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29회

등록 2005.03.01 08:17수정 2005.03.0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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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 장 육합난비(六合亂飛)

신검산장(神劍山莊)은 극히 폐쇄적인 곳이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둘러싼 담장만큼은 성곽(城郭)처럼 높아서 주위 어느 곳에서도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고, 넘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장주의 폐쇄적인 성격 탓이었다. 장주인 파산신검(破産神劍) 풍철영(馮澈映)은 동생인 양의검(兩儀劍) 풍철한(馮澈漢)과는 무당의 속가제자라는 사실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풍철한이 호탕하고, 친구를 사귀기를 즐겨하면서도 사사건건 어떤 일에든 끼어들기 좋아하는 덤벙대는 성격인데 반하여, 형인 풍철영은 사람 사귀는데 매우 신중하고 말이 없었으며, 외부와 왕래가 없이 지내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한 가지 괴벽스런 취미가 있었다.

그것이 이곳을 신검산장이라 부르고, 장주인 풍철영이 파산신검으로 불리게 된 이유였다. 그는 병장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특히 신병이기(神兵利器)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한때 병장기 수집으로 파산할 것 같다하여 그렇게 불리웠던 것이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 조국명(趙國明)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손님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신검산장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그로서는 아무리 중한 손님이라도 돌려 보내야했다. 하지만 저녁나절에 찾아 온 일행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는 터여서 하는 수 없이 맞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손님은 네 사람이었다. 현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인 금적수사 부부와 성하검 섭장천, 그리고 삼십 전후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그는 문사건을 쓰고 얼굴이 여인의 피부처럼 매끄럽고 하애서 많은 여인들의 방심을 울릴 것 같았다. 그들은 남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연락을 취해왔고 매달 한 번씩 들어오는 미곡 마차에 은밀하게 숨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하네.”


인사치레이던 아니던 간에 성하검 섭장천의 말은 누구에게나 육중한 무게로 다가간다. 그것은 장주인 풍철영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절해야할 이 시기에 대놓고 거절하기 힘든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일은 총관인 조국명의 일이었다.

“명리를 버리고 강호를 떠나신 것으로 알려진 섭노선배께서도 오룡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후배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려.”


신검산장의 장주는 풍철영이지만 신검산장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인물은 총관인 조국명이었다. 그가 파산할 지경에 처한 신검산장을 다시 일으켰다는 소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주인 풍철영은 극히 중요한 자리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도 말을 한 적이 드물었다. 그저 가끔 고개를 끄떡이고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검산장의 주인이 오히려 총관인 조국명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건 풍장주가 어장검(魚腸劍)이나 간장검(干將劍)에 버금가는 신검이 나타났다면 역시 똑같지 않겠나? 하여간 무덤에 들어갈 날도 얼마 없는 노부가 풍장주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서글프긴 하지만 조총관이 도와 주어야겠네.”

풍철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여전히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는 그 말에 동의했다. 사람은 각기 원하는 바가 다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신병이기였다. 마치 자식을 다루듯 그 신병이기를 모아놓고 닦을 때 그는 사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장주의 동생께서는 지금 이곳에 없소. 또한 본 장 역시 도움을 드리기 어려운 처지요.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장주의 동생과 본 장의 입장은 다르오. 본 장은 지금까지 무림 일에 끼어든 적이 없었소.”

그 말에 금적수사 지광계는 말하는 조국명이 아닌 풍철영을 바라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제는 이미 그가 보름 전쯤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왔소. 몇 번이나 소식을 넣었지만 답변이 없어 답답했소. 형님도 아시겠지만 그와 소제는 막역한 사이요. 그를 보게 해 주시오.”

얼굴은 여전히 파리했고, 심하게 앓고 난 사람같았다. 목소리도 너무 애초로와 하마터면 그의 부탁을 들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풍철영의 내리 깔고 있었던 눈 깊숙한 곳에서 기이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너무 미세한 것이었고, 빠른 것이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더라도 알아챌 수는 없었다.

