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갈치찌개 이기 바로 밥도둑 아인교"

<음식사냥 맛사냥 8>밥 한 그릇 게눈 감추듯 뚝딱 비워내는 '생갈치찌개'

등록 2005.03.21 15:11수정 2005.03.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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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입맛 되살려주는 고소하고 담백한 생갈치찌개 ⓒ 이종찬

밥도둑의 대명사 생갈치찌개. 은빛 찬란한 껍질 속에 하얀 속살이 가득한 생갈치찌개는 요즈음처럼 온몸이 나른하고 입맛이 떨어질 때 먹으면 그 맛이 특히 좋다. 고소하고 담백한 생갈치의 하얀 속살을 자신도 모르게 한 점 한 점 찍어먹다보면 언제 밥 한 공기가 사라졌는지도 잘 모를 정도다.

생갈치의 하얀 속살과 함께 양념장이 잘 배어든 무와 호박, 감자를 곁들여 먹는 맛도 별미 중 별미다. 하지만 생갈치 표면에 비늘처럼 묻어있는 은백색 가루는 소화도 되지 않고 영양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생갈치찌개를 할 때 생갈치 표면에 묻어있는 은백색 가루(구아닌)는 부엌칼로 잘 긁어내고 조리하는 것이 좋다.

생갈치회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생갈치로 회를 뜰 때에는 생갈치의 몸에서 반짝거리는 이 은백색 가루를 잘 제거해야 한다. 이 은백색 가루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회를 떠서 그냥 먹으면 복통과 함께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갈치 몸에 묻어 있는 이 은백색 가루가 그저 무용지물만은 아니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이 은백색 가루를 이용, 여성들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립스틱과 화장품을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갈치의 은백색 가루는 인조 진주의 아름답고 고운 빛을 내게 하는 광택원료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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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시 장군동 장군시장 들머리에 있는 생갈치전문점 고향집 ⓒ 이종찬

갈치. 비늘이 없는 갈치는 고단백(16~25%) 식품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갓 잡아올린 싱싱한 생갈치를 회를 떠서 먹는 생갈치회에서부터 생갈치찌개, 생갈치조림, 생갈치국, 생갈치구이, 마른갈치찌개, 마른갈치조림, 갈치속젓 등 그 조리법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방에서는 "식욕이 없어졌을 때 갈치를 구워 먹으면 유효하고, 치질에는 갈치젓을 바르면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슨 음식이든 맛이 뛰어나고 몸에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먹는 것만이 좋은 일은 아니다. 갈치 또한 마찬가지다. 갈치는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요즈음처럼 입맛 없는 봄철에는 매운 고추 송송송 썰어넣고 매콤하게 끓여먹는 생갈치찌게 이기 최고 아입니꺼. 밥 숟가락 위에 양념장 잘 밴 호박 한 점 올려놓고 생갈치 하얀 살점 한 점 얹어가꼬 묵는(먹는) 그 맛을 누가 알겠능교. 밥도둑이 오데(어디) 따로 있능교. 생갈치찌개 이기 바로 밥도둑 아인교."

장군시장 들머리에 있는 생갈치찌개 전문점 '고향집'(경남 마산시 장군동). 고성이 고향이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생갈치찌개에 대한 자랑은 대단하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는 "생갈치찌개는 양은냄비에 끓여야 제 맛이 나지예. 한번 드셔보이소. 그기 겉으로 보기보다는 맛이 끝내줍니더"라며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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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은 고성 앞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은갈치로 생갈치찌개를 만든다 ⓒ 이종찬

일곱 평 남짓한 고향집에 앉아 생갈치찌개(5000원)를 시킨 뒤 그냥 앉아있기도 머쓱해서 '고성 하이면 막걸리'라고 벽에 붙은 글씨를 보고 막걸리 반 되를 시켰다. 그러자 한창 주방에서 생갈치찌개를 만들고 있던 아주머니가 "이 근처에서 하이면 막걸리를 파는 집은 우리집밖에 없어예"하고 거든다. 그만큼 이 집 막걸리맛이 좋다라는 투다.

어릴 적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를 정말 시원하게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키고 있을 때 삼색나물 한 접시와 서너 가지 부침개가 따라 나온다. 생갈치찌개에 웬 나물과 부침개? 잠시 의아해하며 주인 아주머니를 생뚱맞게 바라보자 어제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이 있어서 막걸리 안주로 한번 내 본 거란다.

"사진 찍으러 왔능교? 밥 먹으러 왔능교? 국물 다 졸기 전에 퍼뜩 드이소. 국물 졸아 들었다고 물을 더 부으모 그 맛이 안 나지예. 그리고 우리집 생갈치찌개는 고성에서 갓 잡아올린 은갈치를 쓰기 때문에 비린내가 하나도 안나예."
"어디 보자! 캬아~ 정말 그렇네요. 청주하고 생강을 넣었기 때문에 그런가요?"
"그기 아이라예. 싱싱한 생갈치를 쓰모 비린내가 거의 안 나지예."


