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파의 법문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스님들김남희
아침 6시. 종이 울리며 하루가 시작됐다. 명상, 식사, 강의, 요가, 점심 먹고 토론, 다시 강의와 명상, 그리고 저녁. 저녁 식사 후 다시 이어지는 강의.
강의 시간에 일어났던 의문들.
'업의 개념이 결국 현실 세계에 대한 체념이나 긍정(계급 제도 등에 대한)을 야기하는 게 아닌가?'
'끝없이 인간으로 환생해 생을 다시 겪는다 해도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고, 과거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한 모든 경험은 새로운 것이므로 그에게는 반복이나 윤회의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마음에는 한계가 있는가?'
'마음과 이 모든 현상세계의 시작은 어디인가?'
저녁 먹고 다시 카르마파의 강의를 들으러 나갔다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108배를 드렸다. 절을 마치고 난 후에는 명상을 하며 앉아 있었다. 이 고요한 밤에 혼자 법당에 앉아 있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2004년 12월 23일 목요일 흐림
다시 새벽 6시.
무거운 몸을 끌고 아침 명상. 오전 강의를 듣다가 스님께 질문했다.
"한국 비구니 스님들 중에는 '다음 생에는 꼭 남자의 몸을 받아 태어나 성불을 이루겠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다. 실제로 승단에서도 비구니는 법락에 관계없이 1년 된 비구승에게도 예를 갖추고 공경을 표해야 하는 차별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니를 차별하는 전통은 불교계 일반에서 받아들여지는 전통인데 흥미롭게도 탄트라 불교에서는 여성을 차별하는 요소가 없다. 부처님 생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계율이 불교에 남아있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승단의 비구니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전생이나 환생의 개념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토마(폴란드에서 온 그는 언제나 잔뜩 찌푸린 얼굴로 딴지 거는 식의 질문을 끊임없이 해댄다. 그런 그에게 '투덜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로 했다)의 질문에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느냐고 스님이 되물었다.
투덜이의 대답.
"물론 있다. 정신병원에서 일할 때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났다."
어쩌면 이 진지한 시간에 저런 대답을, 저토록 진지하게 할 수 있는지. 스님께 또 물었다.
"만약 전생의 업으로 인해 동물로 태어났다면 다음 생을 위해 그들이 쌓을 수 있는 선한 업은 무엇인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특별한 축복이므로 감사히 여기고 좋은 업을 쌓아야 한다(다음 강의에서 스님은 길에서 거리에서 굶주리는 개와 이 절에 머물며 사랑을 받고 먹을 것을 충분히 보장 받는 개를 비교하며 후자의 개는 전생의 업이 끝나가는(Completing Karma) 과정이라고 했다)."
지금의 내 수준에서 종교로서의 불교, 믿음과 갈구의 대상인 신앙으로서의 불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저 긍정적인 불교적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려 노력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