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30회

등록 2005.03.02 07:48수정 2005.03.0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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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철영은 내심은 이미 결정을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이렇게 나오자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한 듯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혹시 이들에게 진정 다른 뜻이 없다면 무림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총관 조국명을 바라보았다.

“아래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운봉소축(雲峰少築)으로 이분들을 모시게.”


“장주님. 그곳은 아무도 들이지...”

운봉소축은 삼년 전 죽은 풍철영의 아내가 기거하던 곳이었다. 지금도 살아 있는 때와 똑같이 관리하고 가끔 아내가 생각날 때마다 풍철영이 홀로 가 보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모시라는 말이네. 아무도 이 분들이 본 장원에 있음을 알아서는 안되네. 본 장주는 자네가 잘 처리할 것이라 믿네.”

풍철영이 그들을 받아 들이겠다고 하자 지광계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형님. 감사를 드리오. 이 은혜는 소제가 살아 있는 한 꼭 갚겠소.”
“고맙네. 노부 역시 이 고마움을 잊지 않겠네.”


섭장천까지 감사의 뜻을 표하자 풍철영 역시 포권을 취했다.

“부탁 드리건데 운봉소축 밖으로 절대 모습을 보이시지 않기를 바라겠소. 만에 하나 섭노 선배께서 경솔하게 움직여 소문이 난다면 본 장주로서는 본 장원을 지키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모실 수 밖에 없소. 사문에는 후배가 연락을 취해 보겠소.”


풍철영의 말에 섭장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그 순간 풍철영이라는 인물이 무림에 알려져 있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느꼈다. 무림인들은 그의 동생인 풍철한이 대단하다고 인정하지만 그것은 풍철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평가였다. 지금 이 순간 섭장천이 보는 풍철영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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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서 보아라. 그리고 네가 아는 초식을 천천히 펼쳐 보아라.”

아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장군이 시키는 일이었다.

“이제 되었다. 거울 속에 누가 있느냐?”
“제가 있어요.”
“거울 속의 너는 오른손을 쓰더냐, 왼손을 쓰더냐?”

아이는 무언가 퍼뜩 깨달은 듯 대답했다.

“오른손이오. 오른손을 쓰고 있어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거울 속의 너는 되는데 왜 거울 밖의 너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이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검법을 익히지 못한 것은 왼손잡이이기 때문도 아니었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가로 막은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

“검은 베고, 찌르는 것이다. 찌르는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찌른다는 것 자체는 한가지다. 베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종(縱)으로 내리 긋던, 횡(橫)으로 베어 가던 아니면 사각으로 내리치던 간에 베는 것은 한가지다. 그 한가지가 모여 검로(劍路)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것이 모여 초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중요한 말이었다. 아무리 다양하고 복잡한 검초라 하더라도 베고 찌르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가장 자연스런 검로를 따라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형식이 초식이었다. 그래서 초식은 배운 바대로 펼치다가 어느 경지에 오르면 모두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초식에 매이면 숙달된 검술은 될지언정 검도의 경지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네가 배운 육합난비(六合亂飛)를 펼쳐 보아라.”

육합난비는 군문(軍門)에서 사용하는 초식이었다. 전쟁터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본래 창(槍)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을 검(劍)이나 도(刀)로도 사용할 수 있게 변화시킨 초식이었다. 군문에 든 자라면 누구나 배우는 것이 이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배운 육합난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펼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렵고 엉성하기만 했던 육합난비가 자신의 왼손에서 그런 대로 펼쳐지기 시작했고, 아이는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어두운 그늘이 걷혀지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는 너무나 신중하게 초식을 펼쳤기 때문에 어색하게 보였지만 아이의 태도는 너무나 진지했다.

“다시 한번 더 펼쳐 보아라.”

아이는 자신이 너무 긴장했다고 생각했다. 검을 고쳐 잡고 아이는 거울 속의 자신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육합난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왼손에서 펼쳐지는 육합난비는 이제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다른 초식도 이렇듯 익숙하게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했다. 네가 지금 펼친 육합난비는 이 아저씨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육합난비였다. 아마 네가 그것을 펼치면 적군은 혼비백산해 도망갈 것이다.”

“정말로 제가 잘한 건 가요?”
“물론이다. 이제 너는 한가지만 더 깨닫는다면 훌륭한 검수가 될 것이다.

“그게 뭔데요?”
“검(劍)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것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검을 잡은 사람의 마음이다. 네 마음을 검에 담을 때 비로서 너는 검에 입문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검을 마음에 담죠?”
“그것은 누구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 마음은 네 것이고 너만이 네가 잡은 검에 네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검을 마음에 담기 위하여 노력했고, 마침내 그는 마음에 검을 담았다. 그것이 반드시 더 이상 찾지 못할 사부를 만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부는 중원에서 다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었다. 오른손을 잃어 버리고 왼손으로 검을 다시 잡은 분이었지만, 사부는 이미 오른손이던 왼손이던 관계가 없는 분이셨고 그에게는 더 이상 좋은 사부는 없었다. 그는 한분의 가르침을 준 장군과 또 한분의 사부로 인하여 천하제일의 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결정은 이미 마음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번뇌하고 있었다. 대사(大事)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情)에 이끌려서는 안되었다. 지금까지 그는 모든 일을 냉정하고 완벽하게 처리해 왔다. 자신의 형제들은 그를 믿었고, 자신은 그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끓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찌 하오리까? 장군. 당신의 아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소이다.)

그는 식음도 전폐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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