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07회

등록 2005.01.27 08:02수정 2005.01.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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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장 토사구팽(兎死狗烹)

“균대위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선황 말년에 변질되었어. 초혼령은 그들의 행사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선황은 그들을 이용해 개국공신들의 숙청이나 백련교도들을 제거했지.”


상대부의 말이었다. 그 앞에는 자춘이 앉아 있었다.

“남옥대장군의 숙청과 관련이 있을까요?”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균대위는 네가 조사한 바와 같이 금의위 내 군령부에서 움직였어. 그곳의 수장(首長)은 남옥대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담명장군이었고 말이야.”

“그렇다면 남옥대장군 숙청이 있기 약 삼개월 전에 군령부 수장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내려간 것도 그런 이유였을 가능성이 많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그가 낙향한 뒤에 남옥대장군은 숙청되었고, 그 숙청에 균대위는 분명 관여를 했거든. 그 후로 균대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이번 양만화에게 행사된 초혼령은 무엇이고, 또한 그것을 왜 황실에서 해금했느냐는 것이지요.”

상대부도 그에 대한 결론이 없다. 그가 아는 것은 양만화의 부친인 양귀가 과거 백련교도였다는 사실 뿐이었다. 균대위를 이용해 천지회의 움직임을 약화시키려던 그의 계획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황실에서 해금을 한 것을 보면 이미 균대위는 황실의 명령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이미 쓸모가 없어졌거나 없애려고 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다면 천지회와 같이 반황실단체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상황이라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어요. 만약 그들이 목적이 같은 천지회와 손이라도 잡는다면..?”

끔찍한 일이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황실에서 해금을 공표토록 했다면 균대위는 이미 황실의 조직이 아니다. 없애고자 하는 의도일 수 있다. 지금까지 황실의 수족이 되었던 균대위는 오히려 적이 되기 쉬운 곳이다.

“음.... 하지만 균대위는 그동안 오중회의 인물들도 많이 살해했어. 오중회로서는 목적이 같다 해도 손잡기 어려울 거야.”

상대부로서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오중회와 균대위가 반황실단체로 손을 잡는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 된다. 그들을 저지하고 제어할 능력을 아직까지 천관으로서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길 바래야지요.”

자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 때 밖에서 전연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하 들입니다.”
“들어들 오시게.”

문을 열고 전연부와 조궁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상대부에게 가볍게 예를 취하고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상대부가 물었다.

“변방 쪽에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이 파악된 바 있나?”

그 물음에 전연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을 조사하고 그들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이미 상대부의 명령이다. 하지만 갑자기 변방 쪽에 백련교도들이 움직임을 묻는 의도를 알기 어렵다.

“특별히 보고 받은 바 없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하면 대답하기 어렵다. 변방 쪽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니 더구나 조사된 바도 없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대답할 수도 없다.

“변방 쪽도 주시해 봐. 아무래도 달탄(韃靼)과 올량합(兀良哈)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는 전언이야. 수시로 남하해 변방을 지키고 있는 군을 습격하고 있다더군. 몇 번 뚫리기도 한 모양이야.”

“상대부께서는 백련교도들이 그들과 접촉해 움직였다고 보십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 백련교도들이 일어난 이유가 원을 몰아내자는 거였으니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겠지. 하지만 그들이 마음을 달리 먹는다면 안될 것도 없어.”

과거의 적(敵)이 영원히 적이 되라는 법은 없다. 언제건 목적이 같고 이용할 수 있다면 손을 잡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달탄과는 이미 화친(和親)하여 그들이 매년 공물(公物)을 바쳐 온다 들었는데...”

“겉으로야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아직 중원을 잊지 않고 있어. 언제건 다시 중원을 차지하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지. 더구나 현 황제께서는 선황과는 달리 변방을 정리하실 모양이야.”

명 태조 주원장은 대륙 전역을 회복하자 방어적인 전략으로 대응했다. 쳐들어 오면 막고 쳐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아직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한순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황제 영락제는 달랐다. 그는 방어하는 것만으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변방과 새외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정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위험의 근원을 없애자는 능동적인 전략이었다.

“아직까지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은 뚜렷하게 파악되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손가장에서의 일과 같이 이미 곳곳에 그들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고, 서장군가에서 소림으로 가져간 적멸안이 가짜인 점으로 보아 그들은 머지않아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동감이야. 전영반. 하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전연부 역시 백련교도들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모두 훑어보았지만 뚜렷이 잡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그들이 움직일 시기가 점차 무르익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만이 전부였다.

“데리고 있는 수하들 모두를 그쪽으로 집중해. 그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있을게 아닌가? 아니면 회합하는 장소라도 찾아 봐야지.”

지지부진한 조사에 약간은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그들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쪽에서는 실체는커녕 꼬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자주 모습을 보였다는 금릉과 개봉, 제남(齊南) 쪽의 인물들에게 각별히 신경써 조사할 것을 지시해 놓았습니다. 기필코 올해가 가기 전에 윤곽이라도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연부와 조궁은 자신의 의도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상대부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고개를 끄떡이며 문득 물었다.

“서가화와 송하령은 언제 들른다고 하던가?”
“소림에 보름 정도는 묵을 모양입니다. 무사히 물건도 전했고 서가에서 보낸 만냥의 시주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소림에서도 받기만하고 말기엔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하여간 다행이야. 자칫했으면 시끄러워질 뻔했어. 황실에서 지시한 것인지도 모르고 해금령을 막으려 했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만약 자신의 의도대로 그녀들을 데려와 자신이 먼저 해금령을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구나 서가화가 가져간 적멸안이 가짜였다는데, 그것을 바꿔치기 했다고 한다면 꼼짝없이 누명을 뒤집어 쓸 일이었다.

“헌데.... 군령부(軍令剖)에 관한 건 말입니다.”
“그건 조사를 덮으라 했잖아.”

상대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전연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군령부 수뇌였던 담명과 강중에 대해 알아본다는 건 말입니다.”
“아... 그랬었지.”

상대부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그 건 또한 그들이 파고들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파헤치려 했던 것이다. 상대부의 눈치를 보면서 전연부가 입을 열었다.

“담명장군과 강중장군의 관계는 홍무 14년 경 운남(雲南)과 대리(大理)를 공격시 좌우 부장군(副將軍)이었던 남옥(藍玉)장군과 목영(沐英)장군의 휘하로 출정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홍무 14년 가을 원나라 양왕(染王) 파잡자와이밀(把匝刺瓦爾密) 등이 계속 운남(雲南)에 둥지를 틀고 사신을 죽여 투항을 거부하자 태조는 남쪽 전체를 정벌하기로 결정했다. 전우덕(傳友德)을 정남(征南) 장군으로, 남옥(藍玉), 목영(沐英)을 좌우 부장군(副將軍)으로 임명하고 보병과 기병 30만을 주어 운남(雲南)으로 정벌을 보낸 것이다.

이 정벌은 성공적이었다. 원군(元軍)의 사도평장(司徒平章) 달리마(達里麻) 및 부하 2만여 명을 생포하고 운남(云南)의 동부 곡정(曲靖)을 점령했는가 하면, 이듬해 2월 남옥(藍玉), 목영(沐英)의 군사가 대리(大理)를 점령하고 수령인 단명(段明)의 동생 단세(段世)를 생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어 운남(云南) 전부를 함락하게 되자 태조는 중국 통일 대업을 이루었다고 공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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