자신의 동생인 풍철한이 보름 전에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동생에게 해를 입히고 추적해 온 자들 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이들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동생에게 해를 입힌 자들과 같은 편이라면 목적은 동생을 찾아 입을 막으려고 할 것이었다.

또한 동생과 같이 온 동생의 친구를 회수해가기 위한 것일 터였다. 최소한 그들과 한패가 아니더라도 그 소식을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내심은 그러하면서도 풍철영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수사께서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오. 장주의 동생께서는 이개월 전 이곳에 왔다가 떠나간 이후로 온 적이 없소이다. 그 점에서 장주께서도 동생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는 참이오.”

조국명은 완강했다. 풍철영의 얼굴 역시 한 치의 변화도 없다.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섭장천은 풍철영과 조국명의 말투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찾으려 하였지만 그들은 전혀 내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것이 맞겠지. 우리가 양의검(兩儀劍)을 찾으려는 이유는 한 가지였네. 양의검은 이 사람의 절친한 친구였고, 이 사람은 지금 철혈보뿐 아니라 전 무림인에게 쫒기고 있는 신세네.”

“가지고 있던 오룡번은 철혈대주가 회수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없애 버렸다고 들었소. 그것이 진짜 오룡번이 아니었소?”

조국명은 말을 하면서 섭장천과 지광계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지광계가 탄식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것은 진짜였소. 하지만 그 사실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제가 진짜 오룡번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고 있소.”

“그 점에 있어서는 장주의 동생도 수사의 곤경을 해결해 주지 못했을 것이오. 동생 분은 무모한데가 있지만 도리에 벗어난 일은 한 적이 없었소.”

계속되는 거절이었다. 조국명 자신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장주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섭장천은 집요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풍철영을 향해 탄식처럼 말했다.

“그의 도움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네. 그리고 그것은 자네 역시 할 수 있는 일이네.”

조국명은 왠지 기분 나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거절이라면 상식적으로 물러나야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섭장천이나 금적수사 정도라면 무림에서 손꼽을 만한 거물들이었다. 그들이 이런 거절에도 반드시 이곳에 머물고자 하는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지 않다면 정말 다급한 경우일 것이다.

“풍장주는 무당의 제자네, 구파일방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지. 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법 뿐이네. 구파일방에 몸을 의탁하는 것 뿐이지. 풍장주는 단지 연락을 취해 이 사람 부부를 데려가게 하는 것 뿐이네. 물론 그동안 우리를 이곳에 은밀히 숨겨 주었으면 하네.”

풍철영은 이제 이들의 목적이 분명해졌다고 느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지광계 부부가 구파일방에 몸을 의탁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이미 이곳에는 알지 못할 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 이 신검산장 안에 있는 동생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일단은 그들에 대해서도 모른 체 하고 있었다. 신검산장을 모르는 자는 아무리 헤매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신검산장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다른 위험도 내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들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알리게 되면 신검산장은 시끄러워질게 뻔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며칠 안에 자신이 청한 사문(師門)의 사형이 당도할 터였다. 또한 소림과 화산의 원로들도 당도할 터였다.

동생 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사문에서 어떠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알려져서는 안 될 조심스런 일이었다. 이제는 자신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목적이 있다면 자신의 거절에도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풍철영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후배가 섭노선배의 뜻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동생과 절친한 친구인 수사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완곡하고 어렵게 거절의 뜻을 표하려하자 섭장천과 지광계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형님이 소제를 내쫒는 것은 소제더러 죽으라는 말과 같소. 어렵게 이곳까지 왔는데 이제 소제가 폐인이 되었다고 이렇게 박정하게 대하실거요?”

“며칠 정도만 봐주게. 이곳에 피해를 주지 않고 그동안 다른 곳을 찾아 보겠네.”

섭장천과 지광계는 집요했다. 이것으로 그들이 단순하게 몸을 피하고 구파일방에 의탁하기 위해서 찾아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풍철영은 섭장천에 대해서 알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한다면 사흘 안에 그의 내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어느 조직에 몸담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것만 확인된다면 그들은 자신이 예상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 온 것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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