저녁에만 장사를 한다는 이 집의 생갈치찌개는 독특하다. 그저 가스레인지 위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생갈치찌개 한 냄비와 잘 익은 깍두기 하나 그리고 하얀 쌀밥 한 공기가 모두다. 근데, 생갈치찌개 국물을 몇 숟가락 계속 떠먹어도 갈치 특유의 비린 맛이 거짓말처럼 하나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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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갈치찌개는 양은냄비에 끓여야 생갈치 특유의 맛이 난단다 ⓒ 이종찬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생갈치의 하얀 속살에서도, 양념이 속까지 골고루 잘 배인 무와 호박, 감자에서도 비릿한 맛은 전혀 없다. 입안에 넣으면 넣을수록 그저 고소하고 담백한 감칠맛이 혀끝을 끝없이 희롱할 뿐이다. 특히 생갈치의 하얀 속살을 호박과 함께 쌀밥 위에 올려 입에 넣으면 어느새 사르륵 녹아버린다.

부드러운 갈치 속살이든, 양념장 잘 배어든 호박이든, 하얀 쌀밥이든 씹을 겨를이 없다. 그저 한수저 입에 넣기만 하면 절로 목구멍을 타고 스르륵 내려가 버린다. 무 위에 갈치 속살 한 점 얹어 한 숟갈,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생갈치찌개 국물에 밥을 비벼 또 한 숟갈. 그리고 숭늉처럼 개운한 고성 하이면 막걸리 한 잔 홀짝 하면 끝이다.

어느새 밥 한 공기가 게눈 감추듯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밥도둑. 그래. 입맛 없는 봄날 먹는 생갈치찌개는 밥도둑 중의 밥도둑이다. 밥 한 공기를 더 시켜먹어도 여전히 양은냄비에 반쯤 남은 생갈치찌개가 혀끝을 유혹한다. 마음 같아서는 양은냄비에 남은 생갈치찌개를 바닥까지 싹싹 훑어 먹고 싶지만 배가 너무 부르다.

"거 참! 신기하네. 지금까지 제가 먹어본 생갈치찌개는 그래도 뒷맛이 약간 비릿했는데."
"오래 된 갈치를 써서 그렇지예. 저도 얼마 전에 깜빡하고 고성 생갈치를 구하지 못해 그냥 갈치를 한번 써봤거든예. 근데, 똑같은 재료를 넣고 끓였는데도 이상하게 비린내가 많이 나예. 그때부터 저는 무조건 고성 생갈치만 고집하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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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갈치, 호박, 무, 감자를 넣고 끓인 생갈치찌개 ⓒ 이종찬

밥맛이 없다. 혓바닥에 바늘이 돋은 것처럼 입안이 자꾸만 까끌거린다.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고 팔 다리가 묵직하게 느껴지면서 가끔 현기증까지 인다. 게다가 툭 하면 무얼 잘 잊어버리고 밤눈까지 어두워지는 것만 같다. 가끔 귀도 멍멍거리고, 까닭도 없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이럴 때,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하고도 맛갈스런 생갈치찌개를 한번 먹어보자. 냄비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고소하고도 매콤한 내음이 감도는 생갈치찌개를 마주 하면 금세 까끌거리던 혓바늘이 가라앉으면서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그와 동시에 식탁 위에 잿밥처럼 놓여있던 밥 한 그릇도 어느새 뚝딱 사라지고 없으리라.

입맛 없을 땐 고소하고 담백한 생갈치찌개 드세요
갓 잡은 싱싱한 생갈치 사용해야 비린 맛 나지 않아

▲ 하얀 속살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생갈치찌개
ⓒ이종찬

준비물/생갈치, 생무, 호박, 감자, 붉은고추, 매운고추, 대파, 마늘, 생강, 간장, 고추가루, 후춧가루, 설탕, 참기름.

1. 냄비 바닥에 네모지고 큼직큼직하게 썬 감자와 생무, 호박을 순서대로 깐다. 이때 생무는 한번쯤 살짝 삶아낸 것을 사용해야 양념이 잘 배어 맛이 좋아진다.
2. 길이 10cm 정도로 자른 생갈치를 올린다.
3. 고춧가루에 잘 찧은 마늘과 생강, 간장, 청주, 설탕, 후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4. 냄비에 양념장을 골고루 얹고 어슷썰기한 붉은고추와 매운고추를 올린 뒤 물을 적당량 붓고 센불에서 15분쯤 끓인다.
5. 끓고 있는 갈치찌개에 어슷썰기한 대파를 올린 뒤 불을 낮추고 국물의 양을 보아가며 2~3분쯤 더 졸인다.

※포인트/생갈치찌개는 끓인 뒤 곧바로 먹어야 생갈치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으며, 국물이 졸았다고 해서 물을 더 부으면 맛이 없어진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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