방대한 조직의 수뇌가 될 수 있을까?”

전연부는 조사한 조궁을 두고 갑자기 자신에게 묻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조궁보다 외부로 나다니는 전연부의 경험에 비추어 대답하기 바랐는지 모른다. 그는 어찌되었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보통 인물이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유탐화라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요. 그의 명석한 두뇌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소문입니다.”

“만나본 적 있나?”

“관직을 사임한 뒤 그를 직접 보았다는 인물은 없다 해야지요. 무림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이지만 보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연부는 지금 거짓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는 분명 유탐화를 직접 만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척 해야한다. 왜냐하면 그는 손불이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손불이의 친구는 손불이는 물론 손불이의 친구들이 다치게 해서도 안된다.

“유곡이라....그럴 가능성이 크지....”

혼자 말을 하는 상대부의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그는 요즈음 초조해지고 있었다. 천관의 중심에 서있는 함태감도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보내주지 않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함태감까지 비원이 행하고 있는 일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부의 부탁에 함태감은 풍운삼절이라는 거물들을 지원해 주었다.

천지회의 일도 그렇다. 중앙 천관에서 어느 때부터인지 정보를 주지 않고 있다.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자신은 함태감에게 충성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사실은 함태감께서 먼저 알고 있다. 분명 자신을 내치기 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방향을 아직 잡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돌아가는 사태에 있어 분명 자신이 놓친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함태감까지도 발설하지 못하는 그것. 상대부는 주위에 세사람이 있음에도 자신 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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