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이 놓은 '유시민 덫'에 걸린 386 의원들

[取중眞담] 여의도에선 왕따, 인터넷에선 스타인 '유시민 현상'

등록 2005.03.28 16:34수정 2005.03.29 13:58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3월 11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 당의장 상임중앙위원 후보자 정견발표 및 정정당당선거 선포식에서 8명의 후보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부터 염동연, 문희상, 장영달, 김두관, 유시민, 한명숙, 송영길, 김원웅 후보.

지난 3월 11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 당의장 상임중앙위원 후보자 정견발표 및 정정당당선거 선포식에서 8명의 후보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부터 염동연, 문희상, 장영달, 김두관, 유시민, 한명숙, 송영길, 김원웅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단연 '유시민'이 화제다. 그는 요즘 여의도에서는 왕따, 인터넷에서는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를 왕따시킨 열린우리당 대다수 의원들조차 '유시민 효과'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를 졸면서 지켜보던 이들의 잠을 확 깨운 건 유시민이라는 '각성제'였다.

심지어 유시민 비판에 나선 김영춘 의원조차 "자칫 밋밋해지기 쉬웠던 이번 전당대회가 형을 둘러싼 화제와 논란으로 인해 그나마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모으게 된 점을 한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비록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다 하나 이미 당원으로의 권력이동이 진행중인 우리당 내에서 형은 최대 계파의 수장"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시민 현상'에서 흥미로운 것은 개혁 성향의 386 의원들로부터조차 배척당하는 그를 왜 네티즌들은 발 벗고 나서서 구하려고 애쓰느냐는 점이다. 그가 당내 소장개혁파 의원들로부터 연일 두드려 맞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덩달아 그의 후원금이 늘어나고 있었다. 지난 25일 밤 유시민 의원의 홈페이지에서는 20일 만에 '나비효과 후원금'이 1억원을 돌파했다. 1600여 명의 개미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든 결과다.

유시민, 여의도에선 '왕따', 인터넷에선 '스타'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반(反)유시민 또는 비(非)유시민으로 대표되는 386 의원들과 친(親)유시민 성향을 보이는 네티즌, 어느 한 쪽이 오판을 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흑백 논리로 따질 성격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유시민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언제나 유시민만이 옳은가? 그렇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유시민은 흠이 많다. 모자란 점도 적지 않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을 믿고 지지하는가. 목표를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기 때문이다. 유시민을 믿는다."

<오마이뉴스> 토론방에 '리베로(phibeom)'란 아이디의 네티즌이 쓴 글이다. 유시민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그가 내건 '목표'에 대해 상대적인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 유시민을 지지하는 다수 네티즌들은 가장 적극적으로 '당원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주장하는 건 유시민이라고 말한다. 일부 네티즌이 지적하듯이, 이번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를 '당권파와 당원파'의 대결로 보는 시각과 같은 맥락이다.

네티즌이 '유시민 구하기'에 나서며 386 의원들을 비판한 또다른 이유는 그들의 석연찮은 '줄서기' 행태다. 정작 당원들에게 줄 서야 할 사람들이 은연중에 특정 후보에 줄을 서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 '시나브로(jg991004)'는 <오마이뉴스> 독자댓글을 통해 "최근 줄서기로 대변되는 386들의 모습은 정치꾼이나 모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며 "도대체 초심은 어디로 간거냐"고 비판했다. 아이디 '열대야(imstorm)'는 "유시민이 선배한테 싸가지 없이 대들고, 예의부터 배워야 하는 인간인지는 몰라도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위세 부리지는 않는다"고 일갈했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네티즌이 문제 삼는 건 386 의원들이 논쟁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것이다. 개혁 성향을 표방해온 그들이 돌아가면서 유시민 비판에 나선 건,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에 앞서 실용주의를 내세운 문희상 후보쪽과의 연대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반면 '당원 중심의 정당개혁'이라는 정책 이슈에 대해서는 왜 묵묵부답이냐는 것이다. 386 의원들의 이런 태도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지적이다.


유시민 의원 비판에 나선 386 의원들은 유 의원이 <한겨레21>에서 밝힌 '반(反)정동영, 친(親)김근태'에 대한 발언이 '분열적 개혁노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영춘 의원은 "잠재적 대선 후보군들, 그것도 정부에 나가 일하고 있는 장관들까지 끌어들여 이번 전당대회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만들어버리고자 하는 형의 분별없음에 경악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련된 정치를 하려는 386 의원에 대한 네티즌의 거친 태클

이에 대해 아이디 'louu'는 <오마이뉴스> 토론방 댓글을 통해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소신을 정치논리 때문에 숨기지 않고 적과 동지를 확연히 구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권후보군인 정동영-김근태 장관과 이번 당의장 후보들과 '밀접한' 관계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 유시민 의원이 이같은 '공공연한 비밀'을 누설한 게 무슨 잘못이냐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수면 위에서 공론화 하는 게 물밑에서 쑥덕공론하는 것보다 낫다는 지적이다.

세련된 정치를 하려고 하는 386 의원들이 네티즌으로부터 거칠게 태클을 당한 셈이다. 가뜩이나 과반 집권여당의 일원이었으면서도 일관되게 개혁적인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386 의원들에 대한 불만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봇물처럼 터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시민 의원은, 그동안 '뜨뜻미지근한' 개혁 행보를 보여왔던 386 의원들에 대한 공격적인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네티즌이 놓은 '덫'이라 할 수 있다. '유시민 현상'의 이면에는 네티즌이 그를 도구로 삼아, 기득권에 안주하는 열린우리당에 채찍을 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아이디 '아도니스(hadonise)'는 <오마이뉴스> 토론방 댓글을 통해 "오늘날 필요한 건 정당 내의 절차적 민주주의 아닌가? (유시민은) 80년 광주 운운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지만 정당내 참여민주주의와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이런 것들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며 "이젠 386 의원들도 필요하면 철저하게 개혁되어야 할 대상일지 모른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유시민도 그 대상이 되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다른 네티즌은 "아직도 우리 유빠(유시민 지지자)들이 광신도 집단으로 보이냐"며 "유시민도 그저 우리가 세워놓은 정치적 벤치마킹의 대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네티즌이 '인위적'으로 만든 '유시민 현상' 앞에서, 유시민만 쳐다볼 경우 '덫'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왜 이런 덫을 놓았는지, 이 덫을 통해 무엇을 알려고 했는지 등 현상이 아닌 내용을 잘 살펴봐야 해법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당사자의 한 축인 유시민 의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다들 억울해하지 말라. 그 덫은 네티즌 특유의 검증 절차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덧붙이는 글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5. 5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연도별 콘텐츠 보기