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죽향, 쫄깃쫄깃 입맛 돋우는 '대나무통밥'

<음식사냥 맛사냥 6>온천욕도 즐기고, 건강도 챙기고

등록 2005.03.14 15:49수정 2005.03.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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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철, 피로회복에 좋은 대나무통밥 드세요. 이 집 대나무통밥의 특징은 죽염으로 간한 물을 밥물로 쓴다는 것. ⓒ 이종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또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리하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나무.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오우가(五友歌.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에서 대나무는 "나무도 풀도 아닌 것이" 사시사철 푸르고 곧게 뻗어 있으면서 속(마음)까지 텅 비었다며, 선비의 곧은 지조와 절개를 대나무에 빗대 노래했다.

어디 그뿐이랴. 선비들은 먹을 찍어 대나무 그림(묵죽화)을 그리며 대나무의 곧은 기상과 늘 푸르름, 텅 빈 마음을 닮으려 했으며, 민초들은 대나무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의 수명장수를 빌기도 했다. 게다가 무당들은 대나무가 액을 막아주는 신령스런 기운을 가졌다며 대문 앞에 높다랗게 세워두기도 했다.

예로부터 대나무는 뿌리에서부터 잎까지 약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옛 문헌 <신봉본초경>에 따르면 "댓잎은 맛이 쓰고 성질이 차서 해소와 종양, 해열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그밖에도 대나무는 토혈, 거담, 중풍, 과다음주, 피로회복 등에도 아주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를 이용한 음식도 참 많다. 대나무의 어린 순을 따서 만드는 죽순회와 죽순나물. 피를 맑게 하고 몸의 열을 내리게 한다는 죽엽차. 특히 요즈음처럼 기운이 없고 나른한 봄철에 기를 북돋워준다는 대나무통밥에서부터 대나무통 삼계탕, 대나무통 장어백숙, 대나무 통술 등 쉬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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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북면 마금산 온천 가는 길목에 있는 대나무 음식 전문점 '장독마을'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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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으면 고소한 슝늉 한그릇이 마치 북면 막걸리처럼 나온다 ⓒ 이종찬

그래서일까. 요즈음 들어 건강에 좋다는 대나무를 이용하는 음식점들이 꽤 눈에 띈다. 그중 마금산 온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장독마을'(경남 창원시 북면 신촌주유소 옆)은 2~3년생 왕대나무통을 사용, 갖가지 독특하고도 맛깔스런 대나무 음식을 만드는 대나무 조리의 명소다.

하지만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대나무숲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맛있는 집'이란 노오란 간판과 허연 바탕에 큼직한 검은 글씨로 '장독마을'이란 간판이 붙은 이 집 들머리에는 장독들만 여러 개의 탑처럼 수북히 쌓여 있다. 언뜻 보기에 우리의 전통 된장과 전통 간장을 만들어 파는 그런 집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보아도 꼬마들 몇몇만 눈에 띌뿐 손님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경남의 맛집'이란 자그마한 팻말이 붙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갑자기 별천지에 온듯 왁자지껄하다. 그와 동시에 그윽한 대나무 향기와 구수한 된장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금세 입에 군침이 돈다.

식당 안 들머리에 커피숍처럼 꾸며진 자그마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 널찍한 방 안에 앉아 대나무통밥을 한 수저 떠서 된장에 박은 깻잎을 올려 한입 가득 감칠맛나게 먹고 있는 사람, 허연 대나무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방과 식탁 사이를 바삐 오가는 주방 아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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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찌개, 쇠고기볶음, 명태조림, 된장에 박은 고추와 깻잎 등 10여 가지의 반찬과 함께 나온 대나무통밥. 이 지역에서 이름 난 북면 막걸리를 곁들여 먹는 맛도 끝내준다. ⓒ 이종찬

회색빛 승복을 입은 스님 두 분이 마주 앉아 대나무통밥을 먹고 있는 별채에 들어서자 이내 뚝배기에 표주박이 담긴 따뜻한 슝늉 한 그릇과 막사발처럼 생긴 잔이 하나 딸려 나온다. 대나무통밥과 이 지역에서 이름 난 북면 막걸리 한 되를 시키자 '막걸리만예?'하고 물어본다. 안주로 손두부는 왜 안 시키느냐는 투다.

고소한 슝늉을 막걸리처럼 후루룩 마시자 금세 10여 가지의 반찬과 북면 막걸리 한 사발이 탁자를 가득 메운다. 이어 한지에 쌓인 대나무통밥과 시레기 된장국이 한 그릇 따라 나온다. 누룩내가 훅 풍기는 시원한 북면 막걸리를 한 잔 쭈욱 들이키고 나자 어느 것부터 젓가락을 대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진갈빛 도자기에 쬐끔씩 쬐끔씩 담긴 비지찌개, 쇠고기볶음, 멸치조림, 삼색나물, 명태조림, 된장에 박은 고추와 깻잎 등. 어느 것 한가지 깔끔하고 맛갈스럽게 보이지 않는 반찬이 없다. 그 수많은 반찬에 비해 앞에 있는 자그마한 대나무통밥 한 그릇이 몹시 초라하게 보인다.

"멥쌀과 찹쌀을 반반씩 섞고 흑미를 넣어 찌는데예, 저희들은 찹쌀흑미만을 고집해예. 밥을 찔 때도 압력밥솥에서 한번 찌낸 뒤 다시 가마솥에 넣어 장작불로 찌낸다 아입니꺼. 그래야 대나무향도 많이 배이고 밥알도 쫀득쫀득해지거든예."

언뜻 느끼기에는 대나무통밥(8000원)의 양이 적게 보이는 것 같지만 막상 먹어보면 결코 모자라지 않다고 말하는 장독마을 주방 아주머니.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명함을 한 장 달라고 하자 샐쭉 웃으며 '다음에 오실 때는 가족들과 함께 오셔가꼬 대나무통 삼계탕을 한번 드셔보이소'하며 명함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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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통밥과 시레기 된장국. 압력밥솥에 찌고 다시 가마솥에 쪄내서 그런지 밥이 찰지고 쫀득쫀득한 게 반찬 없이 그냥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 이종찬

한지를 걷어내고 대나무통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자 금세 향긋한 대나무향이 입안 가득하다. 찰진 밥알이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신선이 따로 없다. 대나무통밥을 입에 한 수저 넣는 순간 은은한 대나무 향이 온갖 시름을 날려버린다.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밥알이 나른한 몸에 그 어떤 기를 불어넣어주는 것만 같다.

대나무통밥은 반찬 없이 먹어도 절로 술술 넘어간다. 삼색나물을 입에 물고 고소한 비지찌개를 한 입 떠넣자 그윽한 대나무향과 향긋한 나물내음, 구수한 된장내음이 어우러져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그 맛이다. 찰진 대나무통밥 위에 된장에 박은 깻잎을 올려 먹는 맛도 끝내준다.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다.

"창원이나 마산 주변에는 이렇게 큰 왕대나무가 거의 없는 줄로 알고 있는데, 대나무는 어디서 구해옵니까?"
"거제 고현에 가서 가져와예. 어떤 때는 가까운 성주사(창원)에 가서 구해오기도 하지예. 성주사에도 왕대나무가 좀 있거든예."
"대나무통은 한번 쓰고 버리나요?"
"두 번 쓰지예. 하지만 두 번 이상은 절대 안 되지예."


장독마을 주방 아주머니의 대나무통밥 자랑은 대단하다. 대나무통밥은 고혈압과 당뇨, 동맥경화증 등 성인병 예방에도 좋은 것은 물론 얼굴과 목에 땀이 많이 흐르는 사람이나 열이 얼굴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자주 먹는 것이 좋단다. 왜냐하면 대나무 속에 든 찬 성분이 심장과 폐의 열을 내려주기 때문.

게다가 대나무통밥을 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가열하면 독특한 액체가 나온다고 한다. 그 액체가 바로 열을 내리고 담을 없애는 작용을 하는 것은 물론 중풍이나 정신혼미, 졸도, 폐열 때문에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단다. 하지만 소음인에게는 큰 효과가 없으며,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몸이 찬 사람들도 대나무통밥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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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통밥 위에 된장에 박은 깻잎을 올려먹으면 어머니의 손맛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 이종찬

"담양에는 2~3년생 왕대나무 수액으로 밥을 짓는다던데?"
"특별한 손님한테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예. 하지만 그 많은 대나무 수액을 무슨 재주로 구할낍니꺼? 그 때문에 저희 집은 죽염으로 간을 한 물을 밥물로 사용하지예."
"바로 옆에 마금산 온천이 있어서 온천욕을 끝내고 오는 손님들도 꽤 있지요?"
"마금산 온천 덕도 톡톡히 보지예. 아, 말 그대로 이곳에 오면 온천욕도 즐기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 아입니꺼."


대나무통밥, 쫀득쫀득하게 지어야 제맛
왕대나무통에 재료 2/3 넣고 한지로 덮어야

▲ 한지를 닾은 대나무통밥
ⓒ이종찬

준비물/왕대나무통, 쌀, 찹쌀, 찹쌀흑미, 밤, 은행, 대추, 인삼, 표고버섯, 녹두, 조, 수수, 검정깨.

1. 쌀과 찹쌀, 찹쌀흑미, 녹두, 조, 수수를 잘 씻어 30분 정도 물에 담가 불린다.

2. 지름 10㎝쯤 되는 왕대나무통에 불린 재료를 2/3쯤 담고 밥물을 적당히 붓는다. 이때 밥물을 잘 맞추어야 밥이 쫀득쫀득하게 된다.

3. 재료를 넣은 왕대나무통을 압력솥에 넣고 물을 왕대나무통의 절반 정도 부은 뒤 두껑을 덮고 끓인다.

4. 압력밥솥에 압력이 올라오면 곧바로 불을 끄고 밥을 식힌다.

5. 식은 밥 위에 밤과 은행, 대추, 인삼, 표고버섯, 녹두를 올려 한지로 두껑을 덮어 실로 묶은 뒤 가마솥에 물을 붓고 다시 한번 찐다. 가마솥이 없으면 찜통에 넣어 쪄도 된다. 이때 중간에 두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

6. 대나무 통밥 위에 볶은 검정깨를 살짝 뿌린 뒤 시레기 된장국, 비지찌개, 깻잎, 삼색나물, 김치 등과 함께 곁들여 낸다.

※대나무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향이 아주 강한 반찬은 피하는 것이 좋다.
/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 ※대나무통 삼계탕/10000원. 대나무통 장어백숙/15000원. 대나무통술 30000원. 대나무잎 냉면/5000원. 북면막걸리와 손두부 6000원. 대나무통밥 추가 5000원.

덧붙이는 글 ※대나무통 삼계탕/10000원. 대나무통 장어백숙/15000원. 대나무통술 30000원. 대나무잎 냉면/5000원. 북면막걸리와 손두부 6000원. 대나무통밥 추가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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